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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38

[일요시론-김영호] 5.16의 올바른 평가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5/17 10:37]에 발행한 글입니다. 5.16의 올바른 평가 현대 민족사에서 5월은 잔인한 달이었다. 5.16군사혁명(1961)과 그 연장선상에서 광주민주화운동(1980)이 발생한 달이다. 5.16을 두고 오늘날까지도 해석이 구구하지만, 근본적 가치와 종합적 기준으로 따지자면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구국의 일념’은 허울이고 철없는 군인들이 이기적인 동기로 일으킨 쿠데타였다. 평생 전쟁기술만 배운 3,4십대 군인들이 세상과 나라, 인생과 역사를 어떻게 알았겠는가. (쿠데타의 제2인자 김종필의 그 이후 최근까지의 정치적 행적을 보면 그 수준을 알 수 있다.) 모처럼 성공한 민중혁명(4.19)의 결과 탄생한 명실상부한 민주정권을, 과도기적 혼란을 틈타, 뒤 엎.. 2020. 1. 27.
함석헌과 불교사상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6/16 08:38]에 발행한 글입니다. 나는 부처님을 믿는다” 깨달음과 믿음 함석헌은, 상당한 수준의 불교이해에 도달했을 뿐만 아니라 주로 기독교사상과 신앙을 통해서 형성된 그 자신의 체험적 종교관 속에서 불교와 폭넓은 접촉점을 공유하고 있음이 들어났다. 그는 불교수행의 과정을 묘사한 ‘십우도’(十牛圖)를 해설하고 서산(청허)대사의 게송(‘三夢詞’)을 이야기하는 (“청허대사의 말대로 주객(主客)을 다 꿈이란 그도 역시 꿈 가운데 잠꼬대인가?”) 수준을 보여주었다(전집2:89). 그는 서산대사처럼 읊고 있다. “인생이 꿈이거니/ 제각기 꿈일밖에/ 같은 꿈 꿔준단 말/ 꿈속에 꿈인 말뿐/ 한 (밥)상에 같이 살 닿아도/ 깨면 서로 딴 꿈 길”(10:117) 제행무상.. 2020. 1. 25.
함석헌의 불교사상-한국불교가 나아갈 길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6/17 08:42]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을 말한다-김영호] 한국불교가 갈 길 이처럼 불교와 많은 접촉점을 공유한 함석헌은 나아가 민족사 속에서 불교가 수행한 역할과 그 공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유교와 불교의 긍정적인 영향은 “열국시대, 삼국시대의 정치야 실패인지 모르겠지만 양심은 그 유교 때문에 부지가 되었고, 인생은 그 불교 때문에 구원이 되었다”고 말한다.(전집1:122) 삼국에 전래된 불교는 세 가지 점에서 공헌을 했다.(122-24) 첫째, 완전하지는 않지만 민족통일의 밑터가 되었다. “민족통일을 지향하는 삼국시대에 세 나라에 다 들어오면서도 종시 그 통일을 완성시키지 못하고 만 것은 국가를 초월하는 고등종교로서 불교의 실패라고 하여야 할.. 2020. 1. 25.
함석헌 새로 읽기-자항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6/18 15:39]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 새로 읽기-김영호] 저항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사람은 저항하는 거다. 저항하는 것이 곧 인간이다. 저항할 줄 모르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 왜 그런가? 사람은 인격이요 생명이기 때문이다. 인격이 무엇인가? 자유하는 것 아닌가? 우선 나는 나다 하는 자아의식을 가지고, 나는 나를 위한 것이다 하는 자주하는 의지로써, 내 뜻대로 내 마음껏, 나를 발전시켜 완전에까지 이르자는 것이 인격이다. - 인격은 선악의 두 언덕을 치며 물살을 일으켜 흘러나가는 정신의 흐름이다. 물이 언덕은 아니요, 인격이 선악도 아니다. 그러나 흐름은 두 언덕을 쳐서만 있는 것이요, 인격의 발전은 선악의 싸움을 해서만 있다. 선이 무언가? 인격의 .. 2020. 1. 25.
