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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칼럼

월가, 벽에 부딪히다!

by anarchopists 2019. 12. 6.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10/20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돈은 자유가 아니라 만인의 노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왕이다. 돈만 있으면 지식 있는 놈의 지식 사 쓸 수 있고, 칼 든 놈의 손 칼 든 채 잡아 부릴 수 있다. 그만인가, 덕이 높은 성인까지 사서 앞세우고 다닐 수 있다. 그러므로 무식 걱정 마라, 힘없는 걱정 마라, 잘못한 걱정 마라, 돈 벌어라, 그저 돈만 벌어라
(함석헌저작집 , 들사람 얼, 한길사, 2009, 74쪽).

  오늘날 금융계의 탐욕에 대한 전세계적인 비판적 행동의 사태는 함석헌의 조소 섞인 혜안을 가늠하게 해준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말은 실제적으로 월가 자체에 대한 유토피아적 환상을 비난하고 인간의 삶이란 돈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돈으로 정치가를 사는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러나 이른바 민주주의의 발원지와도 같은 미국에서 금융 기업들이 막대한 정치 후원금으로 의원을 사서 좌지우지 한다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가 없다.

월가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증폭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좀 더 근원적으로 ‘물건’ 본위의 삶, 물건 독점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본다.
함석헌이 말하고 있는 물건이란 포괄적인 의미로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그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의 빗장을 열어보자.

“오직 사람만이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하는 이 인간만이 제가 낳은 제 자식 때문에 살 수가 없다는 것은 놀랄 일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스스로 의식적으로 노력하여 발달시켰노라는 문명이란 그 자체에 잘못이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세계가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 취해온 방법은 무어냐 하면 물자의 획득이라는 것입니다. 제각기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많이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경제에 대한 해결이 다르다 하여도 물건에 본위를 두는 이 점에서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크게는 국가전쟁으로부터 작게는 개인의 도둑질에 이르기까지, 정당한 말로 하면 산업장려로부터 부정한 것으로 하면 블록 간상(奸商)에 이르기까지 요컨대 물건을 얻어야 한다는 데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막다른 골목에 들어갔습니다. 오늘날 경제란 자유거나 통제거나 기술적으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슨 근본적인 개조가 아니고는 인류의 장래는 암담하다는 것이 모든 사람의 말입니다(함석헌저작집 2, 인간혁명, 한길사, 2009, 229-230쪽).

인간의 물건 본위의 삶이란, 물질, 재산, 돈 등의 유형(有形)의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인간 몸의 유한적인 안정감을 주는 수단들을 일컫는다. 이것은 정신이나 영과 같은 인간의 무한과 초월의 가능성을 약화시키거나 접어버리게 만드는 삶의 방식이다. 함석헌은 이를 두고 “쓰레기 자본주의”라고 말함으로써 비판의 물꼬를 터뜨린다.

“지금 우리 사회에 ‘먹자’풍은 확실히 우리를 망하게 하는 나쁜 풍이다... 대체 먹자풍은 왜 나왔나? 자본주의의 잘못으로 나온 것이다. 그러기에 그 경제제도를 고치지 않는 한 그 풍은 없어지지 않는다... 미국 때문에 생긴 우리 썩음 아닌가. 미국 자본주의의 하수도가 우리다. 미국의 자동차가 무엇을 가지고 왔나? 자기네가 호사한 살림하는 데서 필연적으로 나오는 찌꺼기, 쓰레기를 처분하려고 온 것 아닌가. 자본주의가 있어 돈 표준으로 산다면 우리가 아니라도 세계의 어느 놈이라도 반드시 그 쓰레기를 뒤집어쓰는 놈이 있게 생긴 것이다(함석헌저작집 1, 들사람 얼, 한길사, 2009, 51-52).

 
우리가 받아들인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이 미국식 포드주의, 미국식 헐리우드주의, 미국식 금융주의, 미국식 산업주의, 미국식 아카데미즘(대학상업주의) 등 미국의 것을 우리 것인 양 한 것이 아닌가. 함석헌이 자본주의 자체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내비치는 것은 자본주의와 미국을 동치시켜 오히려 잔류 정신에 불과한 것으로 그것의 본래 정신을 호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쓰레기를 안방에다 두고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그 쓰레기를 양산한 사람들이 누구인가?

흥미로운 사실은 과거 록펠러, JP모건, 모건스탠리, 시티그룹, 포드 등은 경제계의 거물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 정치를 주름 잡으며, 전쟁에까지도 뒷돈을 대었던 기업들이다. 그 기업들의 직계, 방계가 은행업으로 출발한 JP모건과 석유업으로 출발한 록펠러 두 독점자본가들의 놀라운 생존자들의 정치․경제적 권력이라는 점이다.

『제1권력』이라는 책에서 흥미로우면서도 사실적인 사건을 파헤친 히로세 다카시에 의하면, 미국의 거대 자본의 역사는 2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JP모건과 록펠러는 남북전쟁으로 떼돈을 벌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직계 및 방계는 베트남 전쟁에 있어서 전범 역할을 하였다. 공교롭게도 그들은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 뒤에서 숨어 있으면서,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을, 한국전쟁 당시에는 트루먼 대통령을 배출한 자본가들이다. 심지어 그들은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무기 수출로 돈을 벌었으며, 휴전 날짜와 38도선을 확정하는 데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전해진다.

