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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철학\함석헌, 영성

[김대식 2강] 함석헌 - 종교는 죽어야 삶이다.

by anarchopists 2020. 1. 30.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3/31 09:2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이 말하는 으뜸이 되는 가르침과 얼
제2강 종교, “죽어야 사는 것입니다!”

본디 “종교는 죽어야 삶입니다.” 죽음으로 사는 것이 종교입니다. 그런데 종교가 살면서 죽음을 회피하려고 합니다. 영원히 산다는 것은 죽음이 있어야 영원히 살 수 있는 법인데, 영원히 살기 위해서 죽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죽음으로써 삶을 사는 참 종교가 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유사 이래로 죽음을 제쳐놓고 사는 종교 혹은 살아남는 종교는 보지 못했습니다.

함석헌은 이를 두고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전체를 살려 내기 위해 날마다 자기를 십자가에 내주는 ‘그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날마다 죽어야 할 것이야 할 것이다.” 종교는 사람을 만듭니다. 사람을 살립니다. 참 자기가 살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사건이 내 사건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는 가만히 세워 놓은 십자가가 아니라 오르는 십자가요, 죽음의 십자가가 아니라 산 음악의 십자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것은 거기 죽음의 장소에 올라야 사는 것입니다. 죽음의 장소에 죽음의 음악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음악이 흐르는 것이요, 사람을 살리는 음악이 흐르는 것입니다. 사람은 죽음으로서 사람이 됩니다. 날마다 죽어야 사람이 됩니다. 그래야 십자가는 산 음악의 십자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의 죽음은 장송곡이 아니라 환송곡입니다. 죽음이 울려 퍼져야 주검에서 생명이 일어납니다. 다시 말해서 종교가 죽어야 백성[씨알]이 삽니다. 이 땅에서 삶-숨[생명]이 살아 숨쉬고 삶에 숨이 끊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종교가 죽어야 합니다. 씨알을 아프게 하고 씨알을 정신적으로 배곯게 하는 종교는 죽어서 그들을 살려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의 십자가는 죽은 자의 십자가가 아니라 산 자의 십자가가 되어서 그들이 ‘제 삶’을 살도록 해야 합니다. 종교에서 죽음은 생물학적 소멸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종교에서 죽음은 실존으로서의 죽음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거기 서 있는 막대기가 아니라 땅으로서의 현실을 딛고 일어선 생명나무입니다. 생명나무를 올라야 죽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땅의 현실이 삶의 숨을 이어주는 것 같지만 실상은 막대가 같이 서 있는 투박한 생명나무가 삶의 숨을 고르게 합니다. 그 생명나무의 뒷켠에는 신의 현실, 즉 삶을 사는 게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오름’과 ‘들음’입니다. 십자가는 (지고) 오르기 위해 존재하기도 하지만 신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 거기 있습니다. 십자가는 죽음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건네 오고 삶으로 부르는 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예수는 십자가에 올라서 신의 목소리를 정확하게 들었습니다. 신이 그에게 말걸어옴은 “죽음이 너를 살리리라”였습니다. 일찍이 하이데거(M. Heidegger)가 “인간은 말을 들음으로써 인간이 된다”고 말한 것처럼, 신의 말에 자신을 열어놓는 사람들에게는, 죽음이란 신의 버림이 아니라 신의 살림이 됩니다. 신의 말-걸어옴에 성큼 다가 선 예수는 다시 사는 자가 되어 종교가 혹은 종교인이 다시 살도록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자유의 성취, 그것은 곧 씨알로 하여금 ‘참인간’으로 다시 살도록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함석헌이 십자가의 사건을 죽음의 음악이 흐르는 곳이 아니라 산 음악이 흐르는 곳으로 본 것은, 예수의 죽음이 모든 사람을 살도록 하는 산 음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맏형이 되신 예수를 따라서 남을 살리고 남이 춤추도록 만드는 산 음악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환상곡이나 환송곡 아닌 장송곡을 연주하고 있기에 더욱 가슴이 아픕니다.



그것은 예수의 십자가가 단지 그의 십자가일 뿐 나의 십자가가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나의 사건입니다. 십자가에서 나의 존재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 존재 사건은 올라서 스스로 죽음의 춤을 추어야 개현(開顯)됩니다. 나의 죽음의 춤이 오히려 남을 살리는 춤이 된다는 자명한 이치를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깨달아 알아차려야 합니다. 십자가가 죽음을 가로질러(cross) 넘어가는 삶-숨의 발생-터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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