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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철학\함석헌, 영성

[김대식 제6강] 함석헌의 유신론적 진화론

by anarchopists 2020. 1. 29.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4/04 09:16]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의
유신론적 진화론, 종교는 진화해야 한다!

함석헌에 따르면, “하나님의 운동은 저항”입니다. 또한 “천지창조하려는 하나님이 물 위에 운동하셨다는 그 운동은 무슨 운동이었나? 반항운동이었다”고 말하는 논조는 마치 생성신학, 혹은 생성철학을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운동성이 근본적으로 반항운동에 있다고 말한 것은 하나님이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적 생성자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저항이라는 것을 굳이 어떠한 불의의 세력에 항거하는 운동으로 볼 수도 있지만, 종교적인 측면에서는 권력에 안주하려는 신앙의 안일함, 예언자적 비판력의 상실, 하나님성(Godness)이 아닌 것에 욕망하려는 것에 끊임없이 거부하려는 정신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함석헌의 표현대로 늙어가는 종교, 즉 “타락”하는 종교가 되는 것에 저항(protestant)하는 것입니다.

20세기의 언어철학과 분석철학의 토대를 마련한 비트겐슈타인(L. Wittgenstein, 1889-1951)은 “세계가 신비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세계가 신비적이라는 것은 삶의 의미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여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신앙의 언어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신이 보여지도록 만드는 언어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운동성과 저항성이 드러나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함석헌은 이러한 시각을 함축적으로 표현합니다. “말씀은 반항이다.” 반항한다는 것은 생명이 있기 때문에 반항을 하는 것입니다. 반항에는 자유롭게 되고자 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저항의 성격은 생물에게만 있지 않다. 그보다도 낮은 무생물인 물질이라는 데 내려가도 역시 있다.” 반항은 생명 현상입니다. 생명은 움직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에너지입니다.

그 근본적인 에너지가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나오는 이, 스스로 폭발하는 이, 그러기 위해 스스로 맞서고 뻗대고 걸러내는 이다. 스스로 노여워하는 이다.” 하나님의 자기 존재성이 운동이요, 생명입니다. 그래서 죽음의 세력과 맞서 싸우는 반항 그 자체인 것입니다. 반항하는 존재 그 자체이신 하나님은 영원한 자유입니다. 그것을 가둘 수 있는 힘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스스로 말미암은 자존자(I AM that I AM)는 끝까지 생명입니다.

“자유야말로 생명의 근본 바탈이다. 진화(to evolve)하는 것이 생명이다. 생명이 진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역사는 혁명적(to revolve)이 아닐 수 없다. 역사가 혁명의 과정이라면 인생이 어찌 저항적이 아닐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생명이고 운동이라면 실존적으로 인간은 어떠한 구속으로부터 해방을 경험하고자 하는 강한 욕구, 즉 자유를 갈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생명과 자유는 머무는 것이 아니라 동사적 명사, 즉 삶입니다. 삶이 저항해서 생명의 역사를 살기 위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생명의 역사, 진화의 역사를 늘 새롭게 쓰고자 하는 씨알의 갈망을 종교가 막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종교와 과학이 진화라는 말마디를 가지고 지난 200년간 논쟁만 해왔습니다. 그러나 성공회 사제이자 입자물리학자인 존 폴킹혼(J. Polkinghorne)이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오히려 과학이 하나님을 더 잘 인식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에 동조한다면, 진화론적 과학을 뜨거운 감자로만 여길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진화론은 하나님의 창조 가운데 포함되는 그분의 계획이라는 점을 받아들인다면 우주의 새로운 역사를 창출할 수 있다고 봅니다.

“진동하고 진동하던 끝에 “빛이 있을지이다!” 하고 벼락 소리 질렀을 때 ‘완전’의 늙은 하나님은 죽어 터져 티끌로 헤어지고 영원히 새로운 자유의 생명의 역사가 돌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함석헌의 통찰은 이미 하나님이 처음부터 낡고, 쓸모없는 그리고 진부한 하나님이 아니라 영원과 무한으로서의 하나님을 지향했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그러므로 종교가 유신론적 진화론을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종교 자체도 하나님의 생성적 역사에 동참하는 대열에 한몫을 하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인간이 영원한 것, 무한한 것, 완전한 것, 말로 할 수 없는 존재를 향해 나아간다는 것이 종교의 진화입니다. 그러한 종교적 진화가 씨알의 신학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 지금 여기[현재]와 아직 오지 않은 그 때[미래]에 정말 필요한 것은 “씨알철학”입니다. 함석헌이 말한 것처럼, 그것은 “민중의 전체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세계의 진보, 종교의 진보, 정치의 진보, 삶의 진보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은 결국 씨알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 씨알철학이 아닐까 싶습니다. 씨알의 생각이 진화한다면 절망은 없습니다. 절망과 포기의 시대에 씨알들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적 안전장치나 정치경제적 유토피아가 아닙니다. 씨알의 생각과 사상 바뀜이 시대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함석헌은 오늘도 말합니다. “씨알철학에는 절망이 없다.”(김대식 끝)

그 동안 끝까지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내일은 일요시론이 나갑니다.

운영자 드림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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