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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42

내 영혼이 치닫는 날 내 영혼이 치닫는 날 야훼는 인간의 영혼에 숨을 불어넣으십니다! 우리 인간은 이 우주에서 특별한 존재라고 일컬어져 왔습니다. 도구를 쓸 줄 알고 언어와 문자를 사용하는 특수성들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전제들이 하나둘씩 깨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이 아니게 되고, 인간도 최상위의 포식자로 군림할 수 없는 나약한 동물이나 사물적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현상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고이래로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라 세계의 많은 종교들은 인간이 영혼을 지닌 특별한 존재라고 해석합니다. 그래서 그 영혼은 불멸한다고 믿고 죽은 이후에도 계속 남아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해인 수녀는 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바다가 토해 내는/ 아픈 기침 소리에/ 새벽이 눈을 뜬.. 2021. 1. 18.
절대자유를 갈망한 사람들, 대장간, 2020 목차 책머리글 신채호의 민족아나키즘과 역사철학적 인식:1920년대 이후를 중심으로 - 황보윤식_함석헌평화연구소 소장 신채호의 사상으로 바라보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 - 박요섭_한국인문학협회장 단재 신채호에 대한 아나키즘적 해석: “시간 속에 있는 시간 밖” - 김대식_함석헌평화연구소 부소장, 숭실대학교 철학과 강사 아나키스트 예수와 제자의 삶 - 박광수_빛과소금교회 목사 전복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반란:아나뱁티스트와 아나키즘 - 배용하_평화누림메노나이트교회 목사 맺는 글 책속에서 아나키스트는 절대 자유를 진리의 자리에 둔 사람이었다. 진리는 상대적일 수 없다. 온전한 자유를 누리려면 창조적인 행동이 타인과 비교당하지 않는 가운데 깨어있는 개인들에게서 나와야 한다. 자끄 엘륄은 『하나님이냐 돈이냐』에서 예수.. 2020. 12. 12.
성서로운 삶을 향한 존재의 이해: 니체와 에크하르트로 읽는 성서 책소개 니체와 에크하르트 두 철학자의 시선으로 성서를 바라본다는 것은 또 하나의 도전이자 모험이요 저항의 몸-짓(poiesis)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은 두 사람을 해석학의 도구로 삼아 성서를 봄으로써 새로운 신앙의 쇄신을 갈망하는 필자의 포이에시스(창작적 언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작금의 종교는 그 본래의 올바른 기능을 하지 못하고 매너리즘과 아비투스에 빠져 값싼 신앙언어만 생산함으로써 종교의 언어, 경전의 언어가 높은 이상적 가치, 초월적 가치를 상실하고 말았다. 이런 현실에서 새로운 저항의 언어와 사유를 가능케 하고자 한 저자의 성서해석학의 포이에시스적 시론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할 것이다. 목차 말을 열면서 종교적 현실언어의 종언과 종교경전의 해체적 해석 1장 종교의 순수한 시원을 향한.. 2020. 10. 8.
문(門)이 없는 문으로 들어가는 신앙: 충고선도(忠告善道) 문(門)이 없는 문으로 들어가는 신앙: 충고선도(忠告善道) 예수가 삶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일반적인 삶이든 특정한 종교적 삶이든 드나드는 문(門)이 있으면 그 문을 목적으로 삼으면 편할 것입니다. 누군가 자신의 삶에 대해 지침을 내려주면 참 편할 것입니다. 나를 대신해서 정리도 해주고 판단을 내려준다면 그처럼 쉬운 삶이 어디 있을까요? 남송시대의 선승인 혜개선사(慧開禪師)는 무문관(『無門關』)에서 “마음의 이치를 깨달아 들어가는 길에는 문이 없는 것을 문으로 삼는다(無門爲法門)”라는 말을 합니다. 문은 출(出)과 입(入)의 역할을 한다는 상식적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은 오히려 문이 없음으로 인해서 문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합니다. 문으로 들어가는 과정 이전에 문을 찾아야 합니다. 문은 있기도.. 2020. 6. 22.
