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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38

[김영호 제8강] 함석헌- 산 것은 해치지 말자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2/21 09:1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 서거20주기 추모 학술모임] 산것은 해치지 마라 함석헌도 이 세계를 ‘한개 산 생명체’로 보고, 간디의 불살생(不殺生) 즉 “산 물건을 해치지 말자”는 비폭력(아힘사)의 인도적 원래 의미를 되새기고(전집2:321) ‘온 생명’을 말했다. “민족도 오히려 작아. 이젠 세계, 세계만이 아니라 온 생명 - 동물, 식물도 한 식구로 생각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는 단계까지 왔어.” (2001:120-1) 간디 실천론의 핵심인 비폭력주의는 국가를 넘어서 국제관계로 확대된다. “나는 비폭력 이론이 또한 국가들과 국가들 사이에도 유효하다는 점을 강조한다.”(1990:111) 개인들의 집합체는 가족이고, 가족들의 집합체가 국가.. 2020. 2. 2.
[김영호 제9강] 함석헌과 간디의 공공정신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2/23 13:28]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서거20주기 추모 학술모임 발표강연] 함석헌과 간디의 공공(公共)정신 간디와 함석헌은 평생 공공정신으로 살았다. 간디와 함석헌의 삶이 우리에게 던져준 정신과 교훈이 무엇인가. 무엇보다 철저한 공공(公共)정신이다. 이들은 평생 일관되게 사사로운 삶이 아닌 공공정신으로 살았다. 함석헌이 비록 공‧사 대립을 초월한 경지까지 이야기했지만, 실제로 그들의 삶은 어느 누구보다도 선공후사(先公後私)를 넘어 그야말로 대공무사(大公無私)한 삶이었다고 할 만하다. 이들의 인생은 사인으로서 남긴 것이 없는 무집착, 무소유의 생애였다. 환갑이 지난 나이(1931)에 간디는 그의 소유물을 이렇게 열거했다. “나는 비렁뱅이 수도사다. 내가 .. 2020. 2. 2.
[김영호 10강] 함석헌과 간디은 실천적 이상주의자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2/24 09:55]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서거 20주기 추모 학술모임 강연내용] 함석헌과 간디의 유산-맺는말 -간디와 함석헌은 실천작 이상주의자다- 두 스승은 원래 수줍고 겁 많은 소년이었지만 삶의 과정에서 점차 진리와 신의 존재에 가까이 가면서 신념과 신앙을 공고하게 하여 담대해지고 정의의 투사로 성장해갔다. 간디와 함석헌은 인도와 한국의 비교, 히말라야산맥과 장백산맥의 크기에 비례할지 모른다. 간디전집(90권)과 함석헌전집(20권/30권)에도 분량의 차이가 있다. 두 인물의 환경을 제공한 영국과 일본 통치의 차이도 문명의 차이만큼 클지도 모른다. 하지만 코끼리와 백두산 호랑이의 크기는 달라도 어느 것이 더 용맹스러운지, 더 센지는 단언하기 힘들다. 한국.. 2020. 2. 2.
[김영호 제1강] 함석헌과 불교사상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4/13 09:0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과 불교사상 1. 머리말 ‘함석헌과 불교’, 생소한 주제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것도 그럴 것이 종교인으로서 함석헌은 일차적으로 기독교 신앙에 충실한 종교인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산학교 시절과 그 이전부터 그가 함께 성장한 한국기독교는 타종교에 대하여 배타주의적 입장을 견지해오고 있었다. 그가 조직교회에 대하여 비판적이었고 오랜 동안 비정통적인 무교회주의신앙에 몰입했지만 그것도 역시 기독교의 울타리였다. 그런데 ‘불교’라니 무슨 말인가. 그것은 두 가지 의미에서이다. 하나는, 한국인은 4세기 이래 1600 여년이상 불교에 노출되고 불교문화 속에서 성정해왔으므로 개인 함석헌도, 의식하건 안하건 간에, 자기 유전자나 무.. 2020. 1. 29.
