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간디와 함석헌21

[김영호 제5강] 신은 무신론자까지 아루르는 존재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2/18 09:15]에 발행한 글입니다. [김영호의 함서헌은 말한다-5] 간디와 함석헌의 유산 종교는 인간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간디와 함석헌의 종교와 신앙은 전통적인 틀을 벗어난 것이다. 간디의 배경인 인도의 경우, 힌두교 성서인 베다경전은 기원전 1500년 경 인도대륙에 침입한 아리안 족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하여 만든 코드 문서였다. 베다에 들어있는 카스트제도의 근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간디는 경전에서 비인간적인 요구나 의례, 숭배, 순례는 거부했다.(1990:59) 이성과 도덕성에 거역하는 해석이나 주장은 부정했다.(1990:56) 이해할 수 있는 것만 받아들였다. 카스트 제도도 그 하나이다. 그는 내생에 태어나고 싶지 않지만 만약 태어나야 한다면 네 카.. 2020. 2. 2.
[김영호 제7강] 함석헌, 국가주의는 청산되어야 한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2/20 09:1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 서거20주기 추모 학술모임 강연-김영호] 함석헌는 말한다. 국가주의는 청산되어야 한다. 세계역사는 위대한 교향악이다. 왜 함석헌은 민족주의는 아니라고 말하는가. 역사가로서 그는 민족주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보기 때문이다.(전집4:69) 그는 사회와 역사의 진화를 신봉한다. 직선적 진화가 아닌 나선형적인 진화이다. 그런데 한민족은 민족주의의 물결을 타지 못하고, 민족국가 시대에 제 노릇을 못하고 민족전체가 남의 종이 되었다.(전집14:111) 그는 세계주의를 말하고 세계화를 예측했다. 그렇더라도 민족이 할 역할은 남아있다. “나는 민족주의는 아닙니다. 세계주의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세계라도 인격 없는 역사, 문화는 없.. 2020. 2. 2.
[김영호 제9강] 함석헌과 간디의 공공정신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2/23 13:28]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서거20주기 추모 학술모임 발표강연] 함석헌과 간디의 공공(公共)정신 간디와 함석헌은 평생 공공정신으로 살았다. 간디와 함석헌의 삶이 우리에게 던져준 정신과 교훈이 무엇인가. 무엇보다 철저한 공공(公共)정신이다. 이들은 평생 일관되게 사사로운 삶이 아닌 공공정신으로 살았다. 함석헌이 비록 공‧사 대립을 초월한 경지까지 이야기했지만, 실제로 그들의 삶은 어느 누구보다도 선공후사(先公後私)를 넘어 그야말로 대공무사(大公無私)한 삶이었다고 할 만하다. 이들의 인생은 사인으로서 남긴 것이 없는 무집착, 무소유의 생애였다. 환갑이 지난 나이(1931)에 간디는 그의 소유물을 이렇게 열거했다. “나는 비렁뱅이 수도사다. 내가 .. 2020. 2. 2.
[김영호 10강] 함석헌과 간디은 실천적 이상주의자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2/24 09:55]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서거 20주기 추모 학술모임 강연내용] 함석헌과 간디의 유산-맺는말 -간디와 함석헌은 실천작 이상주의자다- 두 스승은 원래 수줍고 겁 많은 소년이었지만 삶의 과정에서 점차 진리와 신의 존재에 가까이 가면서 신념과 신앙을 공고하게 하여 담대해지고 정의의 투사로 성장해갔다. 간디와 함석헌은 인도와 한국의 비교, 히말라야산맥과 장백산맥의 크기에 비례할지 모른다. 간디전집(90권)과 함석헌전집(20권/30권)에도 분량의 차이가 있다. 두 인물의 환경을 제공한 영국과 일본 통치의 차이도 문명의 차이만큼 클지도 모른다. 하지만 코끼리와 백두산 호랑이의 크기는 달라도 어느 것이 더 용맹스러운지, 더 센지는 단언하기 힘들다. 한국.. 2020. 2. 2.
