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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알의 소리69

[제1강] 왜 지금 함석헌을 이야기하는가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8/12/08 23:47 함석헌을 ]에 발행한 글입니다. 제1장 왜 지금 함석헌을 이야기하는가 김영호(함석헌‧씨알사상연구원장. 인하대명예교수) 1. 20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인물이며 사상가 21세기에 접어들기 직전 지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인물로 과학자 아인슈타인을 뽑았다. 인도의 성인 마하트마 간디가 아깝게 그 뒤를 이었다. 서구적 시각과 가치관에서 그런 결과가 나왔을 법하다. 동양적인 시각에서는 간디가 뽑혔을 것이다. 현대 한국을 대표하는 인물이나 사상가를 꼽으라면 누구일까.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아마 함석헌(1901-89)보다 더 마땅한 인물을 찾아내기는 힘들지 모른다. 그는 20세기 고난의 역사 현장에서 자기를 버리고 사유하고 행동한 보기 드문 선비였다.. 2020. 2. 9.
[제5강] 정보화시대를 헤쳐나갈 길잡이, 함석헌의 말글이 있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8/12/12 06:32]에 발행한 글입니다. 5. 정보화시대를 헤쳐나갈 길잡이와 새 고전이 필요할 때 - 함석헌의 말글이 있다 김영호(씨알사상연구원 원장, 인하대하교 명예교수 현대인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어딘가로 휩쓸려가고 있다. 정보화는 축복인가 저주인가. 목적과 방향이 확실할 때에만 축복이 된다. 함석헌은 문견(聞見)(information)보다 ‘성질변화’(transformation) 즉 근원적 탈바꿈을 강조한다. 이용하기 나름이라면 지침이나 나침판이 필요하다.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책중의 책이라는 성서와 경전들도 많다. 부분적 진리를 전해주거나 시대에 맞는 해석이 필요한 것들이다. 현실에서 이상까지 폭 넓고 깊은 사유와 실천방법론을 제시한 이 시대의 고전이 잇.. 2020. 2. 9.
[김대식-제6강] 진화하는 씨알의 생명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2/07 09:00]에 발행한 글입니다. 비욘드 씨알 텍스트 진화하는 씨알의 생명, “생명은 지속이다!” 함석헌은 근현대사 통섭의 선구자다. 함석헌의 사상 곳곳에서는 진화론적 성격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손(H. L. Bergson, 1859-1941)과 떼이야르 드 샤르댕(Pierre Teilhard de Chardin, 1881-1955)의 진화론적 색채를 이어 받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공교롭게도 올해(2009)는 진화론의 창시자인 찰스 다윈(Charles R. Darwin, 1809-1882)의 서거 2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세계의 학문적 흐름은 일찌감치 생물학적 패러다임으로 바뀌었고, 그에 따라 우리나라의 학.. 2020. 2. 3.
[박종강-제4강] 간디와 사기변호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2/28 10:06]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서거 20주기, 간디서거 61주기 추모학술마당 강연-박종강] 간디와 사기변호 -진리와 의뢰인의 현실적 이해중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가?- 정당한 사건만 이간다. 간디는 새 의뢰인을 만날 때 자신은 부정사건을 맡지도 않고, 증인을 코치하지도 않는다고 주의를 주었다. 그 결과로 간디는 부정사건을 의뢰받지 않는다는 평판을 얻게 된다. 간디의 철칙은 그래서 정당한 사건만 이긴다는 것이다. 간디가 변호한 수많은 사건 중에 재판부에서 사기변호로 의심받았던 사건에 대하여 자서전에서 밝히는 사건이 있다. 이 사건은 분쟁 중에 계산식과 관련하여 재판부가 재판중 계리사(요즈음의 공인회계사)에게 중재(仲裁)를 회부한 건이었다. 계리사의 .. 2020. 2. 2.
[박종강-제5강] 법은 세상에 어떻게 활용되어야 하는가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3/02 09:3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20주기, 간디61주기 추모학술마당 강연내용-박종강] 간디와 다다압둘라소송 - 법은 세상에 어떻게 활용되어야 하는가?- 법의 진정한 활용을 배워라. 간디는 남아프리카 프리토리아에서 벌어지는 다다압둘라사건을 위하여 인도에서 남아프리카로 간다. 위 소송은 다다압둘라가 원고이고, 피고는 테브세드였는데 서로 친척 간 이었다. 소송가액은 4만파운드로 1890년대 당시는 대단히 큰 사건이었다. 원고 측이 약속어음금의 지급을 구하는데 대하여 상대방이 위 약속어음이 부정하게 발행되었다는 항변을 하는 소송이었고, 법률적 쟁점이 많은 사건이었다. 원고 측과 피고 측이 일류 변호사들을 선임해서 내세우는데 간디의 역할은 다다압둘라회사의 .. 2020. 1. 31.
