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2011년 11월 22일, '민족통곡'의 날

by anarchopists 2019. 12. 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11/25 06:34]에 발행한 글입니다.


2011년 11월 22일, ‘민족통곡’의 날
-우리 민족은 왜 ‘고난의 역사’를 가졌는가-

2011년 11월 22일 오후 4시 40분, 대성통곡할 한미FTA가 9분만에 비공개 속에서 집권여당의 힘의 폭력에 의해 기습상정과 날치기 통과가 이루어졌다. 비공개라 함은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절차상 하자를 말한다. 한미FTA는 ‘자발적 노예살이를 자처하는 을사늑약(乙巳勒約, 1905.11.17.)과 같은 강제협약이다. 이 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한미FTA의 국회비준은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뼛속깊이 친미주의자인 이명박 대통령의 독선과 연골체질(軟骨體質)인 한나라당 의원들의 비열한 행동으로 대부분 국민의 뜻이 한 순간에 묵살되었다. 우리는 이날을 ‘민족통곡의 날’로 규정해야한다고 본다. 제2의 ‘식민지 종살이’가 예고되기 때문이다

함석헌은 일찍이 말했다. 우리민족은 ‘고난의 민족’이라고 했다. “고난의 역사! 한국역사의 밑에 숨어 흐르는 바닥 가락은 고난이다.”(함석헌, 《뜻으로 본 한국역사》, 한길사, 2009, 95쪽)

한국민족의 고난의 역사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는가.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어디서 오는 것이며 왜 오는 것인가. 그리고 그 고난은 누가 주는 것인가. 함석헌은 우리 민족의 고난은 하느님으로부터 온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이 당하는 고난이 신의 뜻인가. 그러면 우리 민족의 고난은 숙명적인가. 어쩔 수 없다는 말인가. 아니다. 숙명적이 아니다. 우리 민족의 고난은 신에게서 온 게 아니다. 오늘날의 이상기온과 날씨변화들로 나타나는 하늘의 재앙들이 ‘인위적 위험’이듯 우리가 지금 당하고 있는 삶의 고난들(인권의 유린, 자유의 구속, 정서의 억압, 정신의 속박) 또한 ‘인위적 위험’이다. 곧 더러운 야심을 가진 권력자들의 불장난에서 오는 고난이다. 그래서 극복될 수 있는 고난이다.

한민족 역사 전체를 통찰할 여유는 없다. 그래서 근대 이후부터 우리 민족의 고난들을 살펴본다. 일제에 의한 강제된 식민지는 신의 뜻이 아니었다. 그것은 당시 정치적·경제적 기득권을 가진 수구권력들(특히 민비를 중심으로 한 수구세력)의 못난 생각과 무능 때문이었다. 곧 변하는 세계정세에 주체적·자주적 대처능력을 갖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민족의 해방이 왔다. 이것은 신의 뜻이 아니었다. 민족과 인민을 팔아 부귀영화를 누렸던 수구세력의 노력도 아니었다. 그것은 일제침략에 저항하는 씨알들(해방운동세력)들의 피 흘림과 고통의 대가였다. 여기에 제국주의자들의 전쟁을 제압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닌 또 다른 강대국의 힘의 승리 때문이었다. 일제 식민지 노예상태에서 해방이 왔지만 민족의 고난은 또 왔다. 민족의 분단이다. 그러나 민족분단도 신의 뜻이 아니었다. 민족분단세력(이승만과 김일성)의 어리석음과 욕망 때문이었다. 여기에 이 민족의 분단을 통해 자국의 이익을 얻으려는 미·소제국주의 국가들의 음모 때문이었다. 이 결과 우리 민족은 전체 민족이 느껴야 할 삶의 행복을 빼앗긴 채, 앙숙으로, 불구의 적으로 살아감을 강제 당하여만 했다. 고난의 역사가 다시 시작되었다.

