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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70

월가, 벽에 부딪히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10/20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돈은 자유가 아니라 만인의 노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왕이다. 돈만 있으면 지식 있는 놈의 지식 사 쓸 수 있고, 칼 든 놈의 손 칼 든 채 잡아 부릴 수 있다. 그만인가, 덕이 높은 성인까지 사서 앞세우고 다닐 수 있다. 그러므로 무식 걱정 마라, 힘없는 걱정 마라, 잘못한 걱정 마라, 돈 벌어라, 그저 돈만 벌어라”(함석헌저작집 , 들사람 얼, 한길사, 2009, 74쪽). 오늘날 금융계의 탐욕에 대한 전세계적인 비판적 행동의 사태는 함석헌의 조소 섞인 혜안을 가늠하게 해준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말은 실제적으로 월가 자체에 대한 유토피아적 환상을 비난하고 인간의 삶이란 돈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경종을.. 2019. 12. 6.
이웃을 배려하는 종교교육이 할 때가 아닌가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11/03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철학이 있는 종교, 이웃을 배려하는 종교교육 함석헌에 의하면, 종교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며, 사람을 건지는 일이다(〈영원의 뱃길〉, 《함석헌전집》 19, 한길사, 1985, 104쪽). 철학과 종교의 공통점은 여기에 있다. 철학은 이성과 정신을 일깨우고 살리는 일이라면, 종교도 사람의 영혼을 일깨우고 초월자의 소리로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그것은 철학이 끊임없이 자신의 이성을 놓지 않고 세계와 분투하는 실존을 지향하고 있듯이, 종교도 하나님을 마음에서 절대로 놓지 않고 세계로부터 초월을 지향하는 것이다. 이 둘이 별개가 아니라 바로 삶의 초월, 순수한 정신으로의 지향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지점에서 합류한다. 그러한 점에서 종.. 2019. 12. 3.
위험천만한 세상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11/14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사람이 살만한 안전지대가 없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난 후에 한국에는 원전에 대한 불신과 불안감이 한층 고조된 적이 있었다. 한 동안 이웃나라에서 일어난 원전 사고에 대한 기억들이 잊히는가 싶더니 서울 월계동에서 아스팔트 방사선이 검출되었다. 이에 환경운동연합의 조사에 의하면, 시간당 최대 2.5μSv(마이크로시버트)가 나왔는데, 2.0μSv 이상에 해당되면 강제 이주 조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도 방사선에 조금씩 노출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참고적으로 알아보면, 비행기를 타고 유럽을 한 번 왕복하면 0.07μSv, 음식물을 통해서는 1인당 연간 0.35μSv, 공기중에서도 1.3μSv.. 2019. 12. 3.
애정남, 대통령의 원칙은 어디까지인가.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12/03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원칙 없는 사회 TV 프로그램인 에서 우리에게 애매한 것들을 골라 명확하게 정리해주는 남자가 있으니 바로 ‘애정남(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이다. 마트 시식코너에서 몇 개까지 먹어도 될까? 극장에선 오른쪽 팔걸이를 써야 할까, 왼쪽 팔걸이를 써야 할까? 결혼 축의금은 얼마를 내야 할까? 동료들과 함께 밥을 먹을 때 마지막 남은 음식은 누가 먹어야 할까? 애매하지요. 그런데 이러한 애정남의 등장으로 시청자들은 ‘속이 후련하다’는 반응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바로 애정남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있기 때문이 아닐까? 워낙 우리 사회가 원칙이 없고 ‘애매한 상황’이 많기 때문이리라. 똑같은 죄를 지어도 돈이 없어서 .. 2019. 11. 28.
한국의 종교들, 타락해서 더 이상 타락할 게 없나?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12/11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종교의 탈선, 어디까지 갈 것인가? “간디를 옆에서 바로 안 사람은 “간디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지만, 그 사람은 타고난 그리스도인(Natural Christian)이다”했어요. 스탠리 존스 목사가 한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니지만, 하기를, 예수님의 뜻대로 비교적 충실하게 해서 훌륭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여준 이가 간디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이제 그런 점의 높은 차원을 알아서, 여기서 실지 내 살림에 사랑과 참을 실천해보려 해도 물론 잘못되는 거 많이 있지요. 있지만 그런다고 해서 포기하고 하나님이 용서하는 데 무조건 의지하는 것 그건 하나님 뜻을 모르는 거지요. 그런고로 나는 우리 그리스도교가 정신력이 이렇게 박.. 2019. 11. 28.