더 나아가서 그들은 노벨평화상과 올림픽, 테니스의 데이비스컵, 풀브라이트 장학금, 퓰리처상, 그래미상 등 관여하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로 막대한 자본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세우거나 영향력을 끼친 대학만 해도 상당하다. 프린스턴, 컬럼비아, 시카고, 캘리포니아, 하버드, MIT, 예일, 칼텍, 존스홉킨스, 스탠포드 등에서 전쟁 무기 및 핵무기 개발을 위한 연구들이 이루어졌다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들은 지금도 정치, 경제, 군사, 금융, 미디어, 영화, 문학, 보험, 자동차, 철강, 전기, 전화, 가스 등 미국 및 세계 전역의 자본시장을 장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의 직계, 방계 기업들은 월가 곧 세계 자본시장을 대표하고 있으니, 히로세 다카시가 말한 것처럼, 그야말로 “제1권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다면 이러한 금융업계의 횡포, 자본의 폭력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함석헌의 대안처럼, 다시 인간의 얼(정신)을 임금으로 삼는 것이다. 인간의 얼이 세계를 이끌어가도록 만들어야 한다. 돈이 아니라, 자본의 쓰레기가 아니라 인간의 정신만이 문제가 되는 세계가 도래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생명의 세계에서는 얼이 임금이다. 그러므로 무슨 일에 있어서나 무슨 방법으로도 얼을 길러라, 얼만 길러라, 얼에서 모든 것이 나온다. 얼이 모든 것이다... [그 얼은] 무엇에 지음 받는 것도 아니요 어떤 원인에서 나온 것도 아닌, 그 스스로가 모든 것의 원인이 되고 까닭이 되는 것이 얼이다. 그러므로 얼 기르는 데 방법이 따로 있지 않다. 있자 하면 있어지고 없자 하면 없어지는 것이 얼이다. 얼은 맑은 것을 생각함으로 맑아지고 더러운 것을 생각함으로 스스로 더러움이 된다(함석헌저작집 1, 들사람 얼, 한길사, 2009, 74-75쪽).

이 세상은 돈의 세상이다... 인류의 문명은 돈이 발명되면서부터 빨리 발달된 것은 사실이다. 세상을 바로잡을 생각을 할 때에 반드시 잊어서 아니 되는 것은 돈 문제다. 돈을 이겨야 사람이다. 이 다음 우리 세계는 돈이 아니고 사는 세상이어야 한다. 돈은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어야만 그 참 값이 나타나는 것이다. 내가 돈을 쓰는 것 아니고 돈이 나를 지배하는 것 가지고는 문명이라 할 수 없다. 지금은 돈의 지배 아래 있는 문명이다. 아직 어리다(함석헌저작집 1, 들사람 얼, 한길사, 2009, 97쪽).

  인간의 진정한 세계는 돈, 물질, 물건, 재물이 다스리는 세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신의 세계가 되어야지 물건의 세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물건을 가지고 노는 세계는 어린 세계다. 미성숙의 세계, 미몽의 세계다. 그 물건을 가장 많이 가지고 노는 곳이 바로 월가가 아니던가. 어린 곳이다. 다 자라지 못한 곳이거나 거듭 퇴행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곳은 돈이 세계가 되는 곳이다.

정신생활이 없으면 사람 아니다. 그러나 정신생활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육신생활은 될수록 간단히 하는 수밖에 없다. 이상으로 하면 육신과 영혼은 늘 지나치기 쉬운 것이고 정신은 늘 눌리기 쉬운 것이다
(함석헌저작집 1, 들사람 얼, 한길사, 2009, 86-87).

여기에 철학과 종교가 필요하다. 철학은 인간의 왜곡되고 편협한 사고를 치유해야 하는 고유의 역할과 기능이 있다. 종교는 끊임없이 물질을 초월하여 순수한 정신의 세계로 상승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이 둘을 인간의 실존은 곧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자기가 처한 현실을 박차고 나아가려는 탈존(脫存, ekstase; Ek-sistenz)을 지향한다.

이런 의미에서
월가를 점령하자는 구호는 인간의 이성적 성숙을 위해 습관적으로 붙잡고 놀던 물건을 나누고 그 물건으로부터 자유로워지자는 외침으로 봐야 할 것이다. 경제적 체제의 전복은 말 그대로 둘러엎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그 물건 자체, 그리고 그것의 출처와 사용자를 세심하게 둘러보고 나서-위(정신)와 아래(물질)를-바로 세워야 하는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물질이 풍요로워질수록 더 풍요를 원한다. 풍요로운 만큼 더 빈곤하다고 아우성친다. 물질의 갈증을 더 심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앞뒤가 바뀌고 위아래가 엎어진 꼴이 아닌가? 철학과 종교는 정신이 바로 서야 물질의 방향을 알 수가 있다고 가르치는데, 우리 모두가 월가의 환상만을 꿈꾸지 말고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챙겨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부르조아 정신의 본질적인 요소는 비인격적이며... 부르조아는 항상 노예이(N. Berdyaev, 이신 옮김, 노예냐 자유냐, 인간, 1979, 243쪽)기 때문이다. 또한 명심하자. 나의 “삶은 [항상] 지켜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내버려서 지켜지는 것이다. 살아 있음이 문제요, 내버리면 된 것이다(함석헌저작집 2, 인간혁명, 한길사, 2009, 191).
(2011/10/20 함석헌평화포럼, 김대식 박사)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 본문 내용 중 사진은 뉴시스(두번째), 메일신문(세번째), 구글싸이트(네번때) 등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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