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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철학\함석헌, 영성

함석헌의 신앙적 외침- 오직 하나님만

by anarchopists 2020. 1. 27.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6/12 11:02]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을 말한다- 김대식]


함석헌의 신앙적 외침-오직 하나님만

함석헌은 초기에 무교회의자라는 꼬리표가 붙어있었습니다. 이것은 우찌무라 간조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퀘이커교가 형식적이거나 교리적이지 않아서 좋았다’라는 고백적 어투에서도 묻어나듯이, 그가 교회의 현실을 비판적 시각에서 보려고 한 것은 분명히 무교회적인 사상과 뿌리가 그에게 여전히 남아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가 무교회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교회는 “인간주의” 혹은 국가의 시녀 역할을 하는 교회의 모습으로 비추어졌습니다. 인간주의는 자칫 교회주의라는 조직과 교권을 가진 교회가 되어 그러한 교(도)권으로 성서를 해석하고 급기야 개인의 생활전반을 지배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함석헌은 오로지 하나님을 떠난 어떠한 차원도 용납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신앙‘만’, 기도‘만’, 십자가‘만’을 강조할 경우에 한쪽으로 치우치는 종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신앙적 외침은 ‘오직 하나님만’으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가 말하는 진정한 교회는 제도적, 국가적이기 보다 가정적이며 사랑이 화합하는 곳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종교는 낡은 기구를 버리고 날마다 새로워져서 영원히 불변하는 종교가 되어야 합니다. 참 종교는 자신의 종교까지도 부정되어야만 새로운 종교, 새로운 교회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으로 그가 꿈꾼 교회는 ‘화(和)의 교회’입니다. 모든 종교를 하나로 묶어 내는 교회, 영과 진리의 교회, 성령의 교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들이 서로 각기 다르지만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화(和)음(音)이 되는 하모니의 신학은 그의 종교적 포용성을 엿보게 됩니다.

함석헌은 이 땅의 모든 종교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비판합니다.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종교는 이제 새로운 종교로 거듭나야만 합니다. 그런데 새로운 종교는 어떠한 특정종교에 매어 있지 않습니다. 오로지 참다운 실천만이 참 종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종교가 씨알의 제 종교로서 기억되기 위해서는 씨알이 특정종교에 매여 있도록 하면 안 됩니다.

씨알의 삶은 자유로운 삶, 해방하는 삶이기에 특정종교가 아닌 순수한 종교로서 제 삶을 실천적 영역으로 이끌어내는 종교여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종교란 도그마가 되어서는 안 되며, 세속적 권력에 편승하고 영합하는 종교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그래서 함석헌은 국가종교가 아닌 퀘이커교에 매력을 느꼈는지도 모릅니다. 그가 퀘이커교에 심취하게 된 동기에는 기존 종교의 피안성에 환멸을 느끼고, 지금 여기에서의 실천적 관심사(세계 평화나 사회 정의), 실존적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김성수).

또한 함석헌은 퀘이커교가 냉철한 이성신앙을 견지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마음에 들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함석헌의 퀘이커교의 신에 대한 체험이 ‘윤리적 신비주의’(김진), 공동체적 영성을 통해 사회적 실천이나 평화사상의 실천이라는 현실참여로 유도할 수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씨알 함석헌은 종교가 피안적 세계만을 추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문제, 실천의 문제에 참여함으로서 역사를 변혁해야 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관조적 혹은 사변적 신학이 아니라 참여적 신학을 주장한 것입니다. 이것은 씨알의 인격적 변화, 우주 전체의 진화론적 인격적 참여의 종교로까지 나아갑니다. 이 진화론적 신관은 하나님의 동적인 존재성, 즉 되어가는 하나님(becoming God)이 되어 역사와 사회 변혁의 원동력이 됩니다. 정적이고 자족적인 하나님은 역사를 변화시킬 수가 없습니다. 반면에 항상 변화하는 하나님은 새로운 신으로서, 종교도 끊임없이 변화할 것을 요구합니다.

씨알이라는 개념에는 모든 근원의 되는 ‘씨’(氏)와 알, 즉 o(태극, 혹은 초월적인 하늘), .(내재적 하늘 곧 자아), ㄹ(활동하는 생명, 되어감, 끊임없는 흐름)이 하나의 활동성(삶의 본질)을 이루는 생성신학적 의미를 드러냅니다. 또한 ‘나’라는 존재는 궁극적인 실재인 하나님을 목표로 하는 지향성을 갖는다는 측면에서 삶-숨신학[생명신학]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씨알에게 다가오는 존재요, 하나님은 우리(씨알)와 함께-있음의 존재입니다. 또한 “씨알은 새로운 생명의 잠세적 가능성의 총체요 그루터기다. 씨와 알은 모든 새로운 생명이 거기에서부터 나오는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함석헌의 그리스도론은 그의 종교에 대한 입장들을 놓고 볼 때,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을 주장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종교가 진화론적 과정에서 윤리적이고 영적으로 변화하고,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종교라면 응당 하늘로부터가 아니라 땅으로부터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정신이 진화하여 신과의 인격적 관계 속에서 세계를 이끌어가는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씨알 중에 씨알은 예수입니다”라는 함석헌의 주장에 비추어 본다면, 그는 초월적 그리스도론이 아닌 생생한 역사적 예수를 강조하였습니다.

그런 생각과 맞물려 십자가에서 일어난 사건, 즉 전통적인 대속론(代贖論)에 대해서도 함석헌은 신에 의해서 사해졌다는 주체성 없는 인간의 무책임성을 비판적으로 인식합니다. 그렇다면, 이것 또한 위로부터 주어지는 은총이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함석헌의 씨알의 종교, 씨알의 신학은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하며 신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지속시켜나가는 매우 역동적이면서도 이성적 신앙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김대식)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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