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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알의 소리69

[김조년 제6강]새혁명, 싸움은 이김이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3/24 09:58]에 발행한 글입니다. 시대의 낌새와 소리 울음: 3천만 앞에, 6천만 앞에, 세계의 씨알앞에 그러나 그 울음과 노래와 춤은 혼자서 골방에서 하는 것이 아니다. 겉으로는 민족과 씨알앞에 울고 웃고 노래하고 춤을 추는 것이지만, 속으로는 궁극존재인 하느님 앞에서 하는 짓이다. 그 울음은 탄생의 의미, 삶의 의미를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울음은 생명의 표현이다. 생명의 고통을, 아픔을, 영광과 기쁨을 함께 나타내는 것이 울음이요 노래요 춤이다. 그것 속에는 생명들이 겪는 현상들의 뜻과 의미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행위가 될 것이다. 그것이 때로는 분노로, 때로는 움직임으로, 때로는 스스로 가지는 고난으로, 때로는 끝없는 고독의 명상과 사.. 2020. 1. 30.
[김조년 제7강] 씨알은 권력을 탐하지 않는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3/25 10:14]에 발행한 글입니다. 시대의 낌새와 소리 씨알: 민중, 맨사람->혁명 씨알: 민중, 맨사람- 전체에 합일한 사람으로 표현되는 씨알은 궁극혁명과 화의 존재다. 이는 하느님의 손이다. 하느님의 손은 민중, 씨알의 손에 있다고 함석헌은 주장한다.(14: 145) 그 씨알은 어떤 존재인가? “씨알은 말하자면 내재의 평화, 극소세계의 평화다. 본질적인 평화다. 씨알의 바탈이 평화요, 평화의 열매가 씨알이다. 그러므로 씨알의 목적은 평화의 세계 이외에 있을 수 없다. 극소는 극대에 통한다. 그러므로 산을 오르는 사람이 순간도 그 눈을 산봉우리에서 떼지 않아서만 모든 발걸음을 바로 할 수 있듯이 씨알이 스스로를 닦고 다듬으려 할 때도 세계평화의 이상을 잊고.. 2020. 1. 30.
[김조년 제8강] 시대의 낌새와 소리를 들어라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3/26 09:12]에 발행한 글입니다. 시대의 낌새와 소리 고전 바로읽기: 노자와 장자, 성경과 바가받기타 오늘날에는 교육도 종교도 예술도 매우 가벼워졌다. 삶의 표피를 만질 뿐 본질을 만지게 하지 않는다. 더욱이 전쟁과 같은 상황을 촉발하는 경쟁교육과 경쟁운영을 제도화하는 모든 교육정책과 기업정책은 경쟁을 생활화하고, 문화로 만든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독창성을 발휘하는 생활이 나올 수 없다. 거기에는 오로지 규격에 맞는, 규준에 맞는 생활패턴만이 높은 가치가 있는 것으로 나타날 뿐 다른 가치가 의미를 잃는다. 특히 각박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여야 할 때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은 그것을 해결할 것이라 보는 직설문답이다. 그것은 끊임없는 문제의 반복일 뿐 근본해결.. 2020. 1. 30.
[김조년 제9강] 평화-비폭력 화합, 그리고 영원한 혁명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3/28 08:57]에 발행한 글입니다. 시대의 낌새와 소리 평화: 비폭력ㆍ화합, 그리고 영원한 혁명 좋은 일은 혼자하는 게 아니고 함께 한다. 평화롭게 살아야 하는 과학적 요청, 현실적 요청: 핵무기, 경제문제, 삶의 질 향상문제를 염두에 둔다. 평화를 깨는 요소들을 함석헌은 1) 국가주의->국가지상주의->정부지상주의로 본다. 그렇다면 누가 평화를 깨는가? 평화의 적들은 국가주의 안에서 활동하는 1) 대국정치가들, 2) 독점기업가들, 3) 약소국 정치가들, 그리고 4) 씨 속에 있는 폐쇄성과 배타성이다. 이 중에서도 씨알속에 있는 폐쇄성과 배타성을 가장 큰 문제로 본다. 씨알이 깨어 있다면, 성숙된 씨알이라면 다른 것들은 다 극복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 2020. 1. 30.
