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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칼럼

[김대식, 4강] 씨알들이여, 저항하라

by anarchopists 2020. 1. 2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3/15 07:56]에 발행한 글입니다.


4.

함석헌은 “간디는 현대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조명탄”이라고 말하면서, “그의 일생의 표어는 ‘참’”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신은 물질을 이기고야 말 것이다. 간디 정신은 이기고야 말 것”이라고 역설했다. 또한 그는「민족복음화운동」이라는 글에서 “종교란 본래 어려움 속에 있어서도 높고 깊고 넓고 꿰뚫는 정신적 진리를 추구해 나가는 것이 참 사는 길이란 것을 가르치잔 것이 그 목적이기 때문이다... 정신은 정신만으로 서는 것이지, 그 자체가 아닌, 밖에서 오는 힘, 곧 물질의 힘이 버티어 주어야 설 수 있다면 그것은 겉모양은 아무리 종교의 모양을 했어도 종교 아니”라고 말했다. 간디는 인도 힌두교의 정신대로, 함석헌은 그리스도교(그러나 그리스도교적 입장만은 아닌)의 정신대로 산 사람들이다. 간디도 함석헌도 종교를 팔지도 선전하지도 않았다. 후대는 간디를, 함석헌을 팔아먹으려 하지 말아야 한다. 단지 그 정신대로 살기만 하면 될 뿐이다. 생각의 길을 터준 사람들의 삶을 욕되게 하기에는 우리의 시대가 가야 할 길이 멀기 때문이다.

생각은 존재가 드러나는 것을 말함이다. 각(覺)이란 존재의 상태요, 생(生)은 존재가 깨우쳐 드러난 것이다. 그러므로 생각은 존재가 깨우침 즉 사람의 있음을 깨우쳐 드러내는 것이다. 함석헌에게 있어서 생각 즉 사람의 있음이라는 존재론적 행위는 역사의 성장과 발전, 진화를 가져오는 “뿌리”가 된다. 더 나아가서 이 생각이라는 것은 “살림의 뿌리”가 된다. 민족이 살고, 세계가 살고, 더 나아가서 우주 전체가 살 수 있는 길은 “씨알이 스스로 제 생각을 하는 데서 시작한다.” 씨알이 제대로 된 생각, 주체가 된 생각이 있어야 살 수가 있다. 언젠가 함석헌은 “나의 간디가 자라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우리는 “나의 함석헌이 자라고 있다”고 말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나의 씨알이 자라고 있다”고 외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씨알의 생각으로 잦다듬어 새로운 옷을 짜기 위해서 말이다.


함석헌은 성서의 요한복음 1장 1절의 내용을 “맨 처음(en arche)에 저항이 있었다”고 말하면서 ‘로고스’(말씀)를 ‘저항’으로 바꾸었다. 저항은 맨 사람으로서의 씨알, 전체이자 개별자인 씨알(자아=하늘=얼)과 참(진리)의 실현을 위한 것이다. 인간의 타고 난 바탈을 완성하기 위해서 저항을 이야기 한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실현하기 위해서 상대방의 어떠한 불의에도 저항할 수 있는 자기희생적 각성을 촉구할 수 있는 씨알이 분연이 일어나야 한다. 하나가 일어나면 전체가 깨우칠 것이요, 전체가 일어나면 하나가 될 것이다. 반생명적인 자본의 문화, 과잉소비를 부추기는 문명들, 우리의 인식을 아둔하게 만드는 언론, 씨알을 근본으로 하지 않는 정치 등에 대해서 비판정신을 가져야만 한다. 그래서 함석헌처럼 하느님의 발길에 채여 저마다 자신의 순수한 바탈, 맨 정신의 본질을 힘을 보여줌으로써 역사의 저항사를 새롭게 전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저자는 죽었고 기억만이 남아 있다. 함석헌의 기억 안정체(Stabilisator)에만 매달리고 안주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게다가 개인과 집단의 무의식은 때로는 불완전하고 고통스럽고 왜곡되기도 한다. 그런데도 함석헌 이후의 함석헌을 논하는 사람들은 그 기억의 안정체에 의존하여 망각의 강 레테를 건너가려고 모진 애를 쓴다. 좋은 일이나 이성의 불확실성은 언제나 그 관념과 초월의 한계를 또다시 망각하면서 삶을 왜곡의 긴 구렁텅이로 빠뜨리게 한다. 그래서 근대철학자 칸트는 일찌감치 이성의 한계와 능력을 깨달아야 할 것을 자신의 철학을 통해서 말하지 않았던가.


함석헌의 담론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가 영향을 받았던 간디의 담론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현대 논의되고 있은 담론에 대한 비판적 담론이 없는 이상 발전적인 담론이 나올 수가 없다. 사상 그 자체는 남아 있더라도 사람들은 변하고 기억의 안정체에 의존했던 사람들조차도 하나둘씩 떠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함석헌의 담론이 계속될 수 있는가의 여부는 문자가 아니라, 행동이다. 예수도, 간디도, 그리고 함석헌의 로고스조차도 한갓 탁상공론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행위와 실천의 영역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늘 그렇듯이 문자는 나중이고 행위가 먼저이다. 그것이 오늘날 간디와 함석헌의 메타-담론의 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들의 길을 가려는가? 그렇다면 그저 말없이 그들과 동행하며 따라가는 ‘행자’(Homo viator)가 되어야 할 것이다.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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