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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박경희 작가 단상22

[오늘의 명상] 대학로의 실개천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0/05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대학로의 실개천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정지용의 '향수'에 나오는 가사는 언제 들어도 정겹다. 누구나 실개천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을 것이다. 보자기 가방 메고 십리 길을 동무들과 걸어오며 실개천에 흐르는 물 그대로를 나뭇잎에 떠 마시던 추억과 함께. 대학로 원주민으로서 실개천이 생긴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솔직히 설렜다. '향수'에 나오는 실개천은 아닐지라도 밤낮으로 졸졸 흐르는 도랑물을 매일 오가며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적잖이 흥분되기도 했다. 얼마 후, 언론에서 대학로에 실개천이 생겼다고 요란법석을 떠는 것을 보고 나갔다 난 실소를 금치 못하고 말았다. '지금 시민들에게 장난 하.. 2020. 1. 9.
마로니에 공원의 노숙자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0/06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마로니에 공원의 노숙자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제보다 더 멋지십니다." 외출하기 위해 마로니에 공원을 지날 때마다 그는 너스레를 떨며 내게 인사를 한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어느 날 교회 식당에서였다. 우리 교회는 매 주일 교인들을 위해 무료로 점심을 제공한다. 식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선 그는 훤칠한 키에 뚜렷한 이목구비 등이 얼핏 보기엔 평범한 샐러리맨 같아 보였다. 그러나 곁에서 밥을 먹다 보니 온몸에서 쉰내가 진동했고 눈동자는 풀려있었다. 남자는 식당 밥을 한 번만이 아니라 두세 번까지 연신 갖다 먹더니 급기야 준비 해 온 검은 비닐봉지에 새 밥을 갖다 반찬과 같이 꾹꾹 쑤셔 넣었다. 나는 그의 예사롭지 않은 행동을.. 2020. 1. 9.
망루- 세명교회, 그리고 목사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0/07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망루 얼마 전에 라는 세태 소설을 읽었다. 간단하게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대형 교회인 세명교회 당회장 목사는 거룩이라는 가면을 쓰고 짐승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민우는 도강동 시장에서 평생 노점상을 하며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목사가 되길 바라는 어머니의 뜻을 거부할 수 없어 신학생이 되었고, 지금은 세명교회 전도사다. 그는 세명교회 담임 목사의 설교문을 대필해 줄 뿐 아니라, 그의 모든 비리를 알면서도 꺼이꺼이 그의 종처럼 살아가고 있다. 평생을 오롯이 시장에 매달려 살아 온 상인들을 거리로 내쫓는데 앞장서는 사람들은 바로 세명교회 당회장 목사와 그의 오른팔인 윤 장로다. 그들은 도강동의 재개발을 빌미.. 2020. 1. 9.
꼬장떡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0/08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꼬장떡 우연히 탈북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글쓰기 지도를 한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에게 내가 얻는 게 더 많다. 얼마 전에 나와 대화의 물꼬를 튼 몇 몇 친구를 대학로로 초대했다. 내가 살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기대했던 대로 아이들과 집에서 다과를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쉽게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었다. 땅거미가 지자 슬슬 배가 고파왔다. 늘 먹던 음식보다는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곳에 데리고 가고 싶었다. "실컷 먹어!" "네, 잘 먹겠슴다." 아이들은 특유의 이북 사투리 섞인 음성으로 밝게 대답했다. 그런데 아이들의 젓가락질이 별로 활발하지 않았다. "왜 입맛에 안 맞아? 여기가 대학로.. 2020. 1. 9.
죽은 혼령들아, 분단 없는 조국하늘에서 편히 쉬거라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1/29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죽은 혼령들아, 분단 없는 조국하늘에서 편히 쉬거라 오뚝한 코, 아직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맑은 눈, 선해 보이는 입매. 그래선지 꼭 눌러 쓴 해병대모자가 왠지 어색해 보였다. 방송이나 신문에서 두 전사의 모습을 볼 때마다 울컥 눈물이 솟았다. 꽃다운 나이에 비명에 간 그들은 내 아들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늘 20분 먼저 나와서 수업 준비를 하던 착한 학생이었어요. 어차피 갈 거면 빨리 군마치고 취업 준비한다고 입대했는데……." "집에 가기가 너무 힘들다. 내일은 제발 날이 좋아 배가 떴으면 좋겠다." 이제 막 군기가 들기 시작한 이병이나 전역을 앞두고 휴가를 떠나기 위해 길에 섰다 사고를 당한 병장의 사연은 생각할수.. 2020. 1. 5.