[박종강 제6강] 간디가 바라던 세상은?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3/03 09:28]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 서거20주기, 간디 서거 61주기 추모학술마당 강연내용-박종강] 간디가 바라던 세상은? 당초, 간디는 변호사자격을 취득하였으나, 법정에서 어떻게 해야 할 줄 전혀 몰랐다. 간디는 이때 변호사였던 프레더릭 펜거트의 조언을 받는다. 펜거트는 간디에게 변호사가 각별할 재주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정직하고 근면하면 된다는 조언을 한다. 그런데, 사실 간디는 이 두 가지 점에 있어서 타고난 점을 가졌다. 한편, 펜거트는 간디의 독서범위를 점검하고 “자네는 일반 독서가 부족해. 자네는 세계를 몰라. 그것은 변호사에게 필요한 것이네, 자네는 인도역사조차도 읽지 못했단 말이야. 변호사는 인간성을 알아야하네. 사람의 얼굴을 .. 2020. 1. 31.
[김삼웅 제2강] 함석헌의 비폭력 저항주의 실천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3/05 09:0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서거 20주기, 간디서거 61주기 추모학술마당 강연내용-김삼웅] 비폭력 저항주의의 실천 함석헌은 비폭력저항주의자다. 함석헌은 세상이 다 아는 대로 비폭력 저항주의자이다. 이에 따라 반체제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일부 인사들이 함석헌의 비폭력 저항주의를 두고 저항운동에 ‘찬물을 끼얹는 짓’ 이라며 못마땅해 하였다. 역사적 허무주의나 패배주의가 아니냐고 힐난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반항은 하지만 미워하지 말고 싸움은 하지만 주먹질을 말라”고 비폭력 저항을 주창하였다. 그렇지만 함석헌은 딱 한 차례 ‘폭력’을 사용한 적이 있다. 성인이 아닌 평범한 인간 함석헌도 구조악 또는 공권력에 의한 현장폭력에는 폭력으로.. 2020. 1. 31.
[김삼웅-제4강] 함석헌- 반독재투쟁에 앞장서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3/07 09:0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서거20주기, 간디서거61주기 추모학술마당 강연내용-김삼웅] 3.1선언사건 등 반독재투쟁 앞장 유신체제가 더욱 강고해지면서 긴급조치를 통해 모든 비판세력에 족쇄를 채우고 개헌운동을 폭력으로 봉쇄시킬 때에 함석헌은 분연히 일어나 독재정권에 저항했다. 함석헌 등 재야인사들은 1976년 3월 1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개최된 3.1절 기념미사의 마지막 순서로서 ‘3.1 민주구국선언’을 발표했다. 3.1 명동선언사건으로도 불리는 이 선언문은 ① 이 나라는 민주주의 기반위에 서야 한다. ② 경제입국의 구상과 자세가 근본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 ③ 민족통일은 오늘 이 겨레가 짊어진 최대과업이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박정권은 이.. 2020. 1. 31.
[김삼웅-제5강] 함석헌, 저항으로 일관한 생애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3/09 08:3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 20주기, 간디61주기 추모학술마당 강연내용-김삼웅] 함석헌, 저항으로 일관한 생애 함석헌의 생애는 저항과 투쟁으로 일관했다. 일제에 대한 저항으로 3.1 만세시위 참여, 계우회사건, 성서조선사건, 독서회사건 등으로 구속되고, 해방후 신의주학생사건으로 소련군에 의해 구속되고, 월남해서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 의해 구속되는 등 온갖 고난을 겪어야 했다. 그는 펜이 요구될 때는 진짜 글을 통해 할 말을 하고, 제도 언론이 봉쇄당할 때는 온몸을 던져 행동으로 독재권력에 맞서 싸웠다. 언론이 압제자의 편이 되어 왜곡과 곡필을 서슴지 않을 때 ‘언론의 게릴라전’을 제창하면서 직접 월간 『씨알의 소리』를 창간하여 .. 2020. 1.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