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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민족

[제5강] 함석헌의 통일민족주의와 실체

by anarchopists 2020. 2. 7.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1/16 07:0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의 그리스도교민족주의와 통일민족주의-5]

함석헌의 통일민족주의와 그 실체

함석헌의 민족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민족의 통일이다.


함석헌은 우리 민족의 분단원인을 다음과 같이 진단하고 있다. “분열의 책임은 뉘게 있나? 정치가에 있다.....그들의 근본 잘못이 무엇인가? 나라를 잊고 정권 얻기에만 급급했던 일이다. 그들은 정치만 치우쳐 중히 여기는 그릇된 생각에 민족의 통일을 희생하면서까지 정부세우기를 서둘렀다....그것은 하나의 사사권력단체이다. 남북이 마찬가지다."(<民族統一의 길>, 《씨알의 소리》1971년 9월호) 라고 함으로써 함석헌은 통일정부를 외면한 남북의 두 권력을 사사로운 권력집단으로 평가하고 이 두 권력집단을 그리스도교 《구약성서》의 ‘솔로몬재판’이야기에서 나오는 ‘가짜어미’에 비유하였다.


여기서 잠시 솔로몬재판의 이야기를 해보자, 하루는 솔로몬왕 앞에 두 창녀가 죽은(死) 아이와 산(生) 아이를 각각 앉고 나와 산 아이가 서로 자기 아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를 듣고 있던 솔로몬은 옆의 신하에게 일렀다. “(칼을 가져다) 그 산 아이를 둘로 나누어 반쪽은 이 여자에게, 또 반쪽은 저 여자에게 주어라” 그러나 한 여자가 기겁을 하여 “임금님, 산 아이를 저 여자에게 주시고 아이를 죽이지만은 마십시오.”하였다. 그러자 솔로몬은 산 아이를 죽이지 말라 하고, 그 산 아이를 죽이지 말라고 한 여인(진짜어미)에게 주도록 하였다.(《열왕기 상3: 16~28)

솔로몬의 재판 이야기 속에서 산 아이(민족)가 살 수 있었던 것은 ‘진짜어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아기를 살리려는 ‘진짜어미’는 정치권력가나 자본권력가가 아니다. 남과 북의 악독한 정치 밑에 흩어져 고난을 받고 있는 씨알이다. 그래서 ‘씨알만이 그 마음(아기를 살리려는=진정으로 통일을 하려는)을 발동시킬 수 있다”(<民族統一의 길>, 1971)라고 하였다.

이렇듯 함석헌의 민족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민족의 통일’이다. “나라의 허리를 잘리고도 아직도 우리가 살았거니, 돈을 모을 수 있고 세력도 잡을 수 있고 행복을 누릴 수 있거니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망상”이다.(<民族統一의 길>, 1971) “두 동강이 난 나라를 어서 빨리 하나로 묶고 남북이 하나로 어우러져 회개와 눈물로 이 강산을 적시고 감사와 희망의 노래로 산천초목을 들뜨게” 하자((<가시나무가지의 외침>, 1979),라고 조국의 통일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함석헌은 이 나라 정치인들의 파렴치한 통일의지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남북협상을 그렇게 큰마음으로 할진대 왜 일찍이 김구(金九)선생을 왜 용공주의라 몰아치며 죽여 버렸나”, “가족찾기운동을 그렇게 인도주의 정신으로 벌여야 할 줄 알았을진대 왜 학생들이 남북의 젊은이들이 만나 아리랑이라도 서로 같이 불러보자고 했을 때, 좌익이라고 무자비하게 몰아치고 못하게 했던가? 평화통일이 그렇게 대세에 합한 옳은 일인 줄 알았을진대 왜 평화소리만 해도 이북공산당편이라고 입도 못 열게 했던가? ”, “반공을 국시(國是)로 내세우는 것은 무식한 소리라고 할 때는 들은 척도 않고 묵살하더니 요새 와서는 국시를 왜 변경했는가?”, “인격의 기초를 닦는 초등ㆍ중등의 교육을 반공일색으로 해서는 병신인간을 만들고, 나라의 백년대계를 그르치는 죄악이다.”, “(국민이 통일운동을 할라치면) 갖은 수단으로 억제하려든다. 그 억제하려는 속뜻은. 국민의 힘으로 통일되면 자기네의 특권구조가 무너지기 때문(인가)”( <民族統一의 길>, 1971)라고 힐난함으로써 이 나라 지배층의 이제껏 통일관계 교육 및 정책을 비난하는 한편 오늘의 정치인들이 통일을 외면 한 채 자신들의 썩어문드러질 권력독점과 자본이익 챙기기를 망상이라고 책망하였다.