마음이 가난한 자에 복이 있나니.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1/30 06:56]에 발행한 글입니다. 아버지라는 존재, 그리고 종합선물세트 이름표 밑에 하얀 손수건을 달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보헤미안 기질이 강한 아버지는 시도 때도 없이 집을 비우셨다. 명목상 사업 구상 때문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물 흐르는 대로 어딘가를 떠돌다 내키면 다시 집으로 돌아 오셨던 것 같다. 어느 깊은 겨울밤, 컹컹 개 짖는 소리와 함께 술 취한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보름 만에 보는 아버지의 얼굴이 이방인처럼 낯설었다. 그간의 경험으로 보아 아버지의 술주정이 시작되기 전 자리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살금살금 사랑방으로 건너가는 나를 붙잡은 건 아버지의 걸걸한 목소리였다. “옛다. 니들 선물. 도회지에서 사 온 것이다.” 그날.. 2020. 1. 5.
대통령 담화를 듣고-삶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2/01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삶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며칠 째 찜질방에 머물고 있는 연평도 주민들의 하소연을 듣다보면 절로 한숨이 나온다. 대통령의 담화문을 듣고 불안하다며 라면을 사재기하는 이웃도 있다. 전쟁을 겪은 세대나 그렇지 않은 세대 모두 불안에 떨고 있다. 도대체 인생 살 맛이 나지 않는다는 푸념과 함께. 나 역시 마음이 심란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하릴없이 서재를 서성이다 함석헌 선생님의 시집을 들춘다. 선생님은 서문에 "이것은 시가 아니다. 시 아닌 시다." 라고 서문에 강조하셨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선생님의 시집 속에는, 혼이 깃든 인생의 지침서 같은 시가 많았다. “삶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퍼져나.. 2020. 1. 5.
대한민국에서 '행복'의 숨구멍이 찾아질까.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2/02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행복이란 말조차도 모르던 할아버지 1. 어느 날 아침, 눈을 떠 컴퓨터를 켜는 순간, '행복전도사 부부 자살'이라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방송에 나와 유난히 '행복' 이라는 말을 많이 하던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복잡한 세상에 염증이 나 배낭 하나 메고 훌쩍 고비사막을 찾은 사내가 있었다. 사막을 걷는다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배고픈 건 열매라도 뜯어먹으면 해결할 수 있지만 칠흑 같은 어둠과 함께 찾아오는 고독은 견디기 힘들었다. 지친 사내는 어느 날 깊은 산 속의 게르(* 몽고식 이동텐트)에서눈빛이 유난히 맑은 할아버지를 만났다. 하루, 이틀, 게르에 머물며 방전된 몸과 마음을 충전 시켰다. 사내는 다시.. 2020. 1. 5.
권력과 먹이사슬, 그리고 부당거래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2/03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권력과 먹이사슬, 그리고 ‘부당 거래’ 모처럼 극장에서 영화 한 편을 보았다. 한국의 명작영화 , 등 사회고발적인 영화를 만들었던 류승완 감독의 라는 영화다. 역시 감독은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탄탄한 시나리오도 놀랍고 배우들의 리얼한 연기 또한 압권이었다. 주위를 살펴보니 영화관을 꽉 채운 관객들이 화면 속으로 빨려 들 듯 몰입해서 보고 있었다. 내용은 사실 매우 단순하다. 연쇄 살인 사건 때문에 온 나라가 술렁거렸다. 하지만 범인은 경찰을 비웃기라도 하듯 쥐새끼처럼 잘 피해 다녔다. 드디어 대통령이 직접 사건에 개입하게 되었다. 경찰은 잔뜩 긴장하게 되고 수사 도중 유력한 용의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게 된다. 그러면.. 2020. 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