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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60

5.16은 군사쿠데타다, 혁명이 아니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5/17 06:13]에 발행한 글입니다. 5.16은 군사쿠데타이다 요즈음 5.16군사정변 50주년을 맞아 ‘5.16’에 대한 재평가 논란이 중앙언론사 등의 기사로 등장하고 있다. 한때 군사정변의 주체들이 독재정치를 하는 기간 동안은 ‘5.16혁명’으로 명명되었었다. 그러다가 문민시대에 들어와 ‘5.16군사정변’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곧, 5.16을 군사쿠데타로 개념정립을 하였다. 그런데 5.16군부쿠데타 50주년이 된 이 시점에서 5.16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음을 느끼게 한다. 박정희에 대해 뚜렷하게 갖고 있는 두 가지 상반된 기억들, 5.16은 보릿고개를 해결한 결단이었다는 주장과 경제발전의 공은 박정희 개인의.. 2019. 12. 22.
7.4남북공동성명, 그것은 기만이었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7/03 09:19]에 발행한 글입니다. 7.4남북공동성명, 그것은 기만이었다. 분단된 이 나라에 박정희 때 발표된 7.4남북공동성명(이하, 7.4성명)이 있고 김대중 때 발표된 6.15남북공동선언(이하 6.15선언)이 존재한다. 그러나 7.4성명과 6.15선언은 그 성립과정과 역사적 의미가 다르다. 그럼에도 일부 수구세력(특히 박근혜측)들이 7.4성명과 6.15선언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려는 착각을 하고 있다. 하여 여기서는 7.4성명의 발표배경과 그 성격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로 한다. 1960년 친미반공독재자였던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악취가 나는 부정부패는 학생과 시민을 주체로 하는 4.19학생시민혁명(이하, 4.19혁명)이 일어나게 만들었다. 4.19혁명으로 .. 2019. 12. 17.
삭제된 씨알의 소리-박대통령께 드리는 공개장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9/04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박정희 독재권력시대 "씨알의 소리"에 실린 글이 삭제된 글 중 발췌내용입니다] 박대통령에 드리는 공개장 각하께서 5.16직후 발표하신 혁명공약에서 민정이양을 선포하였을 때, 우리 국민은 정의로운 혁명가에게 갈채를 보냈고, 삼선에 출마하셨을 때, 우리 국민의 얼굴은 어두워졌으며, 유신헌법이 공포되었을 때, 국민의 눈동자는 두려움으로 가득 차 감히 입을 열고자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우리 민족이 걸어온 발자취를 더듬어 보건데, 지극히 제한된 자유 속에서 울분을 감추며 그것을 인내로 이겨나가는 습성을 익혀왔고... 사회는 어둠의 짙은 그린자로 뒤덮이고 학원은 병들어 교수는 학생들에게 양심과 정의가 무엇인지 가르치기를 꺼려하고.. 2019. 12. 14.
[임헌영] 역사가 날조 당하는 시대에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10/02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역사가 날조당하는 시대에 민족문제연구소가 ‘시민과 함께 하는 바른 역사관’(가칭)을 건립하려 합니다. 당장의 내 삶이 이토록 팍팍해진 터에, 억울하고 통분할 일이 너무나 많은 이 삼계화택(三界火宅)의 판국에 어디 한가하게 '역사'를 따질 때냐고 여기시지는 않습니까. 제주 강정마을과 85호 크레인 위의 김진숙, 4대강과 반액 등록금, 패악의 극치인 저축은행들, 동두천시 미군의 10대 여학생 성 폭행 사건, 여기에다 앞 닥친 선거 열기까지 분노의 열화와 발길은 바쁘기만 한데 '역사' 이야기라니! 라며 한 발 물러서려는 건 아니신지요. 저들이 일제 식민 강압통치가 우리 민족을 잘 살게 해주었다고 억지를 쓸 때 경제사학자들이 잘 .. 2019. 12. 12.
