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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1185

[제5강] 함석헌의 통일민족주의와 실체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1/16 07:0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의 그리스도교민족주의와 통일민족주의-5] 함석헌의 통일민족주의와 그 실체 함석헌의 민족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민족의 통일이다. 함석헌은 우리 민족의 분단원인을 다음과 같이 진단하고 있다. “분열의 책임은 뉘게 있나? 정치가에 있다.....그들의 근본 잘못이 무엇인가? 나라를 잊고 정권 얻기에만 급급했던 일이다. 그들은 정치만 치우쳐 중히 여기는 그릇된 생각에 민족의 통일을 희생하면서까지 정부세우기를 서둘렀다....그것은 하나의 사사권력단체이다. 남북이 마찬가지다."(, 《씨알의 소리》1971년 9월호) 라고 함으로써 함석헌은 통일정부를 외면한 남북의 두 권력을 사사로운 권력집단으로 평가하고 이 두 권력집단을 그리.. 2020. 2. 7.
[제6강] 통일의 과정은 민족동질성회복이어야 한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1/17 09:3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의 그리스도교민족주의와 통일민족주의-6] 마치는 글을 대신하여 통일의 과정은 민족동질성회복이어야 한다. '근대미완성'사회에서는 아직 민족주의가 유효하다 지금까지 “함석헌과 그리스도교민족주의와 통일민족주의”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끌어왔다. 그 결과 민족주의는, 우리 민족과 그리고 그 안에 생존하는 모든 구성원을 압제하는 세력에 저항하는 이데올로기임을 알았다. 따라서 아직도 우리 민족이 분단세력 및 비민주적 정치ㆍ자본권력으로부터 인권적 탄압과 민족적 분열을 강요당하고 있는 한, 한국 땅에서는 아직도 민족주의가 유용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또 역사의 발전단계는 지구의 각 지역이 서로 각각의 차이와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2020. 2. 7.
[제1강] 함석헌의 역사관을 말한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1/19 09:10]에 발행한 글입니다. [이치석 선생님의 함석헌의 역사관을 말한다-1] 믿음이지 역사연구가 아니다 함석헌의 역사서술은 전문가 입장인가. 함석헌의 역사저술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가 대표적이다. 그것은 사상가 함석헌의 결정적인 기반이기도 하다. 본디 그 원형은 오산고등보통학교 역사선생 시절에 월간『성서조선』지(誌)를 통해서 1934년 2월부터 약 2년간 연재하던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본래 이것은 나 홀로의 한숨이며 돌아봄이요, 알아주는 친구에게 하는 위로요 권면이다. 우리의 기도요 믿음이지 역사연구가 아니다.”(1) 과연 문학비평가 김현이 “역사서로보다는 차라리 수필로 읽어야 할 책”이라.. 2020. 2. 4.
[제5강] 수동적 우리에 대한 투쟁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1/23 08:10]에 발행한 글입니다. 수동적 우리’에 대한 투쟁 한국 사람은 진짜 우리다운 우리가 아니다.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다양한 역사인식을 낳는다. 특히 ‘고난의 역사’는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인데, 학계의 관심사처럼 그것은 한국역사에서 외세개입과 만주상실에 관련되어 있다. 그 지리적 조건은 대륙과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적 위치와 지세(地勢)이기도 하다.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한반도 세 면에서 다가드는 세 세력에 두루 싸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곧 서쪽의 중국과 북쪽의 만주와 동쪽의 일본이다. 이 위치는 다이나마이트 같이 능동적인 힘을 가지는 자가 서면 뒤흔드는 중심이요, 호령하는 사령탑이요, 다스리는 서울일 수가 있다. 그리스와 이탈리아가.. 2020. 2. 4.
[제6강] 함석헌- 인간이해의 새 지평을 열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1/24 09: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인간 이해에 대한 무한한 지평을 열다. 함석헌은 역사가들의 역사에 대해서 불신을 드러낸다. 그들은 기껏해야 “역사를 쓰려다가 죽은 뼈다귀의 이름만을 적어 놓고” 말았다고 개탄한다. 마치 존경받지 못하는 사회 지도층이나 기득권층의 행동처럼 그들의 역사학 방법을 특권의식의 하나로 본다. 예컨대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는 학교에서 배우는 통일신라시대라는 명칭이나 서술 자체가 아예 없다. 또 고려시대는 “고려의 다하지 못한 책임”으로, 조선시대는 “수난의 5백년”으로 쓰고 있다. 우리에게 낯익은 시대구분이나 통념을 부정한다. 나아가 고난의 역사를 자초한 ‘수동적 우리’는 삼국시대의 비극적 종말 이후 현재까지를 자아상실의 시대로 묶.. 2020. 2. 4.