행복하려면 시공간적인 욕망을 초월하십시오! 그리고 자신 속으로 돌아가십시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1/29 05:00]에 발행한 글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함석헌의 행복론 -시공간적인 욕망을 초월하십시오! 그리고 자신 속으로 돌아가십시오! 그리스도인의 존재방식(Seinsweise) 혹은 실존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에 대한 단초를 아우구스티누스(A. Augustinus)의 저서인 『참된 종교』(De Vera Reiligione)에서 발견할 수가 있다. 그는 첫 머리에서 글강 외듯 이렇게 말한다. “참종교에 선하고 행복한 삶의 길이 있으며, 그 참종교란 하나이신 하느님을 예배하고, 지극히 순수한 경외심으로 하느님을 자연 만물의 원천으로 인정함에 있다.”(아우구스티누스, 참된 종교, 분도출판사, 2011, 29)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으로 존재한다는 것, 그리스도인.. 2019. 11. 25.
자본주의적 내세 종교를 탈피하고 현재적 행복을 누리십시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2/02 05:0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의 자본주의적 종교 비판과 무교(巫敎)의 행복론 요즈음 TV에서 방영 중에 있는 가상 사극 드라마의 재미가 쏠쏠하다. 필자는 마치 정치와 종교가 묘하게 뒤섞인 모습으로 전개되는 듯하여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그 사극 전면에 특정종교가 등장하는데, 조선시대 통치이념인 유교에 맥도 못 추고 민중들 사이에서만 간간이 맥을 이어왔던 우리의 전통 신앙인 ‘무교’가 그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강신무나 세습무, 혹은 무당(남자는 박수)이 단골들과 함께 한바탕 어우러져 굿판을 벌이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 부적 역할을 하는 주인공이 소생(resuscitation)하여 과거에 연분이 있었던 왕을 위로하고 .. 2019. 11. 25.
새로운 역사는 대화가 필요합니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2/03 05:0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 어록 365일 묵상 [역사와 대화, 그리고 바탈의 물음] “말씀을 구경에 있어서 윤리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것은 바탈의 맞섬[질적 대립]이요, 영과 영 사이의 문답이다. 구경을 따져 말하면 역사는 하나님과 사람의 대화다. 정신과 물질의 대화라 할 수도 있고, 한[全]과 낱[個]의 대화라 해도 좋다. 마르크스는 유물변증법이라 해서 과학적이노라 하지만 그야말로 비과학적이다. 말씀은 물질에는 있을 수 없다. 뜻은 정신에만 있는 것이요, 문답은 뜻 때문에 나온다. 그러므로 물질이란 말은 맞붙을 수 없는 말이다. 역사는 영과 영의 문답이다. 어미 영과 새끼 영이 있어서 문답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의 말씀이라.. 2019. 11. 25.
종교생활 행복하십니까?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2/04 05:0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과 러셀, 종교적 행복의 근본자리를 묻다! 왜 사람들은 종교를 갖고 있으면서도 행복하지 않은 것일까? 종교를 있다는 자체가 반드시 행복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묻는 것은 아니다. 다만 물음이 발생한 삶터의 상황(맥락)과 세계의 사태가 분명히 존재하기에 묻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왜”라는 이유를 묻기 전에 “왜”가 처해 있는 근본자리를 먼저 물어야 할 것이다. 물음을 갖는 그 근본자리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왜라는 의문이 생긴다. “왜”는 인간의 현실과 이상, 혹은 사태의 원인과 결과가 맞대응하지 못할 때 묻는 인간 실존의 의문이다. 어쩌면 “왜”라고 묻는 것은 인간 고유성의 확인이자 세계-내-존재의 유한성이 갖.. 2019. 1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