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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의 영성\철학과 함석헌식의 해석학적 설교(강론)

행복하려면 시공간적인 욕망을 초월하십시오! 그리고 자신 속으로 돌아가십시오!

by anarchopists 2019. 11. 25.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1/29 05:00]에 발행한 글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함석헌의 행복론
-시공간적인 욕망을 초월하십시오! 그리고 자신 속으로 돌아가십시오!

그리스도인의 존재방식(Seinsweise) 혹은 실존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에 대한 단초를 아우구스티누스(A. Augustinus)의 저서인 『참된 종교』(De Vera Reiligione)에서 발견할 수가 있다. 그는 첫 머리에서 글강 외듯 이렇게 말한다. “참종교에 선하고 행복한 삶의 길이 있으며, 그 참종교란 하나이신 하느님을 예배하고, 지극히 순수한 경외심으로 하느님을 자연 만물의 원천으로 인정함에 있다.”(아우구스티누스, 참된 종교, 분도출판사, 2011, 29)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으로 존재한다는 것,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으로 실존한다는 것은 신을 예배하고 경외하며 그분을 만물의 일자로 인정하는 삶을 뜻한다. 그는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행복한 삶과 직결되어 있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신과 연관된 삶, 신을 향해 마음을 모으고 머리를 숙임, 신을 두려움과 떨림으로 인식함, 신을 창조주로 고백하는 삶에서 비롯된다.


 
그리스도인의 존재방식을 좀 더 부연하자면 하나님을 향유함(frui Deo), 하나님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곁에 모시고 바라봄, 그분에게서 시선을 떼지 아니함으로 풀이할 수 있다. 당연히 그리스도인은 무엇으로 존재한다고 규정할 수 있다. 이 무엇으로 존재함에서 ‘무엇’은 상태와 기분, 조건이나 실존을 나타낸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무엇을 밝히기 위해서 그리스도인으로 존재함과 행복을 등치시키듯이, 함석헌도 그리스도인의 무엇으로 존재함 혹은 존재방식을 “하나님께 속함”으로 본다.

“교회를 부정하는 자유신앙이야말로 교회를 살리는 참 생명이다. 하나님에게 완전히 속하기 위하여 어떤 인간적인 권위나 제도에도 구속을 아니 당하는 것이 신앙이다. [...] 현대가 과도기에 빠졌다 함은 교회가 늙어버렸다는 말이다. [...] 종교가 모체로서의 자기완성을 다하고, 열린 교회가 되지 못하고 닫힌 교회가 되는 순간, 자기 통일을 완성하는 동시에 역사를 통일해 갈 실력을 잃는다. 그것은 정신적 침체를 의미한다. [...] 교회가 늙는 것은 세속적 문화에 타협함으로써, 즉 바빌론의 술에 취함으로써 되는 것이라 할 것이다.”(함석헌저작집 14, 새 시대의 종교, 한길사, 2009, 47)

  하나님께 속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인의 실존은 교회의 거부, 곧 권위와 제도에서 자유로운 상태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교회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권위와 제도가 오히려 하나님을 잃게 만들고 정신적 침체 현상으로까지 이를 수 있음을 비판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함석헌은 하나님을 얽매이게 하는 모든 것들을 부정한다. 그것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개념으로 말하자면 철저하게 하나님만을 “향유”(frui Deo)하고자 함이다.


이는 현대의 교회가 하나님을 상품화하고 “이용”(uti)하는 사물성의 존재 인식에서 벗어나서 참종교의
자유로운 신앙 인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에 대한 신앙 행위는 닫힌 교회에서 열린 교회(현대 극장식 건축구조와 예배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세속적 문화에 대한 저항과 탈피로 나아간다. 그리스도인의 신에 대한 향유는 신에 대한 정신적 생명이기
때문이다.(함석헌저작집 14, 새 시대의 종교, 한길사, 2009, 47-48) 그렇다면 우리를 얽어매는 모든 시간과 공간적인 것들(이 모든 속성들은 유한적이고 가변적인 것들이다)을 초월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존재방식 혹은 행복은 항상 ~로부터의 극복, 해방, 탈피를 의하는데, 그 원천적인 힘은 바로 순수지성(아우구스티누스, 참된 종교, 분도출판사, 2011, 33-37) 혹은 이성(함석헌저작집 14, 새 시대의 종교, 한길사, 2009, 40)에서 나온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순수지성은 진리를 포착하는 능력이자 인간 심성의 심층부에 있는 것으로 불변하는 사물을 직관하는 능력이다(아우구스티누스, 참된 종교, 분도출판사, 2011, 33-37). 함석헌에게 있어서 이성은 “절대자의 절대성”, 곧 “무한 영원”을 인식하는 능력이다. 뿐만 아니라 이성은 위로부터 오는 영의 빛으로서 무반성적으로 도취된 신앙 감정을 제어하고 섣부르게 영으로 속단하는 신앙 행위를 식별한다.(함석헌저작집 14, 새 시대의 종교, 한길사, 2009, 40, 62-63)