[일요시론] 뉴라이트의 뿌리는 ?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3/29 09:50]에 발행한 글입니다. 뉴라이트의 뿌리는? 요즈음, 한민족 남쪽의 역사학은 내우외란에 처해 있다. 즉, 안으로 이른바 ‘뉴라이트’로 자처하는 지식인들의 분파주의적 반란과 밖으로 패권주의에 바탈한 주변 국가들의 역사침략(중국의 만주영유권,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이 그것이다. 한민족 남쪽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민주정권들이 들어서면서 해방 이후 한민족남북 역사학자들이 연구해온 성과물에 입각하여 적은 성과나마 민주적이고 양심적인 ‘새 한국사 교과서’를 만들어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쳐 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른바 뉴라이트에 속하는 관계학자들이 위험천만하게도 파쇼적 국가주의사관에 입각하여 민주정권 이전의 교과서 내용으로 복귀시키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 2020. 1. 30.
[김대식 제1강] 거짓된 종교는 참이 아니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3/30 09:13]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이 말하는 으뜸이 되는 가르침과 얼 제1강 종교는 참(찾음)이다! “참 찾아 여는 길에/ 한 참 두 참 쉬 잘 참가/ 참 참이 참아 깨 새/ 하늘 끝 함 밝힐 거니/ 참 든 맘 빈 한 아 참/ 사뭇찬 참 찾으리.“ 종교라는 말마디는 이미 으뜸이 되는 혹은 거룩한(‘마루’ 宗) 가르침(敎)이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종교란 무엇보다도 삶의 좌표가 되어주는 으뜸이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것보다도 순수하고 거룩한 것이 되지 않으며 안 됩니다. 종교가 가지고 있는 존재의 무게가 있기 때문입니다. 함석헌의 표현대로 ‘삶은 살아감’입니다. 그런데 살아간다는 것은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살아가.. 2020. 1. 30.
[김대식 2강] 함석헌 - 종교는 죽어야 삶이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3/31 09:2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이 말하는 으뜸이 되는 가르침과 얼 제2강 종교, “죽어야 사는 것입니다!” 본디 “종교는 죽어야 삶입니다.” 죽음으로 사는 것이 종교입니다. 그런데 종교가 살면서 죽음을 회피하려고 합니다. 영원히 산다는 것은 죽음이 있어야 영원히 살 수 있는 법인데, 영원히 살기 위해서 죽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죽음으로써 삶을 사는 참 종교가 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유사 이래로 죽음을 제쳐놓고 사는 종교 혹은 살아남는 종교는 보지 못했습니다. 함석헌은 이를 두고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전체를 살려 내기 위해 날마다 자기를 십자가에 내주는 ‘그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날마다 죽어야 할 .. 2020. 1. 30.
[김 대식 제4강] 종교는 혁명, 곧 천명을 새롭게 하라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4/02 08:15]에 발행한 글입니다. 종교는 “혁명 곧 천명(天命)을 새롭게 하라!” 예로부터 종교는 땅의 백성, 씨알에게 숨통을 터주고 새로운 삶을 바라보도록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으뜸이 되는 가르침이었고, 정신의 거룩한 마루로 불렸습니다. 그것은 ‘천명’, 곧 ‘하늘-숨’을 통해 인간의 삶을 새롭게 했기 때문이고, 하늘-숨으로 땅-숨을 내었기 때문입니다. 땅-숨이 막히면 삶은 정체되고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땅-숨구멍을 내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하늘-숨을 열어야만 했습니다. 백성이 딛고 있는 삶의 숨(-구멍)이 꼴깍꼴깍 거릴 때 하늘-숨이 백성의 삶에 숨통을 트게 만들어 주었음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실, 세계의 현실은 그.. 2020. 1. 29.
[김대식 제6강] 함석헌의 유신론적 진화론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4/04 09:16]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의 유신론적 진화론, 종교는 진화해야 한다! 함석헌에 따르면, “하나님의 운동은 저항”입니다. 또한 “천지창조하려는 하나님이 물 위에 운동하셨다는 그 운동은 무슨 운동이었나? 반항운동이었다”고 말하는 논조는 마치 생성신학, 혹은 생성철학을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운동성이 근본적으로 반항운동에 있다고 말한 것은 하나님이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적 생성자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저항이라는 것을 굳이 어떠한 불의의 세력에 항거하는 운동으로 볼 수도 있지만, 종교적인 측면에서는 권력에 안주하려는 신앙의 안일함, 예언자적 비판력의 상실, 하나님성(Godness)이 아닌 것에 욕망하려는 것에 끊임없이 거.. 2020. 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