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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42

자본주의적 내세 종교를 탈피하고 현재적 행복을 누리십시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2/02 05:0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의 자본주의적 종교 비판과 무교(巫敎)의 행복론 요즈음 TV에서 방영 중에 있는 가상 사극 드라마의 재미가 쏠쏠하다. 필자는 마치 정치와 종교가 묘하게 뒤섞인 모습으로 전개되는 듯하여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그 사극 전면에 특정종교가 등장하는데, 조선시대 통치이념인 유교에 맥도 못 추고 민중들 사이에서만 간간이 맥을 이어왔던 우리의 전통 신앙인 ‘무교’가 그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강신무나 세습무, 혹은 무당(남자는 박수)이 단골들과 함께 한바탕 어우러져 굿판을 벌이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 부적 역할을 하는 주인공이 소생(resuscitation)하여 과거에 연분이 있었던 왕을 위로하고 .. 2019. 11. 25.
뼛속까지 참 종교인이 되십시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3/18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참 종교는 그 종교(문화)의 색깔을 오롯이 드러내는 것이다! 종교란 사람들에게 좋은 색깔을 입히는 역할과 기능을 해야 한다. 단지 자신의 고유한 종교적인 정보 곧 도그마라든가 구원에 이르는 독단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종교 공동체를 들여다보면 자신의 신앙무늬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공동체 내부에 소속된 신자라는 것 하나 때문에 자신의 신앙 색깔이나 무늬로 다른 사람들을 재단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아니 오히려 자신의 색깔이 가장 좋은 것이기 때문에 그 색깔로만 칠해져야 한다고 고집을 한다. 그러나 어디 세상이라는 게 하나의 색깔만이 있던가. 여러 가지 색깔이 어우러져서 조화를 이루며 .. 2019. 11. 21.
종교적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4/01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종교적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 종교의 이성과 신앙 종교는 초월적 존재에 대한 믿음과 그에 근거한 삶을 살자고 하는 데에 본래의 목적이 있다. 그런데 그 신앙의 고백과 행위는 종교를 갖지 않는 사람들에게 적어도 감화를 줄 수 있어야 하고, 그 행위를 통해서 신의-있음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신자의 개별적 삶 혹은 성직자의 언어와 행위는 단지 가식과도 같은 것이라면 자칫 신의-있음으로 보이는 듯한 사기(詐欺)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함께 종단의 교리를 앞세우거나 종단이 가진 진리 체계를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는 행위 역시 종교의 본질에 입각한 생각은 아닐 것이다. 이에 대해 함석헌이 비판하지 않았는가. “내가 믿는 교리나 의식을.. 2019. 11. 20.
부활한다는 것의 의미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4/08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부활한다는 것의 의미 이맘때면 그리스도교는 참으로 분주하다. 고난주간이다, 부활주일이다 해서 1년 중 가장 중요한 전례력들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곧 그리스도교 신자의 신앙 핵심이자 구원과도 직결된 문제이기에 더욱 경건하고 장엄한 전례가 아닐 수 없다. 대부분의 신자가 교회를 다닌다고 하는 것은 바로 예수의 죽음으로 인한 구원과 그의 빈 무덤 사건으로 알려주는 내세에 대한 확신과 떼려야 뗄 수가 없다. 그래서 적극적인 신자가 아니더라도 이 시기가 되면 한 번쯤은 교회 예배나 성당 미사에 참석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교에서 참 죽음과 참 부활은 1년 중 한 때의 전례를 통한 상기나 확신은.. 2019. 11. 20.
그리스도인으로 존재한다는 것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4/30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존재한다는 것 그리스도교를 아는 것과 그리스도인으로 존재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간디는 그리스도 없는 그리스도교를 말한 적이 있다. 그리스도가 곁에 없는 종교, 그리스도와 함께 하지 않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였다고 생각한다. 지금 그리스도교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역사 이래로 그리스도를 닮기 위한, 그리스도와 함께-있음(Mit-sein)이라는 존재적 삶을 살기 위해 몸부림쳤던 성인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은 응당 그리스도교라면 그리스도를 항상 곁에 모시고 있다는 것을 자신의 삶을 통해 드러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긴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그들은 당시의 문화적인 측면에서 .. 2019. 11. 18.