[김영호 제3강] 함석헌과 불교사상-개달음의 주체성과 내면성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4/15 10:04]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과 불교사상 깨달음의 주체성과 내면성 함석헌의 사유와 불교적 사유의 공통성을 확연히 보여주는 구체적인 증거로 진리인식의 주체성을 들 수 있다. 위에서 살펴본 대로 종교인식론 차원에서 볼 때, ‘생각’이 함축한 것처럼, 함석헌은 계시보다는 자각을 강조한 모습이 농후한 것을 알 수 있다. 계시를 위주로 하는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과는 다른 모습인 것이다. 그의 신앙과 사유체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하나님’은 진리의 근원인 것은 틀림없지만 그것이 반드시 인격적인 존재로만 인식된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그가 대망하고 파악한 하나님의 뜻이 계시를 통해서인가, 자각을 통해서인가 하는 문제는 엄격하게 분별하고 단정하기 힘들다. 두 가지.. 2020. 1. 29.
[김영호 제4강] 함석헌과 불교사상-깨달음의 전체성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4/16 09:06]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과 불교사상 깨달음의 전체성 진리와 동일시되는 ‘나’의 실체가 무엇인지 함석헌의 해설을 들어보자. “그들은 다 모든 사람이 죽어서 한 사람이 일어서는 것은 알았어도, 또 그 한 사람마저 죽어야 하는 줄은 몰랐다. 그 한 사람이 죽어서 전체가 도로 살아남을 몰랐다. 예수는 메시아, 곧 한 사람을 바로 알았으므로 그마저 죽어야 사는 것임을 알았으므로, 그렇게 살았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참 한 사람일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나’를 바로 쓸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능히 ”내가 길이오, 진리요, 생명이다“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죽은 자의 말을 산 자들이 알 리가 없었고, 산 자의 말을 죽은 자들이 알 리 없었다. .. 2020. 1. 29.
[김영호 제5강] 함석헌과 불교사상- 고통과 수난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4/17 08:29]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과 불교사상 고통과 수난 함석헌의 전체론적, 전일적 사고는 고통의 철학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그는 개인의 고통보다는 전체의 고통에 관심을 둔다. 그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전체의 현실적 단위는 민족이다. 다른 민족의 고통은 동정은 할지언정 우리에게는 당장의 눈앞의 현실이 아니다. 당장 우리의 이웃, 아니 우리 자신이 문제이다. (북한인민도 우리요 이웃이라고 생각하는지 의문이 일어나는 현실이 전개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어떤 맥락에서는 스스로 민족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함석헌처럼 민족주의자도 없다고 할 것이다. 민족주의는 어쩔 수 없는 역사와 지금의 현실이며 인류가 다음 단계로 진화할 때까지는 당분간 가까.. 2020. 1. 28.
[김영호 제6강] 함석헌과 불교사상-무아와 나 버림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4/18 08:3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과 불교사상 무아(無我)와 ‘나’ 버림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당시 힌두교 전통에서 벗어난 혁명적인 사상을 내포한 것이었다. 그 대표적인 표징이 무아(無我)론이다. 힌두교 경전 우파니샤드에서 그 존재를 주장하는 절대 원리 브라흐만(Brahman)이나 자아(Atman)는 근거나 실체가 없는 개념으로 부정되었다. 그 근거 하나로 ‘나’라고 말하는 것은 분해해보면 다섯 가지 요소(五蘊:色受想行識)로 구성되어 있는 집적체일 뿐이며 오온 역시 무실체한 신체적(色 즉 형태) 및 심리적 요소들(感受, 상상, 意志, 의식 작용)이다. 집착의 대상인 ‘나’의 무실체성 즉 무아를 깨달을 때 무집착, 무소유의 경지, 해탈에 이.. 2020. 1. 28.
[김영호 제7강] 함석헌과 불교사상- 연기론과 전체론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4/21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과 불교사상 연기론과 전체론 석가모니가 부처가 되는 대각과정에서 깨달아 찾아낸 중요한 원리 가운데 하나가 연기의 이치이다. 이것은 대각의 핵심 내용일 뿐만 아니라 어쩌면 대각을 일으킨 요소라 할 수도 있다. 그만큼 중요한 가르침 내용이다. 무아(諸法無我), 무상(諸行無常), 자비 등 다른 개념들과도 연관되어있다. 무아가 아니고 무엇이냐, 왜 무상한가, 왜 자비심을 내야하는가 등 문제들이 연기론으로 풀 수 있다. 연기(緣起)는 ‘이것이 있으(생기)니까 저것이 있다(생긴다)’((此有故彼有)는 간단한 공식으로 표현된다. 너와 나, 이것과 저것처럼 모든 것이 상대적인 관계임을 가리킨다. 아무것도 독자적으로, 절대적으로 존재할.. 2020. 1.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