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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의 영성\철학과 함석헌식의 해석학적 설교(강론)

이웃을 배려하는 종교교육이 할 때가 아닌가

by anarchopists 2019. 12. 3.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11/03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철학이 있는 종교, 이웃을 배려하는 종교교육

함석헌에 의하면, 종교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며, 사람을 건지는 일이다(〈영원의 뱃길〉, 《함석헌전집》 19, 한길사, 1985, 104쪽). 철학과 종교의 공통점은 여기에 있다. 철학은 이성과 정신을 일깨우고 살리는 일이라면, 종교도 사람의 영혼을 일깨우고 초월자의 소리로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그것은 철학이 끊임없이 자신의 이성을 놓지 않고 세계와 분투하는 실존을 지향하고 있듯이, 종교도 하나님을 마음에서 절대로 놓지 않고 세계로부터 초월을 지향하는 것이다. 이 둘이 별개가 아니라 바로 삶의 초월, 순수한 정신으로의 지향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지점에서 합류한다.

그러한 점에서 종교를 교육한다는 것은 결국 인간 그 자체의 개조에 있다(〈영원의 뱃길〉, 앞의 책, 351쪽). 또한 그것이 궁극적으로 실현된 토포스는 ‘하늘나라’라는 공동체이다. 함석헌이 그 하늘나라가 우리 자신이 서 있는 자리, 지금 여기에 있다고 말했듯이(〈씨알에게 보내는 편지〉2, 《함석헌저작집》, 한길사, 2009, 142쪽), 하늘은 초월의 세계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기도 하지만, 이상적 사회에 대한 개념어이기도 하다.

그러면 오늘날 이러한 이상적 사회를 위한 공동체 구성원이 되도록 하는 종교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먼저 종교교육이 특정 종단에 국한된 신앙교육 차원이 아니라, 범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종교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종교학적인 의미에서 종교 혹은 종교현상을 매우 포괄적인 의미로 열어 놓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신학적인 입장에서 종교를 하나님/하느님/한울님/야훼/알라 등에 대한 인식, 합일로만 해석할 것이 아니라, 현대적 관점에서 신으로서 숭배 가능한 것 일반-이것은 이미 오늘날 “세속성”, “종교성”(religiousness), “종교적임”(being religious)이라는 것을 구분하기가 애매모호해졌다는 데에서도 드러난다
(John Sealey, 강돈구, 박진원 옮김, 《종교교육이론》, 서광사, 1992, 5쪽)-을 포괄하여, 그것의 종교학적 함의를 추적하고 철학적 반성에 따라서 삶의 행복을 유도할 수 있는가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즉 모든 것 안에 불성이 있다, 하나님성이 있다, 하느님성이 있다 등으로 파악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가 하는가를 물어야 할 것이다.

얼마 전에 작고한 종교학자 월터 캡스(W. Capps, 1934-1997)는 “어떤 하나의 모델이나 접근 방법의 도구를 통해서 말해질 수 있는 것보다 종교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이 언제나 더 많이 존재한다”(W. Capps, 김종서 외 옮김, 《현대종교학담론》, 까치, 1999, 447쪽)고 말하면서 “종교학은 종교가 종교학적 언어로 완전히 옮겨낼 수 없는 것임을 인식하는 것이고 이 점은 분석적이고 해석적인 진리이다”(W. Capps, 앞의 책, 471쪽)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의 의미는 종교란 종교 현상 자체에 대해서 언어로 다 해명될 수 없는 해석학적 진리라는 것이다. 또한 인간의 경험과 인식에 의해 알게 된 종교 현상이란 그것보다도 더 많은 외연의 신비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 찾기”라는 가톨릭 예수회 창설자인 이냐시오 로욜라(Ignatius de Loyola)의 영성적 모토처럼-그렇게 열려 있는 종교를 만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의 충돌과 갈등을 넘어서서 이성과 정신을 성숙시킬 수 있는 철학적 종교가 필요한 때가 지금이 아닌가하고 생각해본다. 한 가지의 대상 혹은 한 가지의 이야기를 꿰뚫어서[貫] 통할 수 있는[通], 깊이 사유하는 종교인, 그리고 철학자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에서 하나님을 놓지 말아야 한다. 함석헌은 세계 내의 삶에서 어떠한 놓음도 가능하지만, 하나님을 놓는다는 것은 나의 삶의 기반 위에 내려놓았던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내려놓고 진짜배기 하나님을 놓지 않는 절대성과 절박함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신앙이란 곧 ‘일이관지’다. 놓지 않음이다. 심중에 하나님을 놓지 않음이다”(〈영원의 뱃길〉 앞의 책, 63쪽).