이 결과 분단국가 북은 3대에 이어 권력세습에 들어가고 있다. 인민의 자유의지는 도데체가 쓸모없는 나라가 되었다. 인민의 행복보다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자들의 권력유지가 우선이다. 당의 통치가 개인에 우선하는 나라가 되었다. 국가지상주의의 극치를 보여주는 나라가 되었다.

분단국가 남도 북과 다를 바가 없다. 이승만등 친일·친미 분단세력들이 독재적 권력을 휘두르며 인민을 강제하였다. 그들은 권력유지를 위해 인민들 개개인의 삶의 행복을 희생시켰다. 전체 인민의 행복이 독재 권력에 짓밟혔다. 이에 인민들은 분노하고 저항하였다. 4.19시민학생혁명이 일어났다. 그리고 진정한 민주주의, 참다운 자유주의를 향해 갔다. 고난의 역사가 종결될 수 있었다.

그러나 권력에 미친 야심가의 불장난이 일어났다. 친일파 출신 박정희가 주도한 5.16군사쿠데타(이하 5.16)다. 이 탓으로 우리민족은 민주주의 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자유주의가 통제되었다. 인문주의적 교양보다 물질주의적 능력이 우리 사회의 최고가치가 되었다. 개인의 존재가 독재반공권력으로 상징되는 국가에 짓밟혔다. 이 또한 신의 뜻이 아니다. 친일·친미적 야망가의 불타는 욕망이 빗어낸 민족의 고난이었다. 권력의 야망은 모순을 낳는다. 권력내부의 모순이 일어났다. 박정희는 머리에 총알을 맞고 죽었다. 민주주의가 부활하는 순간이다. 국가보다 인간의 가치가 부활되는 순간이다. 경제적 능력보다 인문적 교양의 소중함이 부활되는 순간이다. 반공독재로부터 민족의 고난이 종결될 수 있었다.

반공독재자의 죽음과 함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변환기가 찾아왔다. 그러나 이를 악용하는 국가권력의 찬탈자가 나타났다. 친미적 반공독재자 전두환이다. 그는 인민의 자유의지에 반하여 나라의 권력을 찬탈하였다. 민족
의 고난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것은 신의 뜻이 아니었다. 전두환이라는 권력야심가의 불장난이었다. 이에 인민들은 분노하였다. 인민들은 권력 야심가들로부터 고난의 역사를 끝내고 싶었다. 5.18광주시민의거와 6.10민중항쟁이다. 이 결과, 겨우 벼랑 끝에 몰린 민주주의를 사수하였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선거혁명을 일으켰다. 역사의 시간을 정의의 시간으로 만들었다. 잠시 고난의 역사가 종결되었다. 그리고 10년 세월이 흘렀다.

10년 뒤 다시 민족의 고난이 찾아왔다. 역대 어느 권력자보다 더 독재적이고 반민생적·반생명적 권력자가 나타났다. 자연을 거스르고 하늘을 분노케 했다. 이른바 4대강 개발이다. 민족평화와 통일의 길을 멀게 했다. 흡수통일에 광분하였다. 한반도에 전쟁의 위기를 만들었다. 천안함 사태다. 민족 안위를 위협하는 외교를 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설치다. 미국에 대한 ‘종살이’를 자처했다. 한미FTA의 날치기 통과다. 한미FTA는 미국에 대한 ‘자발적 식민지’로 가는 길이다. 인민의 행복은 안중에도 없다. 자신의 이익이 나라와 인민의 이익보다 우선이다. 이명박 권력이 우리에게 주는 고난의 역사가 2011년 11월 22일에 극치를 보였다. 그래서 이날은 ‘민족통곡의 날’이다.

늘 민족의 고난은 신의 뜻이 아니라, 야심을 가진 독재자가 저지른 불장난에서 왔다. 그리고 민족고난의 종식은 나라사람(인민)들이 만들어냈다. 민족통곡의 날, 인민들의 분노의 소리가 높아가고 있음을 우리는 보았다.(2011. 11.25, 아침 취래원농부)

취래원농사는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 본문 내용 중 아래 사진은 네이버 이미지에서 따온 것임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