10월 유신, 그것은 박정희 황제화의 음모였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10/17 07:36]에 발행한 글입니다. 10월 유신, 제제화의 음모였다. 1972년 10월 17일은 한나라당의 전신인 박정희의 공화당 시절에 있었던 민족수난의 국치일이다. 곧 ‘10월 유신’(유신체제)을 말한다. 유신(維新)이라는 말은 중국 고대 문헌에서는 종종 사용되어 왔던 말이다. 고대 중국에서 쓰였던 유신이라는 용어는 ‘새롭게 바꾼다’는 뜻이다. 곧 낡은 제도를 새로운 제도로 바꾼다는 의미다(《詩經》, 〈大雅〉編, 文王條) 근대에 들어와 동아시아 삼국에서는 이 유신이라는 말은 근대화(공업문명화)의 개념으로 썼다. 그래서 일본의 메이지유신[明治維新, 1868] 중국 광서제에 의한 무술유신(戊戌維新, 1898)이 있었다. 이 모두 입헌군주제를 근간으로 하는 근.. 2019. 12. 6.
"물 좀 주소"- 같이 먹고 삽시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10/18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물 좀 주소 ! 물 좀 주소. 물 좀 주소. 목 마르요 물 좀 주소 물은 사랑이요 나의 목을 간질며, 놀리면서 밖에 보내네. 아, 가겠소 난 가겠소 저 언덕 위로 넘어 가겠소 여행 도중에 처녀 만나 본다면 난 살겠소. 같이 살겠소. 아아아아아아아아아 물 좀 주소 물 좀 주소 목 마르요 물 좀 주소 그 비만 온다면 나는 다시 일어나리 아, 그러나 비는 안 오네. 이것은 박정희정권 때 자유를 노래했던 한대수의 물 좀 주소라는 노랫말이다. 이 가을에 다시 떠오르는 노래다. 왜 일까? 세상살이가 “물 좀 주소”라는 환경을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물은 자유이자 생명이요 돈이요, 밥이다. 사람은 밥을 물을 마시지 못하면 죽는다. 이것은.. 2019. 12. 6.
10.26의 역사적 사건과 서울시장 선거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10/24 08:50]에 발행한 글입니다. 10.26의 역사적 사건과 서울시장 선거 오는 10월 26일은 서울시장 보궐선거일이다. 이 날은 우리 역사에서 매우 뜻 깊은 날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는 안중근이 일본제국주의 총리를 지낼 때 조선에 을사늑약(1905.11.17.)을 체결시켰던 한민족의 원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만주 하얼빈에서 사살한 날이다. 그리고 1979년 10월 26일 오후 7시는 김재규가 유신체제를 통하여 황제를 꿈꾸던 박정희를 사살함으로써 이 나라에 일당일인 독재에 종말을 고하게 한 날이다. 그래서 10.26은 이 나라에 뜻 깊은 날이다. 그런데 이날에 박정희 독재자가 이끌던 공화당의 후신 한나라당.. 2019. 12. 6.
2011년 11월 22일, '민족통곡'의 날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11/25 06:34]에 발행한 글입니다. 2011년 11월 22일, ‘민족통곡’의 날 -우리 민족은 왜 ‘고난의 역사’를 가졌는가- 2011년 11월 22일 오후 4시 40분, 대성통곡할 한미FTA가 9분만에 비공개 속에서 집권여당의 힘의 폭력에 의해 기습상정과 날치기 통과가 이루어졌다. 비공개라 함은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절차상 하자를 말한다. 한미FTA는 ‘자발적 노예살이를 자처하는 을사늑약(乙巳勒約, 1905.11.17.)과 같은 강제협약이다. 이 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한미FTA의 국회비준은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뼛속깊이 친미주의자인 이명박 대통령의 독선과 연골체질(軟骨體質)인 한나라당 의원들의 비열한 행동으로 대부분 국민의 뜻이 한 순간에 묵살되.. 2019. 12. 2.
최소한의 양심조차 없는 대통령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12/09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최소한의 양심조차 없는 대통령 요즈음,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대다수 국민들의 조롱과 야유가 매우 노골적이다. 자기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야유한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것은 대통령이 최소한의 양심조차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은 일제식민지에서 해방된 후, 삼권분립형 민주주의제도를 도입하였다. 그런데 질이 안 좋은 대통령들이 나와 이러한 제도를 묵살하였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 반민주독재자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삼권분립을 명시한 헌법을 유린하였다. 그래서 사법과 입법이 모두 행정에 예속되고 대통령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독재권력을 행사하였다. 이 탓으로 이 나라는 민주화가 지체되었다... 2019. 11.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