하늘이 내뿜는 기운 논어, 안연편 2, 3장: 하늘이 내뿜는 기운 그리스도인은 하늘 기운으로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자기 의지나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러합니다. 물론 개중에는 아무런 생각 없이 주어진 본능에 충실해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성령, 즉 하늘이 인간에게 준 성스러운 기운으로 살아간다고 고백합니다. 몸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수양, 혹은 하늘로부터 받은 영과 정신의 움직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비종교인과 다른 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거룩한 기운을 갖는다고 해서 육체를 폄하하거나 영혼의 잔여물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아닙니다. 거룩한 기운을 갖게 되는 그 최초의 사건은 모든 것을 하늘 기운에 입각해서 해석하고 그 힘으로 .. 2020. 6. 6.
고난 속의 유혹 고난 속의 유혹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인간의 보편적 일상의 삶입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시련이나 고난을 경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살아가는 일상이 그렇습니다. 그로인해 지치고 힘들기도 하고 삶이 더 버거워지면 극단적인 자기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고난과 시련 안에 도사리고 있는 유혹이 바로 그것입니다. 일상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것을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일상이 말 그대로 일상인 것은, 즐거움과 기쁨처럼 고난과 시련 또한 일상의 일부분임을 지칭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일상을 단순히 일상으로 보지 않고 고통, 고난, 시련과 같은 부정적인 상황들에 대해서는 피하려고 합니다. 비일상적 사건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신을 모든 사건의 주체로 인정하며 고백 공동체인 종교 집단이나 종교인조차도 좋아하지 않습니.. 2020. 5. 25.
초월자의 현실성(Wirklichkeit) 초월자의 현실성(Wirklichkeit) 신은 사람들의 선을 위해서 활동·작용하십니다!(wirken) 하느님은 인간에게 온갖 일을 규정하는 현실성입니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말씀하신 것들을 다 지킬 수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은 무한한 존재인 반면,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부여한 선한 삶 역시 그것을 구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자 사실입니다. 탁월한 독일신학자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의 주장을 빌려서 말한다면, 선한 삶의 완전한 구현은 선 그 자체가 애초에 신에게 주어진 신적 현실성임을 인정하고 다만 그것을 현실화시키는 과정적 삶이 중요합니다. 선을 행하는 데 열정적으로 경쟁하듯이(boni aemulatores) 하려는 신앙적 의지가 칭찬.. 2020. 5. 18.
그리스도인의 예감, 거룩한 보편사제 그리스도인의 예감, 거룩한 보편사제 돌은 이미 생명을 품고 있습니다! 예감(Vorahnung, Vorgefühl)은 아직 실체가 없지만, 미리 추측하고 느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의 합리적인 구원에 대한 예감은 순수함, 곧 교활하거나 간교함이 없는(sine dolo) 갓난아이(geni infantes)와 같은 상태일 때 주어진다는 것은 신앙상식입니다. 인간 안에 있는 잔꾀와 간교함은 구원을 가져다주지 않습니다(salutem). 하지만 그리스도인을 비롯하여 많은 종교인은 속임수와 간교와 간계로서 살아갑니다. 그것이 아무리 인간의 생존경쟁을 위한 심리적 기제라고 하더라도 종교에서조차 그러한 현상이 목도 된다면 종교인으로서 살아갈 가치가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2020. 5. 10.
시들지 않는 구원이여 시들지 않는 구원이여 믿음이 있는 사람은 희망을 봅니다! 사람들은 살아서는 물론 죽어서도 자그마한 희망(spas, spem)이라도 찾으려고 합니다. 희망에 작은 것과 큰 것을 나눈다는 것이 무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희망은 상대적입니다. 절망적인 죽음의 상황에서 보면 작은 것도 큰 희망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희망을 품으면서 그 근원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현상적으로 보이는 것만이 희망의 실체인 것처럼 믿어버립니다. 희망이 갖는 의미와 그 영원성에 대해서는 사유하지 않습니다. 그저 일시적인 나의 절망적 상황만을 타개한다면 희망의 구실을 다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종교에서 말하는 희망은 어떤 최초의 존재가 그의 모범에 따라서 주는 결과로서 많은.. 2020. 4.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