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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42

[김영호 제1강] 함석헌과 불교사상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4/13 09:0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과 불교사상 1. 머리말 ‘함석헌과 불교’, 생소한 주제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것도 그럴 것이 종교인으로서 함석헌은 일차적으로 기독교 신앙에 충실한 종교인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산학교 시절과 그 이전부터 그가 함께 성장한 한국기독교는 타종교에 대하여 배타주의적 입장을 견지해오고 있었다. 그가 조직교회에 대하여 비판적이었고 오랜 동안 비정통적인 무교회주의신앙에 몰입했지만 그것도 역시 기독교의 울타리였다. 그런데 ‘불교’라니 무슨 말인가. 그것은 두 가지 의미에서이다. 하나는, 한국인은 4세기 이래 1600 여년이상 불교에 노출되고 불교문화 속에서 성정해왔으므로 개인 함석헌도, 의식하건 안하건 간에, 자기 유전자나 무.. 2020. 1. 29.
[김영호 제4강] 함석헌과 불교사상-깨달음의 전체성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4/16 09:06]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과 불교사상 깨달음의 전체성 진리와 동일시되는 ‘나’의 실체가 무엇인지 함석헌의 해설을 들어보자. “그들은 다 모든 사람이 죽어서 한 사람이 일어서는 것은 알았어도, 또 그 한 사람마저 죽어야 하는 줄은 몰랐다. 그 한 사람이 죽어서 전체가 도로 살아남을 몰랐다. 예수는 메시아, 곧 한 사람을 바로 알았으므로 그마저 죽어야 사는 것임을 알았으므로, 그렇게 살았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참 한 사람일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나’를 바로 쓸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능히 ”내가 길이오, 진리요, 생명이다“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죽은 자의 말을 산 자들이 알 리가 없었고, 산 자의 말을 죽은 자들이 알 리 없었다. .. 2020. 1. 29.
함석헌의 신앙적 외침- 오직 하나님만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6/12 11:02]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을 말한다- 김대식] 함석헌의 신앙적 외침-오직 하나님만 함석헌은 초기에 무교회의자라는 꼬리표가 붙어있었습니다. 이것은 우찌무라 간조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퀘이커교가 형식적이거나 교리적이지 않아서 좋았다’라는 고백적 어투에서도 묻어나듯이, 그가 교회의 현실을 비판적 시각에서 보려고 한 것은 분명히 무교회적인 사상과 뿌리가 그에게 여전히 남아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가 무교회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교회는 “인간주의” 혹은 국가의 시녀 역할을 하는 교회의 모습으로 비추어졌습니다. 인간주의는 자칫 교회주의라는 조직과 교권을 가진 교회가 되어 그러한 교(도)권으로 성서를 해석하고 급기야 개인의 생활전반.. 2020. 1. 27.
함석헌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자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6/15 15:2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을 말한다-김대식] 함석헌을 현대적으로 해석한다. 함석헌이 기억-됨의 신학을 위하여 과연 오늘을 살아가는 (감성적인) 젊은이들에게 근대적인 정치적, 이념적 언어들이 의미가 있을까요? 이러한 물음을 던지는 이유는, 청년 함석헌의 언어들을 어떻게 개발, 해석할 것인가가 향후 함석헌의 기억-됨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신학이 언어를 담아내는 해석학적 장치와 시대를 읽어 내는 안목이 매우 뒤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신학은 이제 정치, 이념, 종교 등 거대담론에서 벗어나서(포기하고?) 실천적, 실습적 목회로 전향하였고, 언어 또한 이미 실용적인 언어(수사학적인 언어)로 변한 지 오래입니다. .. 2020. 1. 25.
