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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철학

함석헌의 불교사상-한국불교가 나아갈 길

by anarchopists 2020. 1. 25.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6/17 08:42]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을 말한다-김영호]


한국불교가 갈 길

이처럼 불교와 많은 접촉점을 공유한 함석헌은 나아가 민족사 속에서 불교가 수행한 역할과 그 공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유교와 불교의 긍정적인 영향은 “열국시대, 삼국시대의 정치야 실패인지 모르겠지만 양심은 그 유교 때문에 부지가 되었고, 인생은 그 불교 때문에 구원이 되었다”고 말한다.(전집1:122)

삼국에 전래된 불교는 세 가지 점에서 공헌을 했다.(122-24) 첫째, 완전하지는 않지만 민족통일의 밑터가 되었다. “민족통일을 지향하는 삼국시대에 세 나라에 다 들어오면서도 종시 그 통일을 완성시키지 못하고 만 것은 국가를 초월하는 고등종교로서 불교의 실패라고 하여야 할 것이지만 그래도 아직 멸망을 면하고 기형적으로나마 통일이 된 데는 역시 씨알속에 들어간 불교의 힘이 클 것”이다.(5:334)

둘째, 삼국의 정치적 시련 과정에서 단순히 잔혹한 살인만 일삼는 전쟁에서 벗어나게 만들었으며, 셋째, 생각을 깊이하게 만들었다. 유교는 일상생활의 상부건축만 담당했을 뿐이지만 불교는 땅 속의 토대를 깊이 구축하여 “삼국의 문화는 우뚝 솟아 올라왔다.” 파고다공원의 13층 돌탑과 해인사의 팔만대장경판은 한편으로는 민중을 무시한 귀족주의의 소산이고 “말로만 하는 정치, 죽은 신앙의 모양”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민중의 피땀이 결정(結晶)된 힘이 솟은 것”이며 “영원히 무너질 수 없는 민족의 몸이 나타난 것”이다.(156)

나아가서 함석헌은 한국불교가 가야할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한다. 그것은 특히 불교잡지의 요청을 받고 쓴 글들(「내가 불교인에게 바라는 것」, 「진리는 더 위대합니다」)에서 기술되었다. 여느 크리스천 같으면 금기시할 일이었겠지만 선뜻 응낙하고 불교인에게 할 말을 했다. 함석헌의 공평한 타종교관과 (한국크리스천으로서는 드문) 독특한 불교관이 글 속에서 잘 들어난다. 그는 ‘내가 불교인에게 바라는 것’에서 이렇게 당부한다.

나는 오늘날은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기성 종교는 다 크게 반성하여서 큰 개혁이 일어나야 된다고 합니다.
통속적으로 불교라면 이 세상은 허망한 것이라는 생각과 사람을 개개로만 보는 개인주의적인 사상이 농후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사회는 유기적인 사회이어서 전체에서 독립한 개인이란 없습니다. 이것이 위에서 말한 인류가 성인기에 들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아직도 인간은 철두철미 개인적인 것으로 보고 있지 않나 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불교적인 인생관을 제시해주기를 바랍니다.”(
5:357)

여기에 함석헌의 평소 지론인 국가(지상)주의 극복과 이를 위한 종교의 사명과 개혁의 필요성이 거론된다. 낡은 국가주의 시대의 산물인 기존 종교의 틀로서는 새로운 진화단계를 촉진시키거나 뒷받침할 수 없다. (그 점에서 불교도 신라시대 이래 최근까지 기승을 부린 호국불교에 대한 반성이 요구된다. 근래는 그 대신 호국기독교가 등장한 셈이다. 함석헌식 표현으로 하자면, 아직도 종교와 국가가 붙어먹으면서 민중을 짜먹는 형국이다.)

다만 여기에서 함석헌이 불교전문가가 아닌 외부 관찰자로서 아직 접근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불교에도 그의 전체론에 상응할만한 유기론적인 철학이 발달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앞에서 논의한 대로, 다름 아닌 대승불교 화엄철학의 법계연기(法界緣起)론이다. 현상(事)과 본체(理) 사이 그리고 사물들 사이에도 전혀 걸림이 없다는 (圓融)무애의 원리이다. 원효대사는 종교차원과 세속차원의 합일 즉 성속일여(聖俗一如)의 경지에서 걸림 없는 무애의 삶을 살았다.

연기론을 통해서도 함석헌이 도달한 온 생명이 하나라는 원리에 이를 수 있다. 개인과 전체는, 엄격하게 말해서, 함석헌도 그 표현을 빌려 사용하듯이,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不一而不二) 불가분리의 유기적 관계이다. 연기론의 연장선상에서 전체론을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연기론과 전체론은 상호 다른 쪽을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예를 들면, 함석헌이 새로 해석한 가롯 유다와 예수의 열 한 제자 사이의 유기적 관계는 연기적 관계이기 때문에 전체론적 관계를 갖는다. 그러므로 두 가지가 상호 보완하여 주장을 펼친다면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함석헌식의 전체론을 불교가 유의한다면 한층 더 새로워질 터이다.

동시에 함석헌의 관점은 한국불교의 현실을 잘 들어내고 있다. 더 없이 정교한 화엄 연기론이 존재함에도 이를 실천은커녕 대중적으로 이해를 확대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사실이다. 함석헌이 화엄연기론을 접하지 못할 정도라면, 불교도 다른 제도종교처럼 중생구제를 버리고 딴 길을 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대승의 배에 먼저 일체중생을 다 태우고 스스로는 마지막으로 승선하겠다는 보살의 정신에 못 미치는 사실상 개인주의적인 소승의 길을 걷고 있다. 함석헌이 실천한 온고지신하는 정신이 부족하다.

한국불교가 나갈 길은 함석헌의 정신과 비판을 참고하여, 불교의 경전과 수행의 알짬을 현대의 말로 새롭게 해석하면서 무수한 강설과 저술을 온 세계에 계속 쏟아내고 있는 틱낫한이나 달라이라마를 본보기로 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김영호)
김영호 선생님은
인문학의 몇 분야를 방황하면서 가로질러 수학, 연구(스톡홀름대, 하버드대 펠로우), 강사(연세대 숭실대), 교수(인하대, 현재 명예교수)로 일했다. 전공은 종교철학(원효사상)으로, 그의 세계관의 큰 틀(패러다임)은 다원주의다. 다원주의를 통해 민족분단. 사회 및 지역 갈등, 종교간 갈등 등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기위한 방법론을 모색하고 있다. 그의 사상적 준거는 함석헌과 크리슈나무르티이다. 그 동안, 해외 민주화운동의 도구인 민중신문』(캐나다) 창간(1079)에 관여,『씨알의 소리』편집위원, 함석헌기념사업회 씨알사상연구원장을 맡기도 했다. 지금은 함석헌평화포럼 공동대표와 함석헌학회 학회장직을 맡고 있다.(2015년 12월 현재)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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