에드문트 후설(E. Husserl, 1859-1938)의 제자인 로만 잉가르덴(R. Ingarden, 1893-1970)에게 있어서 철학의 역할과 기능은 인간 인식의 독선과 독단론(dogmatism)을 배격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보면 종교도 인간이 지닌 신앙의 교조주의로부터의 해방을 가져오는 것이다. 인식의 자유로움은 실천과 관심의 지평에서 거칠 것이 없으며, 그것을 위해서 각 종단의 종교교육은 어린이로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이웃 종교와의 관계 교육, 독단으로부터 해방되는 교육, 인식의 우상이라는 동굴로부터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시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외쳐 오던 주장이기는 하지만, 역시 후설의 제자인 오이겐 핑크(E. Fink, 1905-1975)도 인간의 참된 교육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교육이 인간간의 상호 이해, 의사소통 그리고 상호공존을 위한 교육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
두가 깨달아야 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인간이 인류로서 존속하기를 원한다면 상호공존의 공식을 발견해야 한다...... 지식을 목표로 하는 교육이 인간교육을 위한 최종의 방향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E. Fink, 〈현상학에서 인간학으로〉, 차인석, 《현대사상을 찾아서》, 문학과지성사, 1976, 192쪽).

마찬가지로 오늘날 종교교육의 목적이 종교와 종교 사이의 상호이해와 상호공존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는 각 종단의 종교교육 혹은 신앙교육이 단순히 자신의 종단의 정체성과 신앙적 성격을 이해시키고, 이념화하는 지식습득의 교육에만 국한시켜서는 안 되며, 이웃종교의 깊이 있고 애정 어린 이해와 관심, 이웃종교와의 평화를 위한 교육이 필연적으로 이루어져야 된다는 말이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종교)교육이란 인간이 지닌 순수한 가능성을 끄집어내는 것(e-ducare)이다. 순수한 가능성은 사실과 현실이라는 현실태와 부딪히지만 그곳에서 타자, 이웃종교를 위한 배려, 염려, 관심이 싹틀 수 있는 그야말로 이상이 열리게 된다. 신(神)이 순수한 실재라면 순수한 가능성은 그 실재의 나타남이다. 그래서 신을 모심은 뜻을 모으는 것이고 마음을 모으는 것으로서 인간 삶의 전영역에 초월적 실재를 놓아-두고[있게-함] 신과 함께 모두-놀이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종교제도나 종교조직에서의 종교교육이 이웃과의 소통이나 평화를 가져오기보다는 씨알 개개인의 인식의 변화가 세계를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종교 자체의 제도적 교육에 얽매이거나 그것이 전부 다라고 생각하는 인식의 오류에 빠지지 않고, 씨알이 철학적 사유를 통해서 깨우친다면 그 역사적 사건이 훨씬 빨리 일어날 것이다. 철학이 모름지기 이론과 실천에 대해서 끊임없이 어떤 오류나 취약점을 밝혀내는 것(John Sealey, 앞의 책, 23쪽)이라면 씨알의 이성을 통한 종교교육의 이론이나 실천에 대한 비판은 세계 변화를 위한 첫 발걸음이 될 것이다. 더불어 씨알의 자기 교육, 자기 훈련(함석헌은 이를 무척 강조했다. 〈두려워 말고 외치라〉, 《함석헌전집》 11, 한길사, 1984, 368쪽)은 궁극적으로 종교의 쇄신을 가져올 수 있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 될 것이다(2011/11/03, 김대식).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 본문 내용 중 사진(아래)은 강원일보 2008년 9월 17일자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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