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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특별기고

[임헌영] 역사가 날조 당하는 시대에

by anarchopists 2019. 12. 1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10/02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역사가 날조당하는 시대에

민족문제연구소가 ‘시민과 함께 하는 바른 역사관’(가칭)을 건립하려 합니다. 당장의 내 삶이 이토록 팍팍해진 터에, 억울하고 통분할 일이 너무나 많은 이 삼계화택(三界火宅)의 판국에 어디 한가하게 '역사'를 따질 때냐고 여기시지는 않습니까.

제주 강정마을과 85호 크레인 위의 김진숙, 4대강과 반액 등록금, 패악의 극치인 저축은행들, 동두천시 미군의 10대 여학생 성 폭행 사건, 여기에다 앞 닥친 선거 열기까지 분노의 열화와 발길은 바쁘기만 한데 '역사' 이야기라니! 라며 한 발 물러서려는 건 아니신지요.

저들이 일제 식민 강압통치가 우리 민족을 잘 살게 해주었다고 억지를 쓸 때 경제사학자들이 잘 대처해 주겠지 하고 낙관하지는 않으셨는지요
.

저들이 '독도는 일본 땅이다'라는 섬나라의 생떼에 '조용히 대처해야 된다'라고 우길 때 정치학자들이 잘 대비해 주려니, 저들의 일말의 민족적 양심에 희망을 걸지는 않으셨는지요.

저들이 안중근 의사와 백범 선생을 테러리스트라고 무엄하게 입을 놀릴 때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당연히 시시비비를 가려주겠지 기대하며 넘기시지는 않으셨는지요.

저들이 이완용을 애국자라고 외칠 때조차, 그런 이념으로 역사 교과서를 개악하게 되었을 때조차 역사학자들이 처리할 문제라며 방관하시지는 않았는지요.

그러는 동안 마침내 우려했던 역사가 환난의 현실로 다가섰습니다. 매국노가 애국자로, 독재자가 경제 발전의 공로자로, 특정 재벌 특혜와 노동자 부당 해고와 탄압을 옹호하는 몰염치한 가치관에 입각한 교과서가 날조되려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역사가 과거입니까. 역사 왜곡과 조작으로 저들이 노리는 것은 진리와 정의의 가치를 뒤바꾸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유다가 베드로를 꾸짖고, 도척(盜跖) 같은 악당이 성인 공자를 겁박하는 세상이 되어가려 합니다. 사탄이 성서로 설교하며 마라(魔羅)가 불경을 설법하는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독립투사를 고문한 친일세력의 옹립으로 집권한 이승만 찬양과, 민주주의를 말살한 쿠데타의 주범인 박정희 기념관으로 저들이 노리는 것은 역사왜곡을 통한 현실 통치의 정당성과 장기 집권이며 나아가서는 전 국민의 기억세포를 원초적으로 마비시키려는 것입니다.

민족독립 투쟁과 민주화 운동, 국민복지 실현을 위해 일생을 바친 인사들을 소위 '종북좌경 세력'으로 날조한 채, 친일 매국노와 악덕 재벌과 부정부패와 패륜아들이 이 강토를 영원히 유린할 수 있도록 만들려는 게 저들의 역사 개악의 실체입니다.

역사는 과거가 아닙니다. 한가한 고담준론의 역사학자들만의 전유물도 아닙니다. 이제 역사가 무너지면 민족 통일 염원과 국민복지의 꿈이 영원히 생매장 당하고 말 것입니다.

이런 연유에서 <<친일인명사전>>을 낸 저희 민족문제연구소가 오늘의 역사 날조 세력과 맞서 바른 역사를 지켜줄 가칭 '시민과 함께하는 바른 역사관'을 건립하려 합니다.

부디 오셔서 이 화급한 당면과제의 중심에 있는 역사 왜곡을 막는데 함께 해주시기를 간절히 앙청 드립니다.

2011년 9월 30일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임헌영 절하며 올림

* 본문 내용 중 사진은 임헌영 사진입니다. 인터넷 네이버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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