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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민족

절망 속에 대안은 있는가 - 민족성 개조?(2)

by anarchopists 2020. 1. 24.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7/04 09:33]에 발행한 글입니다.


절망 속에 대안은 있는가
- 민족성 개조? (2)-

왜 (이대로는)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가? 앞 글에서는 주로 물질과 제도 등 인간 살림의 외면적 가치만 가지고 말했지만 더 큰 문제는 내면에 있다. 인간의 내면이 텅 비어가고 있다. 겉 살림은 언젠가 개선되겠지만 속 살림은 한번 잘못 되면 좀처럼 회복하기 힘들다. 속은 비고 껍질만 있는 매미나 게 같은 갑각류처럼 보인다. 베짱이처럼 소리는 낸다. 근거 없는 빈 소리들이다. 영원의 울림이 아니다. 이 사회 정치인들의 소리, 종교인들의 소리, 언론의 소리는 대부분 헛소리들이다. 먹물학자들은 자기 소리 아닌 남의 소리를 전달할 뿐이다.

인간개체는 크게는 육체와 정신 (또는 육(肉)과 영(靈) -‘영육일치’에서처럼)), 세밀하게는 몸, 마음, 정신, 영(靈) 등으로 나뉜다. 중국전통에서는 정신을 정(精)과 신(神)으로 나누고 여기에 기(氣)를 보태고, 혼(魂)과 백(魄)을 추가하여 개체를 해부한다. 마음은 정신까지 아우르는 우리말이다. 일상 언어사용에서 정신은 영까지 아우르는 의미 스펙트럼을 지니기도 하지만, 함석헌의 경우, ‘정신’을 내세우기도 하고 ‘영’을 따로 강조하기도 한다. 하나님을 영으로 해석한다. 부활한 예수의 몸은 영체이다. 본질적으로, 생명은 영이다. 온전한 영은 죽지 않는다. 육체의 죽음을 넘어 사후에도 지속된다. 그러므로 영을 살려가야 한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을 드려다 보면 영이 안 보이는, 아예 없는 사람이 절대다수라는 말이 있다. 더구나 청소년들이 그렇단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 버는 재주 하나로 만인지상의 자리에 등극한 나라의 지도자까지도 그렇게 보일지 모른다. 이거 큰 일 아닌가. 위나 아래나 도덕성, 사회성이 갈수록 희미해져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사실이 그러하다면, 이 사회는 정신 나가거나 넋 나간 사람들만 우글거리는 집단이란 말이다. 더 실망스러운 것은 함석헌이나 다른 위인을 따른다고 하는 사람들조차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진로가 없는 막다른 골목에 와있는 느낌이다. 퇴로라도 있는가. 그래서 함석헌이 일찍부터 이야기한 인간혁명과 ‘민족성 개조’론에 생각이 미친 것이다.

함석헌의 1970년대 현실진단을 다시 읽어보면 오늘의 종말론적 위기상황을 정확히 예측하고 있는 듯 생생하게 들린다. 시계가 멈춘 것인가. 우리가 한 발짝도 못 나간 것인가.

“우리는 이 나라를 건져야 합니다. 우리밖에 없습니다. 세월 좋을 때에 나무통같이 서던 것들, 거기 붙어 잎같이 꽃같이 영화를 누리던 것들, 그 속에 새처럼 나비처럼 지저귀던 것들, 혁명의 폭풍 오면 다 그 존재가 없습니다. 물에도, 불에도, 칼에도, 약에도, 죽지 않고 남는 것은 하늘 소리를 속에 간직했던 낮고 약하던 씨들뿐입니다. 그러나 위기에 빠진 것은 우리나라만이 아닙니다. 온 세계 인류가 다 그렇습니다. 홑으로 사람만 아닙니다. 모든 생명의 씨가 한가지로 위급한 운명에 빠졌습니다. 생각하는 이 인간의 장난 끝에 잘못하다가는 10억 년 자라서 오늘에 이른 큰 진화의 생명나무가 씨째 망해버리게 됐습니다. 이 나라의 어려움은 그래서 온 것입니다. 전신에 들어 있는 피가 썩어서 곪아 터진 것이 우리 한국이라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세계를 구원함 없이 이 나라를 구원할 수 없고 이 나라를 살리지 않고 우주를 살려낼 길이 없습니다. 여기 우리의 거룩한 사명이 있습니다.