클라우스 베르거, 예수1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3/02/15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서평: 클라우스 베르거, 전헌호 옮김, 예수1, 성바오로, 2013. 저자: 클라우스 베르거 옮긴이: 전헌호 출판사: 성바오로 출판일: 2012/12/25 페이지: 590 판형: 15.3*22.5cm 번역이란 고도의 집중력과 지속적인 산고의 고통을 이겨내는 작업을 통해 이루어지는 예술이다. 그것은 단순히 낱말과 낱말을 1대1로 맞대응시키는 기술을 넘어서는 것으로서 번역자의 글속의 수준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간 번역자는 수많은 번역을 통해서 그런 능력을 인정받아 왔고 이번에 내놓은 번역서『예수1』(Jesus)은 그의 번역사의 총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곧 이어서 『예수2』가 출간될 텐데,『예수1』만 해도 그 분량이 .. 2019. 11. 6.
노자와 함석헌의 만남- 노자의 일생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3/02/19 06:46]에 발행한 글입니다. 노자의 일생(1) 중국의 노자(老子; 생물연대 미상)는 춘추시대(BC. 8~5세기) 도가학파의 창시자이다. 이는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중국 고대의 사상가 중 한 사람이다. 중국의 춘추전국(BC. 8~3세기)는 백가쟁명(百家爭鳴: 여러 학자들이 사물의 이치나 사회현상에 대하여 자유롭게 자기주장을 펴면서 토론하고 논쟁을 말함)의 시대이다. 그리하여 노자가 창시한 도가학파, 공자(孔子; BC. 551~479)가 창시한 유가학파, 묵적(墨翟; 墨子, B.C. 470?~391?)이 창시한 묵가학파 등 세 학파가 정립(鼎立; 세 발로 된 솥이 서 있는 현상을 말함, 옛날이 정鼎은 나라를 세우거나 천하를 평정했다는 뜻.. 2019. 11. 6.
다 없는 사랑을 하는 인간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3/08/06 00:19]에 발행한 글입니다. 다 없는 사랑을 하는 인간 종교적 행위에서 온 몸, 온 맘, 온 정성을 다해서 신을 섬기고 기도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존재 근거 혹은 초월자를 향해서 다함이 없는 사랑을 하는 것이리라. ‘다하다’는 것은 곧 완성했다, 성취했다, 끝인 그것으로서 더는 할 일이 없다는 것인데, 그야말로 전적투신이다. 성서는 그렇게 말한다. 마음, 정성, 힘(마음, 목숨, 뜻; heart, soul, mind; kardia, psyche, dianoia)을 다하여 섬기라고(신명 6,5; 마태 22, 37). 그만큼 전심전력, 전력투구하여 실재(Reality)를 섬기라는 것이다. 함석헌은 이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2019. 11. 3.
이 나라에서 누가 예수를 또 죽이려 하는가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3/11/30 05:37]에 발행한 글입니다. 정치범으로 죽기 바랐던 예수 2500 여 년 전, 혹은 그 이전에 살았던 인물들도 그들의 일대기를 복원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데, 불과 2000 여 전 전에 살았던 예수의 경우는 그의 공생애 이전의 30년간의 일대기를 아직 복원하지 못하고 있다. 기라성 같은 성서학자들, 역사학자들, 고고학자들이 심혈을 기우려도 아직 난감하기만 하다. 12살 때에 성전에 올라갔다는 얘기 이외에 예수의 어린 시절도 우린 알지 못한다. 그리고 가장 큰 수수깨끼 가운데 하나가 예수가 왜 잡혀 죽었는가? 이다. 당시 로마정부와 유대교 지도자들은 서로 적대적 관계였는데 이 두 세력이 합동 작전으로 예수를 체포하고 처형하는 데 동의했다. 예수의 이러한.. 2019. 1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