[박종강-제2강] 간디의 사건수임료는 얼마였나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2/26 09:45]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서거20주기, 간디서거61주기 추모학술모임강연자료-박종강] 간디와 사건수임료 -변호사수임료로 적정한 금액은?- 사건소개비는 주지않겠다. 간디는 1891년 인도에 도착하여 뭄바이에 사무실을 낸다. 당시 간디가 처음 의뢰받은 사건은 마미바이라는 사람의 소액사건이었다. 소송가액은 작은 사건이었지만 어떤 사람이 “아마 중개인에게 수수료를 좀 주어야 할 것입니다”라고 말하였지만 간디는 이를 강력히 거절하였다. 그러자, 그 사람이 “그렇지만 한 달에 3,4천루피를 버는 형사사건변호사조차도 수수료를 주고 있습니다.”라고 하여도 “그를 본받을 필요는 없습니다.”라고 간디는 답한다. 당시 간디는 처음 의뢰받은 사건이 쉬운 것이고 하.. 2020. 2. 2.
[박종강-제3강] 사법부의 전관예우-양심을 파는 일이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2/27 09:02]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서거20주기, 간디서거 61주기 기념 학술마당 강연-박종강] 간디와 전관예우 -변호사가 연줄을 이용하여 변론하여야 하는가?- 간디가 변호사초창기에 뭄바이에서 혼나고 라지코트에서 조금씩 자리 잡아 갈려고 하였는데 연줄을 이용하려다가 큰 낭패를 당하게 된다. 결국 이것이 간디를 남아프리카로 가게 되는 계기가 된다. 당시 간디의 형인 락스미다스는 포르반다르의 젊은 왕세자 바브싱의 비서이자 고문의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왕세자가 국고에서 보석을 불법으로 반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영국인 주재관 찰스 올리번트는 왕세자가 간디의 형 락스미다스의 조언을 받아 행동한 것이라고 보고를 받았다. 이 일로 간디의 형은 범죄자가 될.. 2020. 2. 2.
[박종강-제4강] 간디와 사기변호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2/28 10:06]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서거 20주기, 간디서거 61주기 추모학술마당 강연-박종강] 간디와 사기변호 -진리와 의뢰인의 현실적 이해중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가?- 정당한 사건만 이간다. 간디는 새 의뢰인을 만날 때 자신은 부정사건을 맡지도 않고, 증인을 코치하지도 않는다고 주의를 주었다. 그 결과로 간디는 부정사건을 의뢰받지 않는다는 평판을 얻게 된다. 간디의 철칙은 그래서 정당한 사건만 이긴다는 것이다. 간디가 변호한 수많은 사건 중에 재판부에서 사기변호로 의심받았던 사건에 대하여 자서전에서 밝히는 사건이 있다. 이 사건은 분쟁 중에 계산식과 관련하여 재판부가 재판중 계리사(요즈음의 공인회계사)에게 중재(仲裁)를 회부한 건이었다. 계리사의 .. 2020. 2. 2.
[박종강-제5강] 법은 세상에 어떻게 활용되어야 하는가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3/02 09:3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20주기, 간디61주기 추모학술마당 강연내용-박종강] 간디와 다다압둘라소송 - 법은 세상에 어떻게 활용되어야 하는가?- 법의 진정한 활용을 배워라. 간디는 남아프리카 프리토리아에서 벌어지는 다다압둘라사건을 위하여 인도에서 남아프리카로 간다. 위 소송은 다다압둘라가 원고이고, 피고는 테브세드였는데 서로 친척 간 이었다. 소송가액은 4만파운드로 1890년대 당시는 대단히 큰 사건이었다. 원고 측이 약속어음금의 지급을 구하는데 대하여 상대방이 위 약속어음이 부정하게 발행되었다는 항변을 하는 소송이었고, 법률적 쟁점이 많은 사건이었다. 원고 측과 피고 측이 일류 변호사들을 선임해서 내세우는데 간디의 역할은 다다압둘라회사의 .. 2020. 1. 31.
[박종강 제6강] 간디가 바라던 세상은?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3/03 09:28]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 서거20주기, 간디 서거 61주기 추모학술마당 강연내용-박종강] 간디가 바라던 세상은? 당초, 간디는 변호사자격을 취득하였으나, 법정에서 어떻게 해야 할 줄 전혀 몰랐다. 간디는 이때 변호사였던 프레더릭 펜거트의 조언을 받는다. 펜거트는 간디에게 변호사가 각별할 재주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정직하고 근면하면 된다는 조언을 한다. 그런데, 사실 간디는 이 두 가지 점에 있어서 타고난 점을 가졌다. 한편, 펜거트는 간디의 독서범위를 점검하고 “자네는 일반 독서가 부족해. 자네는 세계를 몰라. 그것은 변호사에게 필요한 것이네, 자네는 인도역사조차도 읽지 못했단 말이야. 변호사는 인간성을 알아야하네. 사람의 얼굴을 .. 2020. 1.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