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교육

[제6강] 함석헌- 인간이해의 새 지평을 열다

by anarchopists 2020. 2. 4.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1/24 09: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인간 이해에 대한 무한한 지평을 열다.

함석헌은 역사가들의 역사에 대해서 불신을 드러낸다. 그들은 기껏해야 “역사를 쓰려다가 죽은 뼈다귀의 이름만을 적어 놓고” 말았다고 개탄한다. 마치 존경받지 못하는 사회 지도층이나 기득권층의 행동처럼 그들의 역사학 방법을 특권의식의 하나로 본다.

예컨대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는 학교에서 배우는 통일신라시대라는 명칭이나 서술 자체가 아예 없다. 또 고려시대는 “고려의 다하지 못한 책임”으로, 조선시대는 “수난의 5백년”으로 쓰고 있다. 우리에게 낯익은 시대구분이나 통념을 부정한다. 나아가 고난의 역사를 자초한 ‘수동적 우리’는 삼국시대의 비극적 종말 이후 현재까지를 자아상실의 시대로 묶어놓는다. 사건도 나열하지 않지만, 반민중적인 성격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 진실을 말하지 않는 역사란 역사가 아니다.


까닭에 모든 계급주의, 사대사상, 숙명론을 해체하려는 ‘능동적 우리’의 각성과 부활에 깊은 의미가 부여된다. 즉 연대기 속에서 스쳐간 궁예ㆍ왕건이 그린 나라, 묘청의 난, 최영의 삼한재조, 임경업의 분노, 기독교의 들어옴, 홍경래의 혁명 등이 새삼스럽게 주목받는다.

함석헌이 선택한 역사적 사건들은 역사가들에게 당연해 보일 리가 없다. 이른바 “역사서로보다는 수필로 읽어야 할 책”처럼, 하나의 화제(topic)로써 더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이런 서술태도는 통속적으로 보이기 쉽다. 즉 역사이해가 저급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에게 필요하고 충분한 것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자 반드시 일어났어야 할 사건이면 된다. 역사란 진실을 위한 투쟁이 확실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적 사건으로 선택된 화제는 기존의 역사학 방법을 따르지 않는다. 사건들은 서사체의 구조를 지니고 인간과 결합되어 인간 자신의 고유성을 강조한다. 흔히 독자들은 책 속에서 사건의 주인공으로 입장을 바꾸어 보는 상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영원한 존재로써 설정된 ‘성서적 입장’이나 ‘뜻’ 뿐이라고 믿는다. 그것은 이해의 대상이라는 인간을 기준으로 삼는 딜타이의 방법이 아니다. 가령 사육신(死六臣)과 관련된 '의인의 피'에서 그는 인간을 다음과 같이 그려낸다.

“육신(六臣)의, 말을 뛰어넘은 이 비장한 사실을 한국사람인 다음에는 반드시 알 필요가 있다. 차라리 셰익스피어를 못 읽고 괴테를 몰라도 이것은 알아야 한다.……육신의 사명은 처음부터 성공에 있지 않고 죽는 데 있었다.……책에 써야만 역사가 아니라, 나의 생이 곧 과거의 기록이요, 나의 난 시대가 곧 던 시대에 대한 판결문이다.

이와 같이 함석헌은 시대의 일상성을 초월할 수 없는 인간을 설득하고 있다. 그것은 철학적이 아니라 고난의 현재성이기도 하다. 또한 사건의 인과성이 아니라 이야기의 인과성을 추구한다. 하지만, 이런 독특한 관점과 서술 때문에 함석헌은 일부 역사학자들에 의해서 역사가의 자격을 박탈당하게 된다. 그러나 함석헌의 화제와 문체는 그들의 ‘역사주의적’ 관점이 "죽은 뼈다귀의 이름만"을 빚어놓는다는 시간의 개념을 ‘성서적 입장’과 ‘뜻’으로 무너뜨려버린다.

만약 그의 ‘입장’을 개념으로 오해한다면, 그는 틀에 박힌 학계의 편견으로 삼류 역사소설가처럼 취급당할지도 모른다. 솔직히 그것은 역사가의 이념보다 청년교사의 양심으로 보이기도 한다. 상기하면, 본래「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도 역사수업의 교재로 쓰여졌다. 결코 즉흥적인 감정으로 만들어진 화제가 아니다.

그는 그것을 『성서조선』에 연재하기 전에 먼저 흑판 앞에서 가르쳤고, 역사수업을 하기 전에 먼저 촌음을 아껴가면서 자신의 양심과 싸움을 벌여야 했었다. 결국 함석헌은 인간 이해에 대한 무한한 지평을 여는 사상가가 되기 전에 먼저 진실의 진지와 함께 진실을 전달하는 방법부터 발명해낸 셈이다. 그 순간에 그는 이미 현대의 역사가로 탈바꿈하게 된다. 그 두 가지는 역사가의 임무로써 오늘날 보편화되었기 때문이다.(이치석)


이치석 선생님은
함석헌의 역사관
* 이치석 선생님은, 프랑스 아미앙대학교 역사학 박사과정(D.E.A)수료하였으며, 함석헌의 "씨알교육"을 우리나라에 보급하려 애써오셨다. 현재"씨알의 소리"편집위원으로 계신다

* 저서로는『씨알 함석헌평전』『전쟁과 학교』가 있고, 공저로는『황국신민화교육과 초등학교제』외 다수가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