[말씀과 명상]함석헌의 말씀과 오늘의 명상 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5/26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의 말씀과 오늘의 명상 함석헌의 말씀을 새김 - 사람은 꿈도 있어야 하고 잘 살자는 욕심도 있어야지만 그보다도 더 필요한 것은 깨는 일입니다. 현실에 눈을 뜨고 바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역사의 의미는 현실 속에 나타나 있고 현실의 초점은 나 곧 자아에 있습니다. 내가 뭔지, 내 선자리가 어디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그것도 모르고 꾸는 꿈은 정말 자면서 꾸는 허망한 꿈입니다. 눈을 싸매인 채 돌아가며 추는 춤은 갑자기 한순간에 구렁에 떨어져 누구를 위해 장난감이 되었던지도 모르고 죽어버리는 미친 노름일 뿐입니다. (예수는)"나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 말은 참되다" 하셨습니다. 이 말.. 2020. 1. 17.
예수는 비약(飛躍)입니다.-1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6/09 06:02]에 발행한 글입니다. “예수는 비약(飛躍)입니다” 오늘날 종교 속에 ‘놀라움[비약]’이 있는가 하는 물음을 던져보게 됩니다. 삶을 뛰어 오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도약하는 종교, 혹은 초월적 삶을 살려고 하는 종교를 만나고 싶은 것입니다. 인간의 삶을 한 단계 올라서게 하는 종교의 모습, 그것을 우리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함석헌은 “예수를 비약”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라는 인물은 새 시대를 열었을 뿐만 아니라 새 시대에 걸맞은 종교를 탄생시킨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종교는 예수처럼 비약하려 하지 않습니다. 날아 보려고 애를 쓰는, 올라 보려고 애를 쓰는(erstreben) 몸부림이 약해 보입니다. 알바트로.. 2020. 1. 16.
그리스도인은 생명을 버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6/10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생명을 버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L. Wittgenstein)에 의하면 “성실한 종교사상가는 줄타기 곡예사와도 같다. 사실상 그는 마치 아무것도 없는 허공 위에서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의지처는 거의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 위에서 걷는 것이 진짜로 가능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종교인에 대한 평가가 비단 종교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나 종교적 신비에 완전히 몰입되어 있는 영성가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종교인이라면 응당 그러한 초월적인 삶을 살고 있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라고 봅니다.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줄 위에.. 2020. 1. 16.
누구든지 가슴속에서 예수의 모습을 찾아낼 가능성이 있습니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6/12 06:21]에 발행한 글입니다. “누구든지 가슴속에서 예수의 모습을 찾아낼 가능성이 있습니다” 함석헌의 말마디에서 “누구든지”라는 말이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함석헌의 열려 있는 종교적 사유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가슴속에서 예수의 모습을 찾아낼 가능성이 있어요. [......] 하나님의 그 모습을 찾아낼 수 있어요”라고 말한 그의 신앙관에서 보편적이며 포괄적인 종교적 신념이 녹아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믿어도 믿는 줄 모르는 종교/ 의인도 하나 없고 죄인도 하나 없는/ 신자 아닌 사람, 사람 아닌 삶의 종교”라는 시구처럼 종교란 없이 믿는 듯이 믿어야 하고, 아니 믿는 듯 믿어야 그 경계와 구분을 초월하여 신과 합일.. 2020. 1. 16.
[김영호의 함석헌읽기] 세계로 나가기 위한 선결조건은 민족통일이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7/14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2. 민족, 전체(사회) 사회변혁과 새 인류의 출현을 위한 작업의 구체적인 현장은 역시 민족이다. 역사발전의 단계에서 이제는 세계주의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함석헌의 이상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우리가 아직도 들어 있는 역사단계를 대표하는 민족을 어찌할 수 없다. 세계주의로 가는 과정에서도 민족이 아직 지구촌의 구성단위로 남아있을 것이다. 민족이 민족국가 시대에서 자기 책임을 다하고 나서 세계화 시대로 접어들 수 있다고 보았다. 그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 군사독재를 넘어서서 분단된 나라의 통일이 필요하다. 함석헌은 ‘전체’를 강조하는 사상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전체는 인류전체, 생명계전체(온 생명), 우주에까지 무한히 확.. 2020. 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