  그와 같은 순수지성 혹은 이성은 세속의 야욕과 욕망을 멀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존재방식을 더욱 확고하게 하면서 신의 향유에 걸맞지 않은 것들을 하지 못하도록 한다. 그와 동시에 신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모든 인간의 세속성에 틈을 열어주는 여유 혹은 여가(otium)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아우구스티누스, 참된 종교, 분도출판사, 2011, 153-163). 현대 사회에서 자칫 여유나 여가도 세속적이고 자본주의적인 범주 속에 갇혀 있는 이념적이거나 한갓 노동을 위한 노동자의 모순적인 휴식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추구하는 행복의 목표가 신에게 있다고 할 때, 여유는 그리스도인의 존재방식 혹은 삶의 방식을 규정하는 실존적 반성의 자율성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함석헌은 이를 두고 이성의 시공간적 초월성을 강조했는데 초월성의 현실이 곧 행복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깨닫게 해준다.(함석헌저작집 14, 새 시대의 종교, 한길사, 2009, 40)


  함석헌은 “종교로 인하여 한 문화가 일어날 수 있으나, 종교는 영원을 지향하는 정신적 생명운동이므로 그 문화에
취해서는 안 된다. [...] 문화는 어디까지나 지상적이요, 종교는 하늘을 지향하는 운동이다. 고로 서로 달라붙어서는 아니 된다. 문화는 신앙에 의하여 부단히 부정당해야 한다
.”(함석헌저작집 14, 새 시대의 종교, 한길사, 2009, 47-48)고 말했다. 그에 의하면 종교의 지향성은 하늘이다. 종교는 하늘을 지향하여 움직이고 또 움직이는 정신이다. 하늘의 초월성과 얼이 편만한 세계는 어느 누구의 소유일 수 없다. 그곳(그것의 상태/존재)은 만인에게 평등하며 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행복을 가져다주는 열린 세계이다. 그래서 “자기에게 이루어지기 바라는 선이 상대방에게도 이루어지고, 자기에게 일어나지 않기 바라는 악은 상대방에게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사랑의 법칙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참된 종교, 분도출판사, 2011, 195)는 말처럼 서로-행복할 수 있는 세계, 얼의 평등성을 만들어야 한다. 종교는 머물지 않는 정신이자, 하늘을 향한 얼의 긍정이라고 한다면, 온-얼을 긍정하여 밖에서 혹은 외물에서 행복을 찾지 말고 오직 내 안에서 찾아야 하리라.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한다.

“밖으로 나가지 마라. 그대 자신 속으로 돌아가라. 인간 내면에 진리께서 거하신다. 그리고 그대의 본성이 가변적임을 발견하거든 그대 자신도 초월하라(Noli foras ire, in te ipsum redi. In interiore homine habitat veritas. Et si tuam naturam mutabilem inveneris, transcende et te ipsum).”(아우구스티누스, 참된 종교, 분도출판사, 2011, 167)

  행복을 자신의 밖이나 물질에서 찾는 오늘날 인간에게 교훈하는 말이다. 이 말은 신앙인이든 비신앙인이든 관계없이 중요한 삶의 지표임이 틀림없다. 또한 행복은 자신만을 위한 행복이 아니라, 이웃을 위한 행복이어야 한다.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선이 타자에게도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나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악이 타자에게도 발생하지 않도록 바라는 것, 이것은 마치 동서고금의 황금률과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행복은 사유이기도 하고 기분이기도 하다. 행복한 순간 그것을 행복하다고 언표하면 설령 언표 되기 이전에 행복의 표상이 사라졌다 하더라도 사유로서의 행복은 존재한다. 또한 행복한 순간 그 감정과 기분을 언표 할 수 없을지라도 행복은 실재한다. 오직 세속의 야심과 눈의 정욕과 육체의 정욕을 멀리할 뿐만 아니라 사물에 얽매이지 않고 순수지성으로 깊은 내면으로 파고들어 존재 그 자체이신 그분(삶의 의미체/의미 단위)을 만나게 된다면 말이다. 그것이야말로 종교의 행복에 대한 실재성만도 아닌 인간의 보편적인 행복이 아닐까?




*위의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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