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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철학

함석헌으로 살아야 합니다.

by anarchopists 2020. 1. 27.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6/09 09:0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을 말한다-김대식]

함석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뜻이 없는 ‘말’만 무성하다는 것입니다. 모름지기 말에는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말은 철학입니다. 철학이 없는 말은 아무리 말을 해도 사람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말은 단순히 음성 언어가 아니라 말하는 이의 역사와 사상이 묻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은 마음에서 우러나와 사람의 마음에 파고들어 그 사람에게 감동적인 삶이 되는 것입니다.

함석헌을 말한다는 것은 함석헌의 정신에 따라 살게 될 때에 비로소 설득력을 얻습니다. 그것은 함석헌이 말만 하는 이가 아니었고 자신의 말을 살았기 때문에 더욱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함석헌을 다시 살린다는 것은 함석헌을 살겠다는 제2의 사건[生起, ereignis]으로서의 삶을 발현하겠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함석헌을 말하는 이가 함석헌 본래의 생각과는 다른 삶을 산다면 함석헌은 지금 여기에서 살지 못합니다. 함석헌을 말하는 사람들에게서 함석헌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함석헌을 앞세워 마치 ‘함석헌 액세서리’로 과시소비(?)하면서 정작 그분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삶을 보여주고 있으니 세상은 함석헌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것은 함석헌이 말한 것처럼, 상식적이지 못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함석헌을 말한다는 것은 함석헌을 사는 것입니다. 그게 함석헌을 말하는 사람들의 상식입니다. 아니 함석헌을 말하는 이들에 대해 일반적인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상식입니다. 위대한 근대철학자 칸트는 이 상식이라는 말을 ‘공통감’(sensus communis)라고 말했습니다. 사회가 상식이 통용되는 것은 강제가 아니라 상호 동의와 상대방에 대한 배려, 그리고 설득입니다. 함석헌의 사상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주관이 객관에 대해 함석헌의 삶이 이렇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것을 살면 만족스러운 삶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설득할 때 가능합니다. 함석헌을 말하는 사람들이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삶이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런데 함석헌을 말하는 사람들은 함석헌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함석헌의 표현을 빌려 쓴다면, 정말 열심만 가지고 있지, 냄새나는 신앙적 교조주의자(dogmatist)만 무성할 뿐입니다. 그것이 함석헌에 대해서 건강하게 해석된 해석학적 삶이라면 괜찮습니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나 함석헌이 신앙화, 절대화되어서 마치 그것 아니면 안 된다는 듯 주장하는 텍스트 근본주의자는 대화를 하고 싶어도 대화가 될 수 없습니다. 한번 쓰여진 텍스트는 늘 독자의 해석을 기다립니다. 텍스트는 당시의 시대성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텍스트와 콘텍스트와의 교량 역할을 해주는 것이 해석입니다. 독자는 그 해석을 통해 텍스트의 삶을 자기화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제나 건전하고 건강한 열린 해석이어야 합니다. 함석헌을 말하는 이들은 그러한 작업을 통해 시대와 그리고 동시대 사람들과 소통해야 합니다. 소통되지 않는 사상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함석헌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이 있지만, 그러나 앞으로도 함석헌을 기억하는 이들이 과연 있을 것인가는 의문입니다. 기억하는 이들이 기억을 살아주어야 그 기억이 생명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함석헌의 사상이 “생명체”가 되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함석헌은 생명을 삶-숨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삶을 숨쉬게 만드는 사상을 기다립니다. 그 사상을 통해 이 사회와 국가, 그리고 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가 되어서 삶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촉매제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보다 먼저 할 일은 함석헌을 말하는 이들이 말을 앞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말은 맑은 사상을 건네는 도구입니다. 그래서 말은 철학이라고 했습니다. 함석헌의 철학이 내면화되어 그것으로 삶을 살아주어야 함석헌이 살아납니다. 말만 하지 말고 삶을 살아주어야 함석헌이 생명체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묻습니다. “당신은 함석헌을 살고 있습니까?”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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