알아야 합니다. 앞으로 더 심한 환란이 올 것입니다. 일이 차차 어려워질 때 소위 강대국이라는 것들이 가만 있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보다도 더 노골적으로 저만 살겠다 몸부림 칠 것입니다. 정치란 것이 무엇입니까? 따져 들어가면 한마디로 어려움을 남에게 떠밀고 나만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치로 문제해결 절대 되지 않습니다. 정치는 욕심의 총결산입니다. 욕심 있는 사람 문제를 바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습니다. 더구나 오늘의 정치는 점점 더 폭력주의기 때문에 인류의 멸망을 재촉할지언정 결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정치만능주의로 줄달음을 쳐온 이 문명이 멸망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전집5:13)

믿거나 말거나 요즘 항간에는 2012년 지구위기설이 나돌고 있다. 그것이 사실적이건 영적인 메시지이건 그것은 인류에 대한 하나의 경종이다. 이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경고장이다. 그러므로 “새 문명, 새 세계관, 새 인생관, 새 국가를 세우지 않고 우리 살길만을 찾을 재주가 없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정치에서는 나올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근본적인 혁명을 의미하는 일입니다.”(
전집5“17)

이제라도 민족단위로 의식과 삶의 양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왜 그런가.

“사람의 몸은 개체적으로 존재하나 살림은 사회적으로만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몸을 낳아 준 것은 부모가 아니라 종족이요, 양심과 생각과 말과 믿음을 준 것은 교사가 아니라 사회다. 그렇듯 운명을 같이하는 그 사회를 민족이라 한다. 그러므로 모든 혁명이론은 민족성의 파악에서부터 시작할 것이고, 모든 혁명의 목표는 민족성의 개조에까지 미쳐야 할 것이다. 근래에는 민족주의가 지나간 시대이므로 민족은 아주 값없는 것으로 알기도 쉬우나 그렇지 않다. 민족과 민족주의와는 딴 문제다. 가족주의가 없어져도 가족은 있으며, 가족주의가 없어진 민족 시대에야말로, 다시 말하면 가족을 신성시하던 가족지상주의 사상이 없어져서야말로, 가족의 참 의미를 알 수 있는 모양으로, 민족주의 없어져도 민족이라는 사실은 있고, 민족지상주의, 민족신성주의가 없어진 인간의 시대에서야말로 민족의 참 뜻을 알 수 있다. 물론 민족은 영원한 것은 아니고 교통, 통신이 빨라질수록 민족적 특색이라던 것은 차차 엷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십년, 백년에 될 일이 아니고 천천히 될 것이고, 그것을 인위(人爲)로 갑자기 없애려면 도리어 많은 해를 일으킬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자연의 형세에 맡겨 천천히 되어지도록 할 것인데, 그렇다면 아직 상당히 오랜 동안을 민족성이 그 영향을 역사 위에 미치고 있을 것이다.... 역사상의 모든 죄악은 결국 민족적 성격의 결함이다. 그러므로 혁명은 반드시 민족적 성격의 개조에까지 미쳐야 한다.”(전집2:76-7) (김영호)

김영호 선생님은
인문학의 몇 분야를 방황하면서 가로질러 수학, 연구(스톡홀름대, 하버드대 펠로우), 강사(연세대 숭실대), 교수(인하대, 현재 명예교수)로 일했다. 전공은 종교철학(원효사상)으로, 그의 세계관의 큰 틀(패러다임)은 다원주의다. 다원주의를 통해 민족분단. 사회 및 지역 갈등, 종교간 갈등 등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기위한 방법론을 모색하고 있다. 그의 사상적 준거는 함석헌과 크리슈나무르티이다. 그 동안, 해외 민주화운동의 도구인 민중신문』(캐나다) 창간(1079)에 관여,『씨알의 소리』편집위원, 함석헌기념사업회 씨알사상연구원장을 맡기도 했다. 지금은 함석헌평화포럼 공동대표와 함석헌학회 학회장직을 맡고 있다.(2015년 12월 현재)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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