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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33

[김대식 제5강] 새로운 생명은 믿음 곧, 종교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4/03 07:01]에 발행한 글입니다. 제5강 “새롬, 샘, 삶, 영원히 스스로 새롭는 생명을 믿음이 곧 새 종교다!” 함석헌은 “새 것을 믿으면 스스로 새로운 삶이 된다. 내가 새롬이 되면 새 숨이 저절로 쉬어진다”고 했습니다. 종교가 태동되기만 하면 종교적 삶이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새로운 종교로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날로 새로운 삶, 새로운 변화, 새로운 마음으로 영원이 삶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영원히 새로운 종교가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 편협하기 짝이 없는 ‘우리’라는 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우리 교회, 우리 성당, 우리 사찰, 우리 종교, 우리 정당, 우리 동네, 우리 자식, 심지어 우리나라 등. 이 모.. 2020. 1. 29.
[김대식 제6강] 함석헌의 유신론적 진화론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4/04 09:16]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의 유신론적 진화론, 종교는 진화해야 한다! 함석헌에 따르면, “하나님의 운동은 저항”입니다. 또한 “천지창조하려는 하나님이 물 위에 운동하셨다는 그 운동은 무슨 운동이었나? 반항운동이었다”고 말하는 논조는 마치 생성신학, 혹은 생성철학을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운동성이 근본적으로 반항운동에 있다고 말한 것은 하나님이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적 생성자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저항이라는 것을 굳이 어떠한 불의의 세력에 항거하는 운동으로 볼 수도 있지만, 종교적인 측면에서는 권력에 안주하려는 신앙의 안일함, 예언자적 비판력의 상실, 하나님성(Godness)이 아닌 것에 욕망하려는 것에 끊임없이 거.. 2020. 1. 29.
함석헌으로 살아야 합니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6/09 09:0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을 말한다-김대식] 함석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뜻이 없는 ‘말’만 무성하다는 것입니다. 모름지기 말에는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말은 철학입니다. 철학이 없는 말은 아무리 말을 해도 사람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말은 단순히 음성 언어가 아니라 말하는 이의 역사와 사상이 묻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은 마음에서 우러나와 사람의 마음에 파고들어 그 사람에게 감동적인 삶이 되는 것입니다. 함석헌을 말한다는 것은 함석헌의 정신에 따라 살게 될 때에 비로소 설득력을 얻습니다. 그것은 함석헌이 말만 하는 이가 아니었고 자신의 말을 살았기 때문에 더욱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 2020. 1. 27.
이루지 못한 함석헌의 계몽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6/10 05:34]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을 말한다-김대식] 이루지 못한 함석헌의 계몽적 이성 학자들은 철학적 사조나 문화적 현상에 따라 우리 한국 사회가 포스트모던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하곤 합니다. 포스트모던은 근대의 이성 중심의 사유에서 감성으로, 획일화에서 다양성으로, 독단주의에서 관용주의로, 로고스에서 뮈토스로의 전환을 이루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는데, 다름 아닌 이성입니다. 이성이라 함은 주관이 대상에 대해서 판단하고 추론하는 인간의 능력을 말합니다. 이성은 논리적 사고와 언어를 통해 자아가 타자와 성숙한 의사소통을 이루어가도록 만드는 인간의 특유한 능력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얼마 전에 겪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 2020. 1. 27.
함석헌의 '기억의 신학'과 영성적 철학-1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6/11 08:39]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을 말한다- 김대식] 함석헌이 기억됨의 한계 됨과 기술(記述)로서의 기억 함석헌, 오늘날 그를 기억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모름지기 기억은 해석-함이라는 하나의 행위입니다. 해석학적 행위는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언어적 엄밀성과 행동으로 삶을 엮어가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함석헌은 ‘축적된 전통’이라는 의미에서의 종교를 신봉하는 종교인은 아니지만 ‘마음의 초월체험’을 하면서 살다간 올곧은 신앙인이었다. 스스로 이단자가 되기를 선언하면서 교권제도 속에서 화석처럼 교리화된 기독교를 비판하고 그에 맞서 싸운 사람이지만 그는 ‘갈릴리 예수’와 ‘예수의 낙인(스티그마)’을 몸에 지닌 바울을 .. 2020. 1. 27.