개인이냐 진화냐, 진화냐 퇴화냐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6/26 11:39]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 다시 읽기-2] 개인이냐 전체냐, 진화냐 퇴화냐 “-개인이냐 전체냐- 역사상에 요단강은 한 번만 아닙니다. 몇 번이고 있었고, 이 앞으로도 또 몇 번이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건너고 있는 요단강은 개인에서 전체로 건너가는 경계선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건너감 중에서도 아주 큰 건너감입니다. 그만큼 더 어렵습니다.... 6,7천년 전 이 역사시대라 불리는 시기에 들어오게 될 때에 또 한번 큰 건넘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원시공동체의 살림에서 개인의 발견에 들어가는 시기입니다. 그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는, 자세하게 볼 때는 부족시대니, 봉건시대니, 민족주의 시대니, 제국주의 시대니 여러가지 변천이 있었지만 크게.. 2020. 1. 25.
절망 속에 대안은 있는가- 민족성 개조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7/02 09:09]에 발행한 글입니다. 절망 속에 대안은 있는가 민족성 개조? (1)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가. 상류층이나 중산층 일부에 속한 개인(‘나’)에게는 아마 있을지 모른다. 어떤 부류처럼 하고 싶은 대로 다하고 살 수는 없지만 자신보다 못한 처지의 사람들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크게 불평할 것 없는 상태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를 넘어서 ‘우리’ 단위에서 보자면 희망이 있는 것인가. 나만 평안할 수 있는가. ‘우리’는 우리들이 속한 사회집단일 수도 있고, 민족공동체일 수도 있고, 세계나 인류공동체일 수도 있다. 좁게는 ‘우리’가 가족, 소수 특권층, 강남귀족층, 부유층, 일부 지역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우리’는 소수의 ‘우리’이지 다수나 전체.. 2020. 1. 25.
절망 속에 대안은 있는가 - 민족성 개조?(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7/04 09:33]에 발행한 글입니다. 절망 속에 대안은 있는가 - 민족성 개조? (2)- 왜 (이대로는)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가? 앞 글에서는 주로 물질과 제도 등 인간 살림의 외면적 가치만 가지고 말했지만 더 큰 문제는 내면에 있다. 인간의 내면이 텅 비어가고 있다. 겉 살림은 언젠가 개선되겠지만 속 살림은 한번 잘못 되면 좀처럼 회복하기 힘들다. 속은 비고 껍질만 있는 매미나 게 같은 갑각류처럼 보인다. 베짱이처럼 소리는 낸다. 근거 없는 빈 소리들이다. 영원의 울림이 아니다. 이 사회 정치인들의 소리, 종교인들의 소리, 언론의 소리는 대부분 헛소리들이다. 먹물학자들은 자기 소리 아닌 남의 소리를 전달할 뿐이다. 인간개체는 크게는 육체와 정신 (또는 육(肉.. 2020. 1. 24.
[김영호 개회사] 간디와 함석헌의 길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2/24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제2회 함석헌평화포럼 학술발표회 개회사] 간디와 함석헌의 길 나(개체)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를 넘어서, 우리(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함석헌이 말한 ‘뜻’이나 목표로 향하고 있는가. 늘 되물어야할 물음입니다. 묻기나 하면서 살고 있는가. ‘나’안에 갇혀서, 작은 ‘우리’ 안에 갇혀서 물을 겨를이 없는 것인가 자문해봅니다. ‘말할 수 없는 도’(道可道非常道)라든지 ‘길 없는 길’이라고 하지만, 길(道)은, 한자의 뜻처럼, 말로 가리켜져야 길입니다. 곧 말이 길입니다. 가는 것이 길이지만, 길이 저기가 아니고 여기라고 가리켜져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자기 길을 걸어온 여러분에게 길을 묻는 자리를 마련한 것입니다. .. 2020. 1. 23.
[김영호, 개회사] 간디의 길 함석헌의 길- 길을 묻는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2/25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김영호, 개회사] 간디의 길, 함석헌의 길 -길을 묻는다. 종교는 종교대로 독선주의와 상업주의로 판칩니다. 교육, 언론, 종교의 공통점은 본래의 공익성을 버리고 사유화, 기업화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것에 있어서도, 이는 세계에 유례가 없습니다. 중동에서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는 세 종교를 받드는 국가들이 자기 길만 옳다고 서로 각축을 벌이다가 중동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가 되어있습니다. (그 화약고는 한국사회에도 잠재되어 있습니다.) 이들은(그리고 우리들도) 지금이라도 간디나 함석헌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함석헌은 말했습니다. “진리의 산에는 오르는 길이 이 길만이 아닙니다. 나만이 전부를 다 안 .. 2020. 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