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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철학\함석헌, 영성10

[김조년 제2강] 함석헌이 말하는 고난의 의미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3/20 09:27]에 발행한 글입니다. 시대의 낌새와 소리 함석헌이 말하는 고난의 의미 함석헌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고난’으로 본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의 역사인들 고난 없이 오늘에 이른 것이 있으랴마는 특히 우리의 역사를 그렇게 본다. 지리상으로, 문화상으로 볼 때도 고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었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와 달리 종교가 번갈아 역사를 흘러오면서 달라진 것도 그 한 가지를 뜻한다고 본다. 한 가지 종교로서는 변화되는 역사를 이끌거나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고난’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에 대하여 곰곰이 따지고 생각한 끝에 결론으로 얻은 것이 ‘고난의 의미’였다. 도대체 끝 모르게 지속되는 고난의 뜻이 어디에 있는.. 2020. 1. 30.
[김대식 제1강] 거짓된 종교는 참이 아니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3/30 09:13]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이 말하는 으뜸이 되는 가르침과 얼 제1강 종교는 참(찾음)이다! “참 찾아 여는 길에/ 한 참 두 참 쉬 잘 참가/ 참 참이 참아 깨 새/ 하늘 끝 함 밝힐 거니/ 참 든 맘 빈 한 아 참/ 사뭇찬 참 찾으리.“ 종교라는 말마디는 이미 으뜸이 되는 혹은 거룩한(‘마루’ 宗) 가르침(敎)이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종교란 무엇보다도 삶의 좌표가 되어주는 으뜸이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것보다도 순수하고 거룩한 것이 되지 않으며 안 됩니다. 종교가 가지고 있는 존재의 무게가 있기 때문입니다. 함석헌의 표현대로 ‘삶은 살아감’입니다. 그런데 살아간다는 것은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살아가.. 2020. 1. 30.
[김대식 2강] 함석헌 - 종교는 죽어야 삶이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3/31 09:2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이 말하는 으뜸이 되는 가르침과 얼 제2강 종교, “죽어야 사는 것입니다!” 본디 “종교는 죽어야 삶입니다.” 죽음으로 사는 것이 종교입니다. 그런데 종교가 살면서 죽음을 회피하려고 합니다. 영원히 산다는 것은 죽음이 있어야 영원히 살 수 있는 법인데, 영원히 살기 위해서 죽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죽음으로써 삶을 사는 참 종교가 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유사 이래로 죽음을 제쳐놓고 사는 종교 혹은 살아남는 종교는 보지 못했습니다. 함석헌은 이를 두고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전체를 살려 내기 위해 날마다 자기를 십자가에 내주는 ‘그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날마다 죽어야 할 .. 2020. 1. 30.
[김대식 제3강] 종교는 건강한 인간을 만든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4/01 09:59]에 발행한 글입니다. “종교는, 한 마디로 그 뜻을 찾자는 운동이다!” 종교는 인간의 자아와 대상을 건전하게 인식하며 통합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종교의 기능이란 건강한 인간을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건강한 인간이란 이성과 감성이 잘 조화된 인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머리만 발달한 인간은 가슴이 차갑기만 할 것이고, 감정만 앞세우는 인간은 이성적, 합리적, 논리적 판단이 흐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는 이러한 이성이나 감성과 함께 영성을 덧붙임으로써 그 고유의 성격을 규정하려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적 인간이라 함은 종교적 사유와 행위를 종교적 정신에 걸맞게 형성된 사람을 일컫습니다. 그러므로 종교적 정신(spirit)에 .. 2020. 1. 30.
[김 대식 제4강] 종교는 혁명, 곧 천명을 새롭게 하라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4/02 08:15]에 발행한 글입니다. 종교는 “혁명 곧 천명(天命)을 새롭게 하라!” 예로부터 종교는 땅의 백성, 씨알에게 숨통을 터주고 새로운 삶을 바라보도록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으뜸이 되는 가르침이었고, 정신의 거룩한 마루로 불렸습니다. 그것은 ‘천명’, 곧 ‘하늘-숨’을 통해 인간의 삶을 새롭게 했기 때문이고, 하늘-숨으로 땅-숨을 내었기 때문입니다. 땅-숨이 막히면 삶은 정체되고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땅-숨구멍을 내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하늘-숨을 열어야만 했습니다. 백성이 딛고 있는 삶의 숨(-구멍)이 꼴깍꼴깍 거릴 때 하늘-숨이 백성의 삶에 숨통을 트게 만들어 주었음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실, 세계의 현실은 그.. 2020. 1. 29.
