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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교육

[제5강] 수동적 우리에 대한 투쟁

by anarchopists 2020. 2. 4.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1/23 08:10]에 발행한 글입니다.


수동적 우리’에 대한 투쟁


한국 사람은 진짜 우리다운 우리가 아니다.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다양한 역사인식을 낳는다. 특히 ‘고난의 역사’는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인데, 학계의 관심사처럼 그것은 한국역사에서 외세개입과 만주상실에 관련되어 있다. 그 지리적 조건은 대륙과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적 위치와 지세(地勢)이기도 하다.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한반도 세 면에서 다가드는 세 세력에 두루 싸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곧 서쪽의 중국과 북쪽의 만주와 동쪽의 일본이다. 이 위치는 다이나마이트 같이 능동적인 힘을 가지는 자가 서면 뒤흔드는 중심이요, 호령하는 사령탑이요, 다스리는 서울일 수가 있다. 그리스와 이탈리아가 일찍이 이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억세지 못한 자가 그 자리에 선다면 그때는 수난의 골목이요, 압박의 틈바구니다. 우리는 불행히 그 뒤의 것이 되었다.”


그러나 고난의 역사를 지리적 결정론으로 귀결시키지 않는다. 도리어 문제는 ‘능동적인 힘’을 잃어버린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다. 즉 고난은 자초한 셈이 된다. 사회학자 귀르비치의 말을 빌리면, ‘능동적 우리’가 ‘수동적 우리’로 변질된 것이다. 그것은 한국사람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원래 정체성이란 액체와 같다.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하게 마련이므로 현재 한국사람은 우리다운 진짜 우리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한국사람은 착하다’고 했는데 지금 착한 것이 어디 있나? ‘평화를 사랑한다’ 했는데 어디 평화가 있나?……한국사람은 의용심이 있다 하였지만 이제 어디 의용이 있나?……우리 조상은 얼핏 보기에 바보 같다 하였는데 지금 우리 민족같이 약아빠진 민족이 어디 있을까? 우리는 이제 신화도 없어지고 민족의 영웅도 없어졌다. 감격도 없고 흥분도 모르는 민족이다. 약아빠진 것은 국민적 이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고도 나라를 할 수 있을까?”

언제부터 이렇게 변했을까? 삼국시대가 끝났을 때부터다. 왜 이렇게 변했을까? 신라의 통일 때문이다. 함석헌은 그것이 통일다운 통일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차라리 우리의 집단자아 ‘우리’의 분열을 파종한 셈이다. 그래서 고구려의 죽음은 ‘만고(萬古)의 한(恨)’으로 남게 된다. 한국역사의 시대구분도 여기에서 이루어진다. 아울러 함석헌은 역사를 하나의 생명활동으로 본다. 이에 따라 만주상실과 외세개입은 말할 것도 없고, 학계에서 긍정하는 일통삼한의 의식조차 다음과 같이 부정한다.

“삼국시대가 사람으로 하면 골탑, 인격이 다 틀이 잡히는 청소년시대인데, 그때에 소아마비가 생기고 등뼈가 꺽어진 셈이니 그 이후의 발달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함석헌은 역사현장에서
새로운 능동적 우리를 표상하는 씨알을 창조했다.

역사의 등뼈를 꺽은 신라통일은 운명적으로 고난의 역사를 만든다. 그때부터 한국사람의 집단정신은 ‘수동적 우리’의 지배를 받는다. 까닭에 함석헌이 선택한 역사적 사건들도 모두 ‘능동적 우리’와 직결된다. 그것들과 관련된 사건들도 한결같이 자주성의 회복과 잃어버린 만주땅의 탈환에 있다. 예컨대 고려시대의 윤관, 묘청, 최영은 당대에 ‘능동적 우리’의 집단정신이다. 최영에 대한 묘사는 실로 절절하다.

“몇 천년 동안 내려오는 산 얼을 힘 있게 나타내던 여럿 중의 마지막 사람이다. 이후에는 또 얼마나 되는 세월을 지나야 그런 혼을 만나겠는지 알 수 없는 마지막 사람이다.”

최영은 이성계에게 패배해서 죽는다. 함석헌은 그 사건을 객관적으로 서술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사건의 인과관계가 아니라 역사적 의미를 발견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건의 결과를 ‘능동적 우리’의 이상을 ‘잊은 날’로 심판한다.

“최영이 진 것이 아니라 단군이 지고, 동명왕이 졌다. ‘상국 지경을 범하면 천자께 죄를 짓는다’고 한 이성계는 뉘 아들인지 모르지!……이 날은 한민족의 가슴에서 옛 터 찾자는 생각을 아주 마지막으로 긁어버린 날이다.……집을 잊은 날이다. 집을 잊은 날은 집을 빼앗기던 날보다 더 슬프고 아픈 날이다.……집이 없으면 천지로 집을 삼을 수 있어도 자아(自我)가 없어진 다음에는 지옥에도 갈 자리가 없지 않느냐?”

이런 문장은 ‘능동적 우리’의 좌절을 대표한다. 나아가 그 속에서 함석헌 자신은 ‘수동적 우리’에 대한 첫 투쟁의식을 드러내게 된다. 이보다 더한 민족사학의 특징이 있을까? 그 후에 함석헌 자신은 역사의 현장에서 새로운 ‘능동적 우리’를 표상하는 씨알을 창조한다. 실제로 ‘능동적 우리’는 『함석헌전집』 전체를 관통하는 씨알의 줄기세포라고 할 수 있다. (이치석)

이치석 선생님은
함석헌의 역사관
* 이치석 선생님은, 프랑스 아미앙대학교 역사학 박사과정(D.E.A)수료하였으며, 함석헌의 "씨알교육"을 우리나라에 보급하려 애써오셨다. 현재"씨알의 소리"편집위원으로 계신다

* 저서로는『씨알 함석헌평전』『전쟁과 학교』가 있고, 공저로는『황국신민화교육과 초등학교제』외 다수가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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