함석헌의 신앙적 외침- 오직 하나님만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6/12 11:02]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을 말한다- 김대식] 함석헌의 신앙적 외침-오직 하나님만 함석헌은 초기에 무교회의자라는 꼬리표가 붙어있었습니다. 이것은 우찌무라 간조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퀘이커교가 형식적이거나 교리적이지 않아서 좋았다’라는 고백적 어투에서도 묻어나듯이, 그가 교회의 현실을 비판적 시각에서 보려고 한 것은 분명히 무교회적인 사상과 뿌리가 그에게 여전히 남아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가 무교회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교회는 “인간주의” 혹은 국가의 시녀 역할을 하는 교회의 모습으로 비추어졌습니다. 인간주의는 자칫 교회주의라는 조직과 교권을 가진 교회가 되어 그러한 교(도)권으로 성서를 해석하고 급기야 개인의 생활전반.. 2020. 1. 27.
함석헌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자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6/15 15:2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을 말한다-김대식] 함석헌을 현대적으로 해석한다. 함석헌이 기억-됨의 신학을 위하여 과연 오늘을 살아가는 (감성적인) 젊은이들에게 근대적인 정치적, 이념적 언어들이 의미가 있을까요? 이러한 물음을 던지는 이유는, 청년 함석헌의 언어들을 어떻게 개발, 해석할 것인가가 향후 함석헌의 기억-됨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신학이 언어를 담아내는 해석학적 장치와 시대를 읽어 내는 안목이 매우 뒤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신학은 이제 정치, 이념, 종교 등 거대담론에서 벗어나서(포기하고?) 실천적, 실습적 목회로 전향하였고, 언어 또한 이미 실용적인 언어(수사학적인 언어)로 변한 지 오래입니다. .. 2020. 1. 25.
[김대식, 1강]간다와 함석헌의 메타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3/08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간디와 함석헌의 메타-호도스와 메타-에콜로지, 그리고 메타-담론 -씨알의 길로서의 ‘삶숨’ 철학적 여정 1 길[道]. 그것은 서양철학과 동양철학 전반에 걸쳐서 논의되었던 도덕형이상학이자 자연형이상학을 일컫는 형이상학 일반을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이다. 만물의 법칙을 존재로 볼 것이냐 생성으로 볼 것이냐 하는 형이상학적 논의는 자연학(physics) 다음(meta)에 붙여진 타학문의 근거와 길을 내는 제일철학이었다. 그런데 이제 길은 형이상학이 아니라 존재적(ontogische) 실존을 요청한다. 그래서 길(hodos)은 따라가는(meta) 방법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닦여 있는 존재의 상태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길은.. 2020. 1. 22.
[김대식, 4강] 씨알들이여, 저항하라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3/15 07:56]에 발행한 글입니다. 4. 함석헌은 “간디는 현대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조명탄”이라고 말하면서, “그의 일생의 표어는 ‘참’”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신은 물질을 이기고야 말 것이다. 간디 정신은 이기고야 말 것”이라고 역설했다. 또한 그는「민족복음화운동」이라는 글에서 “종교란 본래 어려움 속에 있어서도 높고 깊고 넓고 꿰뚫는 정신적 진리를 추구해 나가는 것이 참 사는 길이란 것을 가르치잔 것이 그 목적이기 때문이다... 정신은 정신만으로 서는 것이지, 그 자체가 아닌, 밖에서 오는 힘, 곧 물질의 힘이 버티어 주어야 설 수 있다면 그것은 겉모양은 아무리 종교의 모양을 했어도 종교 아니”라고 말했다. 간디는 인도 힌두교의 정신대로, 함석헌은.. 2020. 1.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