[김대식 제5강] 새로운 생명은 믿음 곧, 종교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4/03 07:01]에 발행한 글입니다. 제5강 “새롬, 샘, 삶, 영원히 스스로 새롭는 생명을 믿음이 곧 새 종교다!” 함석헌은 “새 것을 믿으면 스스로 새로운 삶이 된다. 내가 새롬이 되면 새 숨이 저절로 쉬어진다”고 했습니다. 종교가 태동되기만 하면 종교적 삶이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새로운 종교로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날로 새로운 삶, 새로운 변화, 새로운 마음으로 영원이 삶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영원히 새로운 종교가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 편협하기 짝이 없는 ‘우리’라는 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우리 교회, 우리 성당, 우리 사찰, 우리 종교, 우리 정당, 우리 동네, 우리 자식, 심지어 우리나라 등. 이 모.. 2020. 1. 29.
[김대식 제6강] 함석헌의 유신론적 진화론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4/04 09:16]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의 유신론적 진화론, 종교는 진화해야 한다! 함석헌에 따르면, “하나님의 운동은 저항”입니다. 또한 “천지창조하려는 하나님이 물 위에 운동하셨다는 그 운동은 무슨 운동이었나? 반항운동이었다”고 말하는 논조는 마치 생성신학, 혹은 생성철학을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운동성이 근본적으로 반항운동에 있다고 말한 것은 하나님이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적 생성자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저항이라는 것을 굳이 어떠한 불의의 세력에 항거하는 운동으로 볼 수도 있지만, 종교적인 측면에서는 권력에 안주하려는 신앙의 안일함, 예언자적 비판력의 상실, 하나님성(Godness)이 아닌 것에 욕망하려는 것에 끊임없이 거.. 2020. 1. 29.
함석헌의 '기억의 신학'과 영성적 철학-1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6/11 08:39]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을 말한다- 김대식] 함석헌이 기억됨의 한계 됨과 기술(記述)로서의 기억 함석헌, 오늘날 그를 기억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모름지기 기억은 해석-함이라는 하나의 행위입니다. 해석학적 행위는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언어적 엄밀성과 행동으로 삶을 엮어가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함석헌은 ‘축적된 전통’이라는 의미에서의 종교를 신봉하는 종교인은 아니지만 ‘마음의 초월체험’을 하면서 살다간 올곧은 신앙인이었다. 스스로 이단자가 되기를 선언하면서 교권제도 속에서 화석처럼 교리화된 기독교를 비판하고 그에 맞서 싸운 사람이지만 그는 ‘갈릴리 예수’와 ‘예수의 낙인(스티그마)’을 몸에 지닌 바울을 .. 2020. 1. 27.
함석헌의 신앙적 외침- 오직 하나님만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6/12 11:02]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을 말한다- 김대식] 함석헌의 신앙적 외침-오직 하나님만 함석헌은 초기에 무교회의자라는 꼬리표가 붙어있었습니다. 이것은 우찌무라 간조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퀘이커교가 형식적이거나 교리적이지 않아서 좋았다’라는 고백적 어투에서도 묻어나듯이, 그가 교회의 현실을 비판적 시각에서 보려고 한 것은 분명히 무교회적인 사상과 뿌리가 그에게 여전히 남아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가 무교회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교회는 “인간주의” 혹은 국가의 시녀 역할을 하는 교회의 모습으로 비추어졌습니다. 인간주의는 자칫 교회주의라는 조직과 교권을 가진 교회가 되어 그러한 교(도)권으로 성서를 해석하고 급기야 개인의 생활전반.. 2020. 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