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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논단15

향후 함석헌 연구와 운동의 방향: 단일론적 큰 이야기에서 다원론적 작은 이야기로 향후 함석헌 연구와 운동의 방향: 단일론적 큰 이야기에서 다원론적 작은 이야기로 1. 훈고학적 함석헌 연구를 넘어서야 합니다! 지금까지 필자의 함석헌 연구가 ‘텍스트’(text)에 집착해서 시행되지 않았다는 것은 장점이자 단점, 단점이자 장점일 수 있습니다. 항상 필자가 서 있는 ‘콘텍스트’(context)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먼저 던지고, 그 다음에 텍스트에 접근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필자는 함석헌훈구학자는 아닙니다. ‘함석헌 왈’(曰)이라고 하면서 함석헌의 본래 이야기와 운동의 성격을 짚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함석헌의 사실(fact)조차도 이미 해석되고 가공된 사실입니다. 사실이 가공되었다는 말에 대한 곡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함석헌의 역사적 사건이나 말과 글이 거짓이라는 말이냐,.. 2021. 1. 15.
생명적 존재자에 대한 예의와 방역 단계 유감 생명적 존재자에 대한 예의와 방역 단계 유감 “이따금씩 일어나는 재해는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제아무리 인간이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한다고 하더라도, 역시 자연의 힘 앞에는 무력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 줍니다.”_G. Duby, 양영란 옮김, 서기 1000년과 서기 2000년, 그 두려움의 흔적들, 동문선, 1997, 183. “살아라!”라는 절대명령에서 예외자는 없다! 절대명령은 생의 의지(Wille zum Leben) 혹은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를 지닌 모든 존재자에게는 무례하고 무심하게 들린다. 절대명령은 그 명령을 내리는 주체와 그것을 이행해야만 하는 객체가 따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자들은 자발적으로 타나토스(Thanatos)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강하다... 2021. 1. 14.
아나키스트 함석헌의 생태철학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1/15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인간의 세계 경험과 인식의 성찰, 그리고 아나키스트 함석헌의 생태철학 1. 우리는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또는 세계-내-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계란 이미 세계에 대한 경험과 인식의 지평에서 확정된 것이 아니라면 세계는 온전히 포착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더군다나 그 세계는 나의 인식의 지평을 넘어서 있다면 세계는 인식의 대상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세계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그 경험의 세계를 자신의 존재 지평으로서 판단하고 심지어 대상화하려고 한다. 하지만 세계(이하 자연의 영역을 포함)는 단지 인간의 경험과 인식으로서의 수단이나 대상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인간이라는.. 2020. 1. 6.
함석헌, 그리고 생태아나키즘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1/16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 그리고 생태아나키즘 [어제 계속]더욱이 아나키즘은 모든 억압이나 강압에 대해서 반대하면서 오히려 자본과 정부가 부추기는 적자생존의 경쟁이나 성공 지향적 삶이 아니라 자연을 돌보고 함께-살고[共存], 함께-즐거운 사회[共樂]로 전회하자고 주장한다. 논자는 여기에 아나키즘의 중요한 생태적 언어와 사상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아나키즘 혹은 아나키스트의 언어는 경쟁적 언어나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생태적이며 공생적인 사유가 담긴 말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거칠고 메마른 경쟁과 소외된 언어는 공존과 공락이 가능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앞에서 언급한 ‘전복’과 ‘저항’이라는 말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공존, 공.. 2020. 1. 6.
생태아나키즘과 언어, 그리고 함석헌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1/17 06:37]에 발행한 글입니다. 3. 칼 야스퍼스(K. Jaspers)가 인간이란 존재는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과정 중에 있는 즉 인간됨(Menschenwerden)을 지향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과학적 인식으로 낱낱이 인간의 실체가 밝혀짐으로써 인간의 실존적 신비를 상실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금치 못했다. 또한 그렇다고 해서 과학적인 객관주의에 따라 인간의 본질이 다 드러난다고 생각할 수도 없다고 했다. 다만 인간은 미완결된 존재이기 때문에 완결된 인간의 모습으로 가기 위한 끝없는 ‘실존해명’ (Exi -stenzerhellung)만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자연세계, 인간의 삶의 세계는 모두 남김없이 파헤쳐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020. 1. 6.
생태아나키즘, 그리고 함석헌의 삶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1/18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생태아나키즘, 그리고 함석헌의 삶 4. “지배․피지배 속에 인간은 있을 수 없다... 사람은 저항하는 거다. 저항하는 것이 곧 인간이다. 저항할 줄 모르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 그러면서 샤르댕(Pierre Theilhard de Chardin)의 진화론적 영성에 영향을 받은 함석헌은 생명이란 모름지기 끊임없이 반항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왜 그런가. 저항은 곧 나라는 존재가 스스로 나이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것은 인격적 자주성, 노예와 같은 인간에서 자유로운 인간으로의 도약을 위해서이다. 아나키즘의 논리와 잘 들어맞지 않는가? 지금까지 우리는 아나키즘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상을 알아보았다면, 마찬가지로 함석헌도 어떠.. 2020. 1. 6.
생태아나키즘, 그리고 함석헌의 인간과 자연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1/19 06:50]에 발행한 글입니다. 5. 인간은 “자유, 존엄성, 창조성에 근거해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며, 자신의 운명을 가능한 한 스스로 통제할 수 있게 하는 경제체제 속에 살면서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언어학자이자 무정부사상가라 할 수 있는 촘스키 역시 자유란 인간의 본성이며 자유를 의식하는 것이 인간본성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나는 자유를 광적으로 좋아한다. 나는 아주 독특한 조건으로 자유가 보장될 때 지성이 계발되고 인간이 존엄성을 누리며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자유란 국가가 부여하고 할당하며 규제하는 그런 완전히 공식적인 자유가 아니다... 내가 말하는 자유는 그 이름에 합당한 유일할 자유로서, 개개인에게 잠재해 있는 물.. 2020. 1. 6.
아나키스트 함석헌의 생태 아나키즘 1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2/28 06:56]에 발행한 글입니다. [제3회 함석헌평화포럼 학술발표글-김대식] 아나키스트 함석헌의 생태철학 1. 들어가는 말 우리는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또한 세계-내-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계라는 말은 이미 세계에 대한 경험과 인식의 지평에서 확정된 것이 아니라면 세계는 온전히 포착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더군다나 그 세계는 세계로서 나에게 드러나 있는 인식의 지평을 넘어서 있다면 세계는 인식의 대상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세계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인식하고 그 경험의 세계를 자신의 존재 지평으로서 판단하고 세계를 대상화하려고 한다. 하지만 세계(이하 자연의 영역을 포함)는 단지 인식과 인간의 수단으로서의 경험 대상이 아니.. 2019. 12. 27.
아나키스트 함석헌의 생태아나키즘 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3/02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제3회 함석헌평화포럼 학술발표 글-김대식] 아나키즘과 생태철학을 접붙인 생태아나키즘 2019. 1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