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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평화

[김대식, 1강]간다와 함석헌의 메타

by anarchopists 2020. 1. 2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3/08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간디와 함석헌의 메타-호도스와 메타-에콜로지,
그리고 메타-담론 -씨알의 길로서의 ‘삶숨’ 철학적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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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道]. 그것은 서양철학과 동양철학 전반에 걸쳐서 논의되었던 도덕형이상학이자 자연형이상학을 일컫는 형이상학 일반을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이다. 만물의 법칙을 존재로 볼 것이냐 생성으로 볼 것이냐 하는 형이상학적 논의는 자연학(physics) 다음(meta)에 붙여진 타학문의 근거와 길을 내는 제일철학이었다. 그런데 이제 길은 형이상학이 아니라 존재적(ontogische) 실존을 요청한다. 그래서 길(hodos)은 따라가는(meta) 방법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닦여 있는 존재의 상태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길은 방법(methode)이 아니다. 길은 길을 가는 사람의 뒤를 따라 또 다른 사람이 가는 메타 호도스(meta hodos)가 되어야 한다. 길은 선각자가 있어야 하고, 그 길을 내준 선각자의 길을 묵묵히 따라가는 모방자가 있어야 한다.

한갓 미메시스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완성하겠다는 과욕은 아니라 하더라도 좋은 스승을 만나면 그 미메시스는 새로운 형이상학으로 탈바꿈이 된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길은 어떤 길이어야 하는 것일까? 필자는 길 안내자 두 사람을 살펴봄으로써 그 길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간디는 인도의 종교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에 대해서 박학다식 했던 수도자(修道者, 혹은 求道者)였다. 태생과 후생의 종교적 관념들을 잘 조합시켜 사상과 실천의 새로운 영역을 구축하고 그것을 몸으로 산 인물이다. 함석헌은 어떤가? 그는 한동안 다석 유영모의 문하생으로 머물렀지만, 종교에만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사상들을 통합하여 날카로운 시대적 비판을 만들어 낸 인물이 아니던가. 둘은 시대가 만든 새로운 세상을 꿈꾼 사람들, 시대를 고민한 명민한 사람들이었다.

도(道)는 서양철학에서는 logos로 하였는데, 이법이나 이성, 말, 언어 등으로 번역하였다. 그리스도교의 신약성서 요한복음 1장 1절은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럴 때 말씀이 곧 도로 번역이 되는 logos이다. 어쩌면 이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도의 현현을 두고 한 말인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서 존재 자체이자 초월적인 존재가 가시적 존재가 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잠깐 현요한의 도(道)와 수도(修道)에 대한 개념을 살펴보자. 앞에서 필자는 간디나 함석헌을 수도자라고 말하였다. 이들은 도를 닦는 사람들이다. 그런데『중용』에 보면 “도를 닦는 것을 교라 한다”(修道之謂敎)고 했다. 중용에서는 하늘의 명령을 닦는 것을 도라하였는데 그 도가 인간의 성품을 통해서 드러난다고 보았다. 도가 인간의 성품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은 다름 아닌 덕(德)이다. 그러므로 도와 덕은 인간이 짝을 해야 하는 실천적 목표이자 이상이다. 현요한은 이것을 그리스도교적인 수행과 수도로 다음과 풀고 있다.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과 신학함이 단순히 하나님에 대해 지식적으로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배워 알고 살아가는 것임을 확인하였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동양적 용어인 ‘도 닦음’(修道) 혹은 修行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복음의 말씀, 혹은 그리스도 자신을 하나님의 도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간디와 함석헌은 하늘의 명령에 순응하여 자신들의 인격과 품성으로 통하여 길을 내고 덕을 쌓은 인물일 것이다. 도를 닦는다는 표현보다는 ‘길을 닦는다’, 또는 ‘근원을 닦는다’는 번역이 이들의 사상과 실천을 더욱 명료하게 드러낸다. 그리스도교 사상에 밝았던 함석헌은 로고스의 자기 포기 사건, 신의 자기 포기 사건이 우주를 태동시켰다고 본다. 이는 신의 자기 포기 사건이 이 땅에서 우주의 길을 내었다고 볼 수 있다. 우주의 길이 나기 위해서는 로고스가 자신을 낮추는 사건이 필요했던 것이다. 생명의 길이 난 것이다. 그렇다면 간디와 함석헌이 길을 내었다는 것은 무엇으로 해명할 수 있는가? 아마도 두 사람의 상관성은 역사의 새로운 길을 내었다는 데에 있겠다.


