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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철학\함석헌, 영성

[김 대식 제4강] 종교는 혁명, 곧 천명을 새롭게 하라

by anarchopists 2020. 1. 29.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4/02 08:15]에 발행한 글입니다.


종교는 “혁명 곧 천명(天命)을 새롭게 하라!”

예로부터 종교는 땅의 백성, 씨알에게 숨통을 터주고 새로운 삶을 바라보도록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으뜸이 되는 가르침이었고, 정신의 거룩한 마루로 불렸습니다. 그것은 ‘천명’, 곧 ‘하늘-숨’을 통해 인간의 삶을 새롭게 했기 때문이고, 하늘-숨으로 땅-숨을 내었기 때문입니다. 땅-숨이 막히면 삶은 정체되고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땅-숨구멍을 내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하늘-숨을 열어야만 했습니다. 백성이 딛고 있는 삶의 숨(-구멍)이 꼴깍꼴깍 거릴 때 하늘-숨이 백성의 삶에 숨통을 트게 만들어 주었음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실, 세계의 현실은 그 삶-숨[생명]이 경각에 달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씨알의 삶의 숨-구멍, 땅-숨도 더불어 고통을 겪으며 숨을 헐떡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 종교는 “혁명, 곧 천명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하늘-숨을 통해 삶을 재형성(reformation)하도록 해야 합니다. 만백성들이 하늘-숨을 통해 하늘-뜻을 알고 삶과 세계의 “새로운 틀거리(틀거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함석헌은 “창조하는 힘은 씨알에게만 있습니다. 모든 시대를 죽음에서 건져내어 새 문화로 부활하게 하는 영원한 역사의 메시아는 씨알 속에 숨어 있습니다. 다만 하늘 소리 땅 소리가 그 속에 결합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하늘 소리와 땅의 소리를 결합할 수 있는 주체는 씨알입니다. 씨알이 깨어서 역사의 주체가 되어야 하고 하늘-숨을 두루 인식하여 행동하는 것은 하늘-숨, 곧 종교혁명을 통한 삶의 새 틀짜기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종교개혁이 아니라 종교혁명입니다. 종교가 하늘-숨을 떠받드는 것이 아니라 씨알이 주체가 되어 하늘-숨과 땅-숨을 결합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은 어떤 새로운 종교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틀거리”를 새롭게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역사를 자라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자라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더불어 함석헌은 다음과 같이 종교를 비판합니다. “종교는 사람을 통해서는 되지만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세상에 사람이 만들어 낸 종교가 많이 있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참 종교, 곧 삶의 새 틀거리를 체험시켜주는, 역사를 자라게 하는 종교는 되지 못한다. 가짜 종교다.” 이러한 그의 비판적 의식은 바로 천명, 곧 땅-숨과 삶-숨은 하늘-숨을 새롭게 해야만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그러나 하늘-숨을 새롭게 하는 일은 그냥 되는 일이 아닙니다. 내 생각이 하늘 생각인지, 으뜸 얼이라 자부하는 생각이 하늘-숨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아닌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생각할 줄 아는 것은 하나님이 생각이시기 때문이다. 생명 그 자체가 생각이다. 거기서 인간이 나왔다...... 우리 생각을 내놓고 그이의 생각에 가는 길은 없지만 우리 생각이 곧 그이의 생각은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단순히 종교적인 말인지, 아니면 종교 지도자의 말인지, 하늘의 말씀인지를 명석판명하게 분별하여 산다는 것은 하늘의 입을 통해서 말하여지는 하늘 명령[천명]에 따라 사는 삶과 맥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늘-숨을 열고서 사는 삶이 이른바 들숨날숨(히브리어: 루아흐, 그리스어: 프네우마)의 생각대로 사는 길입니다.

“생명에는 중지도 없고 실패도 있을 수 없다.” 종교는 인간의 삶[생명]에 숨을 불어 넣어 주어야 합니다. 참 종교란 삶에 숨이 붙어 있도록 해주는 종교, 삶에 숨통을 조여 오는 매일 매순간마다 살도록 해주는 종교, 살아 숨을 쉬도록 해주는 종교를 지칭합니다. 종교가 씨알의 삶을 진실되지 못하게 하여 거짓되고 왜곡된 삶을 살도록 한다면, 오히려 그것이야 말로 숨을 쉬는 것 같지만 실상은 숨이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정신을 품고 있는 하늘-숨은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하며, 구속으로부터 해방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삶의 힘으로서의 하늘 정신입니다. 독일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J. Moltmann)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영이 인간의 삶의 세계에 강력한 영향을 주고, 본래적 자기 자신이 되도록 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함석헌이 말하고 있는 삶의 틀거리의 혁신과도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삶의 틀거리를 재편성하고자 하는 것, 그래서 삶의 숨통을 트게 만들어주는 것은 하늘-숨을 받들며 사는 숨-주머니-종교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 중에 하나입니다.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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