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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철학\함석헌, 영성

함석헌의 '기억의 신학'과 영성적 철학-1

by anarchopists 2020. 1. 27.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6/11 08:39]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을 말한다- 김대식]


함석헌이 기억됨의 한계
됨과 기술(記述)로서의 기억

함석헌, 오늘날 그를 기억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모름지기 기억은 해석-함이라는 하나의 행위입니다. 해석학적 행위는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언어적 엄밀성과 행동으로 삶을 엮어가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함석헌은 ‘축적된 전통’이라는 의미에서의 종교를 신봉하는 종교인은 아니지만 ‘마음의 초월체험’을 하면서 살다간 올곧은 신앙인이었다. 스스로 이단자가 되기를 선언하면서 교권제도 속에서 화석처럼 교리화된 기독교를 비판하고 그에 맞서 싸운 사람이지만 그는 ‘갈릴리 예수’와 ‘예수의 낙인(스티그마)’을 몸에 지닌 바울을 지극히 사랑하고 흠모한 분이다.”

이렇듯 함석헌은 자신이 처한 삶의 자리(Sitz im Leben)에서 일어나고 있는 역사와 종교를 성서나 다른 종교의 사상들을 통해 비판하고 자신의 언어와 행동으로 승화시킨 삶의 철학자입니다. 그는 성서와 한국의 고난의 역사를 기억하고 날카로운 초월적 이성으로 풀어낸 해석학자입니다. 역사를 기억-함이란 바로 그의 신학함(doing theology)의 출발이자, 삶의 고발이고 비판이었습니다. 그의 기억-함의 신학은 후대의 씨알들에 의해서 함석헌의 사상들이 기억되는 것이고, 또한 기억-됨을 다시 기억-함(역사적 실천)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외침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억-함의 신학

함석헌은 고통의 사건들에 대해 참[誠]으로 대했습니다. 참으로 대했다 함은 그가 고통과 고난을 역사의 사건으로 기억하며 자신의 말을 이루었다[誠]는 것입니다. 그 시발점은 생명과 구원의 원리를 고난, 즉 십자가의 사건으로, 성서의 역사를 고난의 사건으로 현재화하여 기억-하였다는 데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고난입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사회적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직접 십자가를 지고 피를 흘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의 십자가의 경험은 한국 역사가 고난의 역사임을 기억하는 것이고, 당시의 한국 정치 현실을 고난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그는 성서의 사건을 기억-함 속에서 새로운 해석과 실천을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기억-함은 단순히 과거의 경험과 사건을 현실에서 되살리거나 혹은 과거의 경험된 정보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과거의 경험들을 실존적으로 지금 여기서 실천함으로서 재현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함석헌은 자신의 신앙과 사상, 그리고 실천(삶)을 하나님의 기억 속에 내던짐으로써 오히려 하나님의 기억을 더 현실화한 사람입니다.

기억의 신학적 언어: 평화, 민중, 교회, 그리고 씨알의 종교

잘 아는 대로 함석헌은 비폭력 평화주의자입니다. 그의 평화론은 예수의 산상설교와 이사야서로부터 영향을 받았습니다. 또한 간디의 ‘사티아그라하’(眞理把持 혹은 진리를 붙잡음)라는 비폭력사상과 『바가바드 기타』에서도 사상적 기반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노장철학의 핵심인 무위자연(無爲自然)과 퀘이커의 평화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평화를 역사의 절대적인 명령(마치 칸트의 정언명법과 같은)으로 인식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전쟁과 국가주의를 비판 및 반대하는 실천적 평화론자가 되었습니다.

함석헌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전체’이면서 민중(씨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씨알과 하나님은 하나입니다. 민중을 받드는 것이 하늘나라를 섬기는 것이라는 함석헌의 말에는 민중이 곧 구원의 주체이고 역사와 시대 변혁의 주체라는 것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민중인 씨알은 인류의 씨알이고 생명의 씨알입니다. 그러므로 민중의 세계-내-존재이면서 우주의 씨알로서 생명 전체가 운명공동체라는 사실을 자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씨알은 전체 우주와 유기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민중신학에서 민중개념의 우주적, 생명적, 종교적 특성이 약하다고 하는 비판도 있습니다만, 그러나 오히려 함석헌이 씨알을 민중으로 보고 있고 민중과 하나님을 하나로 보는 생명철학 혹은 생명신학적 관계성을 약화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씨알과 동일시되는 이 민중은 누구입니가? “민중은 자기 스스로가 주인입니다.” 민중(오클로스)은 민중 스스로의 언어, 민중의 언어로 이야기합니다. 민중의 언어로 말하고 민중의 언어로 소통을 합니다. 함석헌은 이러한 민중들을 향해 민중의 언어로 말하려고 합니다. 1세기 예수 운동을 주도했던 민중들은 예수를 민중의 언어로 기억하고 선포했던 이들입니다. 그렇게 민중의 언어로 기억된 예수는 교회 공동체라는 민중 집단에 의해서 민중의 언어로 기억을 전수해왔습니다. 그러므로 씨알, 즉 민중의 언어는 역사의 변화를 가져오는 혁명의 언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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