그렇다면 오늘날 그 길을 어떻게 따라가야 할 것인가? 어떻게 그들을 재해석하고 박물관의 박제된 사상을 벗어나 세계가 공감하고 실천의 양약으로 삼는 길을 터줄 것인가? 필자는 그것을 간디와 함석헌의 생명사상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함석헌의 사상을 씨을 중심으로 하는 삶의 철학[生哲學], 혹은 생명철학이라고 한다면 이때 삶이란 인간 정신의 발현과정이요, 자기의 바탈이 얼, 길, 뜻, 참, 하늘을 실현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정신철학 혹은 생철학적 사유와 실천은 간디에게서도 나타난다. 간디의 사티아그라하(satyagraha, 眞理把持) 혹은 진리를 움켜쥠(begreifen), 아힘사(ahimsa)는 오늘 우리를 가슴 뛰게 하며 정신을 버쩍 들게 만드는 프로네시스(실천지)다. 이에 함석헌은 사티아그라하를 이렇게 말한다.

간디의 길이란 어떤 것인가? 그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스스로 부른 대로 그것은 ‘사티아그라하’다, 진리파지(眞理把持)다, 참을 지킴이다. 또 세상이 보통 일컫는 대로 비폭력운동이다. 사나운 힘을 쓰지 않음이다. 혹 무저항주의란 말을 쓰는 수는 있으나... 그는 죽어도 저항해 싸우자는 주의다. 다만 폭력 곧 사나운 힘을 쓰지 말자는 주의다... 그러므로 비폭력 저항주의다.”

간디가 역사의 변혁을 위해 나름의 화두를 던진 것처럼, 함석헌도 역사 변혁을 위한 근원을 사랑으로 보고 있다. 그가 아가페를 자비, 어짐[仁], 인도의 희생으로 풀고 있는 것은 사랑이야말로 역사의 이법이자 원동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역사의 근원으로서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이자, 스스로 하는 정신이다. 스스로 함, 스스로 그러함이라는 자연은 스스로 하는 정신에 의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세계도 스스로 그러한 자유로운 생명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간디와 함석헌이 세계의 이치와 이법, 존재 그 자체로서의 진리를 통하여 하나의 종교적 정신을 역사에 체현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민족이 성하고, 쇠하는 것, 나라가 일어나고 넘어지는 것, 가지가지의 문화가 꽃피고 지는 것이 다 이 ‘아가페의 운동’이다. 사랑을 찾음이다... 이 ‘아가페’를 공자는 ‘인’(仁)으로 보았고, 노자는 ‘도’(道)로 보았고, 석가는 ‘빔’(空)으로 보았다.”


간디와 함석헌은 아가페의 실현 즉 도(진리, 존재)의 실현을 비폭력적 실천 행위로 이해하였다. 그런데 함석헌은 간디를 해석하면서 혼 즉 아트만(atman)이 폭력과 맞서 싸우는 힘이고, 혼이 자아를 드러낸다고 말한다. 자아를 드러낸다는 것은 자기 혁명의 새길을 내는 것이다. 그것은 맨 처음의 원리, 곧 아르케(arche)를 찾아 가는 것이리라. 그러므로 하느님의 길, 예수의 길, 자연의 길 등 처음을 찾고자 하는 것이 아가페의 운동성이자 도의 본래성이다.(김대식, 내일계속)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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