[일요시론] 우리 인간사회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1/25 09:43]에 발행한 글입니다. 우리 인간사회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신용산 철거민 학살을 비통해 하며- 말 안 듣는 권력은 혁명으로 바뀌야 한다.-사회게약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 인간사회는 ‘원시공동체사회’에서 ‘1단계국가주의사회’(이하, 1단계국가사회)를 거쳐 ‘2단계 국가주의사회’(이하, 2단계국가사회)로 나왔다 1단계국가사회를 우리는 흔히 노예ㆍ봉건사회라고 한다. 노예ㆍ봉건사회는 한 사람을 위하여 그의 수하들과 함께, 독점지배세력이 되어 권력과 자본(국가이익) 그리고 관념(靈魂)을 전제하던 시대이다. 그래서 대다수의 국가사회구성원들은 소수의 권력층에게 인간소외는 물론 심각한 탄압과 ‘경제외적 강제를 당해왔다. 이러한 노예ㆍ봉건시대의 오류를 바.. 2020. 2. 4.
[제1강] 함석헌의 역사서술과 역사인식-머리말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1/26 14:29]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의 역사서술과 역사인식 "聖書的 立場에서 본 朝鮮歷史"를 중심으로 Ⅰ. 머리글 - 함석헌이 역사가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함석헌(1901~1989)은 20세기 한국의 행동하는 지성과 시대적 양심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씨알’을 위해 고난의 길을 걸은 분이다. 그는 다양한 분야에 족적을 남겼다. 그는 자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 교육을 하려다 교육자가 못 되고, 농사를 하려다 농부가 못 되고, 역사를 연구했으면 하다가 역사책을 내던지고, 성경을 연구하자 하면서 성경을 들고만 있으면서 … 학자도 못되고 기술자도 못 되고 사상가도 못 되고 …” 983년 “함석헌전집” 편찬 시 편찬위원 일동 명의로 된 간행사에서는.. 2020. 2. 4.
[제2강] 함석헌의 역사서술과 역사인식-1930년대 한국사학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1/27 09:30]에 발행한 글입니다. Ⅱ. 1930년대의 한국사학 1930년대 민족주의 사학과 사회경제사학 1930년대는 일제의 만주침략(1931)과 이후 15년 동안 계속된 침략전쟁의 수행, 신사참배와 황국신민화 강요, 국가총동원법(1938) 이후 각종 수탈 등 파쇼적 지배체제가 강화된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1920년대 이래의 소작인,노동자 투쟁이 본격화 되었고, 공산주의운동도 더욱 확산되어 민족 내부에서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문제로 제기되기도 하였다. 일제의 강권통치는 더욱 기승을 부렸으나, 민족주의 사학자들은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역사연구를 부단히 진행하였다. 1930년대의 한국사 연구는 신채호(申采浩)의 투옥(1928)과 순국(1936) 이후 국외에서의.. 2020. 2. 4.
[제3강] 함석헌의 역사서술-성서적입장에서 본 조선역사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1/28 08:20]에 발행한 글입니다.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의 저술과 수정 “조선역사”는 김교신이 주필로 있던 《聖書朝鮮》의 1934년 2월호(제61호)부터 1935년 12월호(제83호)까지 23회에 걸쳐 연재되었다. “조선역사”는 동경고등사범학교 文科 一部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1928년 귀국하여 모교 오산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던 함석헌이 ‘약혼 받은 거러지 같은 심정’이었으나, ‘세 가지 작대기 같은 생각’(믿자는 의지, 나라에 대한 사랑, 과학적이려는 양심)으로 저술한 것이다. 당초 “조선역사”는 그가 성서조선 겨울집회에서 1주일 동안 ‘겨울날 문을 닫은 골방 안에서 여남은 되는 믿음의 동지들과 무릎을 걷고 앉거나 머리를 맞대고 기도로서 한 이야기.. 2020. 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