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교육\함석헌, 언론5

[김삼웅-제1강] 함석헌 저항정신의 본 바탕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3/04 10:14]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서거 20주기, 간디서거 61주기 추모학술모임 강연내용-김삼웅] 함석헌이 본 언론인의 제 기능 저항정신의 본바탕 “항거할 줄 알면 사람이요, 억눌러도 반항할 줄 모르면 사람 아니다. 그리고 혼자서 하는 항거는 참 항거가 아니요, 대중이 조직적으로 해서만 역사를 보다 높은 단계로 이끄는 참 항거이다.” 함석헌은 본디 태어나기를 온순한 천성을 갖고 세상에 나왔다. 어른이 되어서도 부끄러움․수줍음을 많이 타는 겸손과 겸양의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발길에 채여서’ 저항의 인물이 되고 그 저항을 통해서 항일․반소․반분단․반독재투쟁의 중심이 되었다. 씨알의 올갱이가 되었다. “내가 반항을 좋아한다면 또 그만치 못지않.. 2020. 1. 31.
[김삼웅 제2강] 함석헌의 비폭력 저항주의 실천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3/05 09:0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서거 20주기, 간디서거 61주기 추모학술마당 강연내용-김삼웅] 비폭력 저항주의의 실천 함석헌은 비폭력저항주의자다. 함석헌은 세상이 다 아는 대로 비폭력 저항주의자이다. 이에 따라 반체제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일부 인사들이 함석헌의 비폭력 저항주의를 두고 저항운동에 ‘찬물을 끼얹는 짓’ 이라며 못마땅해 하였다. 역사적 허무주의나 패배주의가 아니냐고 힐난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반항은 하지만 미워하지 말고 싸움은 하지만 주먹질을 말라”고 비폭력 저항을 주창하였다. 그렇지만 함석헌은 딱 한 차례 ‘폭력’을 사용한 적이 있다. 성인이 아닌 평범한 인간 함석헌도 구조악 또는 공권력에 의한 현장폭력에는 폭력으로.. 2020. 1. 31.
[김삼웅-제3강] 함석헌- 상놈으로 태어난 상민의 저항정신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3/06 09:20]에 발행한 글입니다. ‘상놈’으로 태어난 상민의 저항정신 상놈으로 태어난 함석헌의 육화된 저항정신 또 역시 신학자 김경재(한신대)는 “함석헌의 문화 종교적 삶의 자리는 계몽주의적 자율적 이성에 대한 신뢰, 자연과학과 종교의 화해, 동양문화와 서구 기독교문명의 지평융합 그리고 세계문명 전체가 영적으로 크게 한번 털갈이를 하려는 진통으로 신음하고 있다는 문명전환기적 카이로스 의식으로 충만해 있었다” 면서 “오산학교 학장시설 다석 류영모와 남강 이승훈 선생을 만나 청년시절 기본사상의 기틀을 닦고, 일본 동경사범학교 유학시절 우치무라 간조, 간디, 톨스토이, 주세페 마치니, H.G.웰츠의 영향을 받아 그의 역사철학의 토양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렇다.. 2020. 1. 31.
[김삼웅-제4강] 함석헌- 반독재투쟁에 앞장서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3/07 09:0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서거20주기, 간디서거61주기 추모학술마당 강연내용-김삼웅] 3.1선언사건 등 반독재투쟁 앞장 유신체제가 더욱 강고해지면서 긴급조치를 통해 모든 비판세력에 족쇄를 채우고 개헌운동을 폭력으로 봉쇄시킬 때에 함석헌은 분연히 일어나 독재정권에 저항했다. 함석헌 등 재야인사들은 1976년 3월 1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개최된 3.1절 기념미사의 마지막 순서로서 ‘3.1 민주구국선언’을 발표했다. 3.1 명동선언사건으로도 불리는 이 선언문은 ① 이 나라는 민주주의 기반위에 서야 한다. ② 경제입국의 구상과 자세가 근본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 ③ 민족통일은 오늘 이 겨레가 짊어진 최대과업이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박정권은 이.. 2020. 1. 31.
[김삼웅-제5강] 함석헌, 저항으로 일관한 생애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3/09 08:3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 20주기, 간디61주기 추모학술마당 강연내용-김삼웅] 함석헌, 저항으로 일관한 생애 함석헌의 생애는 저항과 투쟁으로 일관했다. 일제에 대한 저항으로 3.1 만세시위 참여, 계우회사건, 성서조선사건, 독서회사건 등으로 구속되고, 해방후 신의주학생사건으로 소련군에 의해 구속되고, 월남해서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 의해 구속되는 등 온갖 고난을 겪어야 했다. 그는 펜이 요구될 때는 진짜 글을 통해 할 말을 하고, 제도 언론이 봉쇄당할 때는 온몸을 던져 행동으로 독재권력에 맞서 싸웠다. 언론이 압제자의 편이 되어 왜곡과 곡필을 서슴지 않을 때 ‘언론의 게릴라전’을 제창하면서 직접 월간 『씨알의 소리』를 창간하여 .. 2020. 1.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