통일민족주의의 알짬은 씨알이다.

함석헌은 여기서 이념을 문제 삼은 게 아니다. 정치인들의 통일의지가 없음을 책망하였다. 함석헌의 1970년대 이러한 비난은 2010년을 바라보는 이명박정권의 통일의지와 별 다를 바가 없음을 힐난하는 말로 들린다. 그래서 함석헌은 아직도 살아있다. 함석헌은 지금도 살아서 이명박정권의 통일의지 없음을 다음과 같이 비난한다. “새 역사의 나가는 방향은 여기서부터 크게 삐뜰어지기 시작했다. 민중에게는 마치 일제시대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 <民族統一의 길>, 1971)라고.

한편 함석헌은 통일을 정치논의로 풀지 말자고 하였다. “통일은 민족의 생리문제이다.” 정치권력은 민족을 절단 낸 존재이다 따라서 “남북의 두 정권은 믿을 수 없다. ...두 정권이 다 책임지고 물러나는 것이 통일의 첫 단계이다.”(<民族統一의 길>, 1971)라고 강조함으로써 통일의 주체에서 정치권력은 제외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통일이라 할 때, 거기에는 일체의 권력ㆍ폭력ㆍ금력ㆍ학력의 기성구조를 다 백지에 돌리고” “민중전체”의 관리에 두어야 한다고 함으로써 정치권력에 의하여 자칫 “불순한 기성세력이 침투하여” 조국통일이 또 다시 이권 나
누어먹기 식으로 끝날 위험성을 사전에 차단해야함을 예언하였다.

이렇게 함석헌은 통일의 주체를 민중으로 보았다. 함석헌은 민족에 대한 희망찬 신뢰를 보냈다. 민족의 희망은 통일조국이었고 통일을 확신하였다. 그리고 통일과정에서도 통일조국에서도 주체는 씨알이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함석헌의 ‘그리스도교민족주의’ 알짬은 민족의 고난을 극복하고 통일조국, 희망의 나라로 들어갈 씨알이었다. 함석헌에게서 이 땅의 씨알인 인민은 수 천 년 이 나라 역사와 함께 고난과 시련 속으로 연단된 무한한 민족의 생명에너지였다.

그래서 함석헌은 씨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씨알은 민족이 고난에 처하고 민중이 억울함을 당했을 때 억눌림의 고난, 억울함의 한을 함께 짊어진 존재다. 그래서 씨알은 고난과 싸우고, 압박자에 분노하였고 저항하는 존재이다. 이 분노하고 목숨을 걸고 저항할 줄 아는 존재, 곧 씨알이 우리 사회 민주주의 발전의 주체요 민족통일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함으로써 민족의 고난을 함께 체험하고 민족공동의 역사경험을 가지고 있는 존재인 씨알을 중심으로 민족을 통일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렇게 해서 함석헌의 ‘그리스도교민족주의’는 ‘통일민족주의’를 잉태하였다. 그래서 ‘통일민족주의’ 알짬도 ‘씨알’이 될 수밖에 없었다. 곧 ‘통일민족주의’의 담지자집단은 씨알이다. 그래서 분단조국에서 ‘통일민족주의’는 씨알의 통일이데올로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함석헌은 통일과정에서 그 방법으로, “나라도 민족도 한 생명체요 한 인격이다. 그러므로 분열이 오기는 아무리 외래의 힘으로 왔어도 다시 통일이 되는 것은 백년이 (걸리더라도) 제 힘에 의해서만이다.”라고  함으로써 ‘자주적 통일’을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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