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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사상

함석헌과 불교사상

by anarchopists 2020. 1. 25.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6/16 08:38]에 발행한 글입니다.


나는 부처님을 믿는다”
깨달음과 믿음

함석헌은, 상당한 수준의 불교이해에 도달했을 뿐만 아니라 주로 기독교사상과 신앙을 통해서 형성된 그 자신의 체험적 종교관 속에서 불교와 폭넓은 접촉점을 공유하고 있음이 들어났다. 그는 불교수행의 과정을 묘사한 ‘십우도’(十牛圖)를 해설하고 서산(청허)대사의 게송(‘三夢詞’)을 이야기하는 (“청허대사의 말대로 주객(主客)을 다 꿈이란 그도 역시 꿈 가운데 잠꼬대인가?”) 수준을 보여주었다(전집2:89). 그는 서산대사처럼 읊고 있다.

“인생이 꿈이거니/ 제각기 꿈일밖에/ 같은 꿈 꿔준단 말/ 꿈속에 꿈인 말뿐/ 한 (밥)상에 같이 살 닿아도/ 깨면 서로 딴 꿈 길”(10:117) 제행무상(諸行無常)과 삼계유심조(三界唯心造)를 내세우는 불교에 다름 아니다.

개인 신앙의 측면에서 함석헌은 한 가지 놀라운 고백을 한다.

내가 불교를 모르면서도 부처님은 감히 아노라 한 것은 부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을 믿는 것은 내 속에 본래 부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 속에 본래부터 부처님이 계신 것을 알려준 것은 예수요, 공자요, 노자요, 장자입니다.(전집5:342)

부처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이 말은 당시나 지금의 한국 기독교 풍토에서는 혁명적, 이단적인 신앙고백이다. 기독교인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있거나 용납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함석헌이 기독교에서 극히 일부 신학자나 교직자를 제외하고는 인정받지 못한 이유가 명백해 들어나는 발언이다. 이런 발언은 바야흐로 종교다원주의 틀 속에서 사고하는 서구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상식이 되어가고 있지만 이 나라에서는 아직도 요원한 파격적 폭탄선언이다. 최근에도 광신도에 의한 여수 향일암 사찰 파괴사건이 보도되었다.

문제는, 광신도가 그 사람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이러니는 어제 김대식 박사의 칼럼에서 언급했듯이 함석헌의 말씀을 종교교리처럼 여기는 함석헌광신도가 날뛰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승불교에는 절대부정(空)의 논리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殺佛殺祖)는 주장까지 등장할 만큼 자기부정의 사유가 들어있다. (지하의 함석헌도 스스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자기 이름을 팔아먹고 있는 자들에게 ‘내 이름을 없애라’고 한다는 전언이다.)

함석헌은 변화하는 서구인 종교관을 앞서갔다. 서구에서는 지금 기독교-불교도(Buddhist-Christian), 유대교-불교도 등 종교의 이중(二重)-다중(多重)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하버드대 교수 출신의 한 저명한 학자는 나에게 자기 신앙의 정체성을 다중 신앙(기독교-이스람-불교-힌두교인)으로 스스럼없이 표현했다. 그 경우에도 현실적으로 소속은 어느 한 종교일 수 있지만 개인들이 종교의 선택적 조합, 조립을 통해서 스스로의 요구와 취향에 맞게 맞춤 종교를 만들어가는 경향을 반영한다. 여기에 기독교와 불교가 주축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한 가지 친근한 사례로, 미국출신 현각 스님이 저술(『만행』)에서 자기는 아직도 크리스천 신분을 버리지 않았노라고 고백하고 있다. 며칠 전 방송 프로에 나와서도 확인했다.

위 인용문에서 함석헌의 믿음도 (한 종교를 주축으로) 네 종교를 포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점에서 그는 선구자요 선각자였다. 아니, 그것은 민중(씨)이 본래 갖는 신앙구조의 발현일 뿐이다. 그것이 조직종교와 지배자들에 의하여 억압당해왔던 것이다. 왜 부처님을 믿는다고 한 것인가. 함석헌은 내 속에 있는 부처님, 즉 불성佛性) 때문임을 밝힌다. 불성은 불교의 특성을 들어내는 개념으로 깨달음(보리)를 가능하게 만드는 근거이다. 그래서 누구나 다 부처(覺者)가 될 수 있다.

불성 사상은 대승 『열반경』에서 특히 강조된다. 인간만이 아니고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을 지니고 있다(一切衆生皆有佛性). 계시종교에서도 불성과 비슷한 신성(神性)을 인간이 지니고 있음을 말하기도 하지만 불성처럼 보편적인 명제로 강조하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신과 인간 사이의 절대적 거리가 전제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함석헌은 인간과 신 사이의 거리를 줄이고 있다. 그것은 다시 인간과 신의 수평적 관계(‘人乃天’)에까지 이른 한국인의 신관의 표출로 볼 수 있다.

거의 모든 종교의 창시자들은 일종의 대각 체험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이점에서 모든 종교는 처음에는 다 일종의 불교였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최근 디팍 쵸프라(Chopra)는 예수의 공(公)생활 이전의 행적을 추적한 소설형식의 전기를 썼는데 그 부제를 ‘깨달음의 이야기’로 달고 있다. 공자가 말한 15세부터 70세까지의 자기 발전과 의식변화의 7단계도 점진적인 자각 과정으로 볼 수 있다. 함석헌은 사람의 일생을 “어림, 젊음, 일함, 찾음, 깨달음, 날아올라감의 여섯 토막”으로 나누었다.(전집5:89) 그 스스로가 세운 인생목표이다. ‘깨달음’ 다음에 비약과 초월이 오는 점이 색다르다. 여느 한국인처럼 그의 한 면은 불자였던 셈이다.(김영호)

김영호 선생님은
인문학의 몇 분야를 방황하면서 가로질러 수학, 연구(스톡홀름대, 하버드대 펠로우), 강사(연세대 숭실대), 교수(인하대, 현재 명예교수)로 일했다. 전공은 종교철학(원효사상)으로, 그의 세계관의 큰 틀(패러다임)은 다원주의다. 다원주의를 통해 민족분단. 사회 및 지역 갈등, 종교간 갈등 등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기위한 방법론을 모색하고 있다. 그의 사상적 준거는 함석헌과 크리슈나무르티이다. 그 동안, 해외 민주화운동의 도구인 민중신문』(캐나다) 창간(1079)에 관여,『씨알의 소리』편집위원, 함석헌기념사업회 씨알사상연구원장을 맡기도 했다. 지금은 함석헌평화포럼 공동대표와 함석헌학회 학회장직을 맡고 있다.(2015년 12월 현재)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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