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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철학\함석헌, 영성

[김대식 제5강] 새로운 생명은 믿음 곧, 종교다

by anarchopists 2020. 1. 29.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4/03 07:01]에 발행한 글입니다.

제5강

“새롬, 샘, 삶,
영원히 스스로 새롭는 생명을 믿음이 곧 새 종교다!”

함석헌은 “새 것을 믿으면 스스로 새로운 삶이 된다. 내가 새롬이 되면 새 숨이 저절로 쉬어진다”고 했습니다. 종교가 태동되기만 하면 종교적 삶이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새로운 종교로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날로 새로운 삶, 새로운 변화, 새로운 마음으로 영원이 삶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영원히 새로운 종교가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 편협하기 짝이 없는 ‘우리’라는 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우리 교회, 우리 성당, 우리 사찰, 우리 종교, 우리 정당, 우리 동네, 우리 자식, 심지어 우리나라 등. 이 모든 정체성들을 일컫는 울타리적 사고가 극단적인 배타성을 낳게 되는 행동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만연되어 있는 이 배타성을 극복하기 위한 함석헌의 대안이 ‘형제’라는 말입니다. 언어가 행동을 낳고 자신을 규정하듯이, 형제라는 말 속에는 우리라는 범주를 뛰어넘는 의미가 깃들어 있습니다. 피붙이만 형제가 아니라 모두가 뜻을 함께 하고 의식을 통일할 수 있다면 형제가 될 수 있는 사회, 그 종교가 새로운 종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새롭다는 것은 너와 나 ‘사이’에 ‘보편적인 존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영원히 새로운 사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형제입니다. ‘사이’가 존재하지만 그 ‘사이’에는 존재가 있어서 틈이 없이 너와 내가 하나가 될 때에 종교가 새로워질 수가 있습니다. 종교와 종교는 다르지만, 민족과 민족이 다르지만 형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사이-있음’이기 때문입니다. ‘사이’가 있어야 여백이 있고 아름다울 수 있으며 그래서 관계가 좋을 수 있습니다. ‘사이가 좋다’는 말은 바로 나날이 관계가 새롭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너와 나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고 배려해줄 수 있어야 영원한 형제가 될 수 있습니다. 너와 나 사이의 차이와 다름이 존재해도, 그렇기 때문에 그가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종교가 된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함석헌은 ‘아름답다’를 ‘앎답다’로 풀이합니다. “남이 알아줄 만큼 값이 있단 말이다.” 아름답다는 말은 실용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선 ‘조화’입니다. 이 종교와 저 종교는 서로 다릅니다. 그러나 서로 그 종교 고유의 정신과 가치를 인정하고 알아줄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 조화를 이루어나갈 수 있는 길입니다.

각각의 종교를 개별적으로 놓고 보면 그리 완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교리나 의례, 조직과 규모 등을 면밀히 살펴보면, 긴 세월 동안 종교가 가진 아름다움이란 보잘 것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곳곳의 종교는 우주 전체에서 보면 각기 제몫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종교가 우월하고 또 반대로 열등한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형제애는 서열의 감정으로는 이루어낼 수 없는 귀중한 가치입니다. 서열은 새로움, 참 삶살이를 가져 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형제애적인 새로움, 새로운 종교가 되려면, 종교간의 배타성을 극복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 자연에 대한 배타적 태도, 자연에 대한 인간의 우월한 의식을 버려야만 합니다. 그 역할을 삶과 그 삶-숨[생명]을 영원으로 인식하는 새 종교가 해주어야 합니다. 종교가 자연과의 관계에서 그 ‘사이’를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자연과 인간 ‘사이’에 일정한 관조적 ‘거리’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때로는 멀리 바라봐야 아름다운 것이 있습니다.

자연 속에 있는 나무, 풀, 꽃, 동물, 곤충, 바위 등은 뜯어 놓고 보면 하찮다 여길 수 있지만, 멀리서 전체를 바라보면 그 조화로움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함석헌은 이렇게 볼 수 있는 나의 시선은 “무한에 대한 종교적 애탐”이라고 말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들국이 아름답고 기러기가 아름다웠던 것은 우리 속에 깊이 깃들어 있는 도덕성 때문”입니다. 이 말은 독일의 근대철학자 칸트(I. Kant)의 숭고미와 많이 닮았습니다. 웅대한 자연을 바라보면서 오히려 내 마음에 깨달음으로 오는 것은 인간의 도덕성, 인간 정신의 고양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종교는 두 가지 당면된 문제 앞에서 함석헌의 ‘종교미학적 시각’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종교가 새롭게 변화하고자 하는 욕망이 크면 클수록 타종교에 대한 형제애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고, 언제나 자연에 대해서 배타적이고 이기적이었던 마음이 미(학)적 감수성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종교나 자연에 대한 태도가 소유 개념이었던 것을 이제는 우주의 배경 속에서 봐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는 종교적인 강요나 배타성을 말한 적이 없었으며, 자연에 대해서는 퍽 가까웠던 분이었다는 것입니다.
함석헌은 말합니다. “내 사랑아, 마음을 아름답게 가져야지. 어떤 마음이 아름다운 마음이냐? 무한을 안은 마음이 아름다운 마음이지. 어떤 마음이 무한한 마음이냐? 참된 마음이지...... 영광의 님을 사랑하여 하늘가에 서라. 서서 바라라. 그러면 새 시대의 주인이 네 허리에서 번개처럼 방사되어 나올 것이다.” 교회를 비롯한 한국의 모든 종교들이 무한을 안은 마음들이 되어 종교와 자연에 대해서 형제로 대하는 혜안이 생기기를 바랄 뿐입니다.(김대식, 내일 계속됩니다)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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