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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철학

이루지 못한 함석헌의 계몽

by anarchopists 2020. 1. 27.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6/10 05:34]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을 말한다-김대식]

이루지 못한
함석헌의 계몽적 이성

학자들은 철학적 사조나 문화적 현상에 따라 우리 한국 사회가 포스트모던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하곤 합니다. 포스트모던은 근대의 이성 중심의 사유에서 감성으로, 획일화에서 다양성으로, 독단주의에서 관용주의로, 로고스에서 뮈토스로의 전환을 이루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는데, 다름 아닌 이성입니다. 이성이라 함은 주관이 대상에 대해서 판단하고 추론하는 인간의 능력을 말합니다. 이성은 논리적 사고와 언어를 통해 자아가 타자와 성숙한 의사소통을 이루어가도록 만드는 인간의 특유한 능력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얼마 전에 겪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통해서 겪은 현상에 대해서 자살이니 타살-이 또한 종교 공동체에서 일어난 말싸움인 듯하지만-이니 하며 말하는 것은 논점을 흐리는 것이라고 봅니다. 필자는 오히려 우리 사회가 아직도 근대의 계몽적 이성도 경험하지 못한 사태의 결과라고 보고 싶습니다. 이성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는 토론과 대화를 통해서 이끌어 가야 하는 민중(demos) 정치입니다. 그런데 그 토론과 대화의 매개를 발현시키는 이성적 성숙을 이루지 못한 사회는 감성(칸트I. Kant, 1724-1804는 감성을 단순히 감정으로 보지 않고 인간의 선천적 인식능력의 한 부분으로 봅니다. 심지어 제3비판서에서 나타나는 공통감은 감성적 이성과 맞닿아 있습니다)을 편협된 감정으로 몰고 가기 마련입니다. 고대 서양 철학자들이 그렇게 말했던 중용이나 부동심(아파테이아, apatheia)을 지닌 철학적 정치가의 모습은 고사하고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우리의 문명이 진보된 것만큼 인간의 이성 또한 진화했는가를 묻고자 합니다. 함석헌의 저서 곳곳에서는 진화론적 색채가 짙게 배어나옵니다. 그것은 잘 알다시피 앙리 베르그손(H.-L. Bergson, 1859-1914)이나 떼이야르 드 샤르댕(Pierre Teilhard de Chardin, 1881-1955) 같은 사상가들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함석헌이 그러한 사상가들의 말마디를 있는 그대로 읊조리기만 한 분이 아니라, 외래의 사상들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진화사상을 발전시킨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지금 함석헌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은 아직도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몰이성적 사회와 인간을 이성적 사회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봅니다. 다시 말해서 함석헌의 사상을 통해 이 사회와 개인의 이성적 진화를 꾀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혹자는 함석헌을 두고 사회적 진화론자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아마도 사회적 진화론라는 말은 맥락으로 보아 아직도 계몽되지 못한 이 사회와 개인이 이성적으로 깨어서 사회적 투신자, 사회적 혁명가로서 살아가야 할 것이라는 의미의 재해석이라고 여겨집니다. 함석헌이 그렇게 부르짖었던 것이 민족의식의 계몽이라면, 그것은 개인의 이성적 발달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함석헌의 말대로 “생각이 생각을 낳는” 행위이며, 생각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의 논리에 따라 생각이 생각을 낳는다면 생각의 곳간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생각의 곳간이 끝이 없다.’ ‘생각이 생각을 낳아 생각이 자라게 한다.’ 이런 함석헌의 논리는 전체로 보면 개인, 사회, 우주의식의 진화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개별적 존재인 인간 이성의 진화, 사회 구성체로서의 이성의 진화, 우주의식의 진화가 결핍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생각을 할 줄 모릅니다. 생각이 생각을 낳지 못합니다. 마음에서 자라는 소리[생]가 깨우침으로 이어져야[각] 사람이 자랍니다. 마음의 빛이 자라나는 것, 그것이 계몽(enlightenment)일진데 그 사건이 요원하기만 합니다. 포스트모던가 감성주의를 말한다고 해서 근대적 이성을 완전히 거부했다고(anti, 脫) 볼 수 없습니다. 포스트모던의 반성적 의식의 산물 역시 이성적 작용에서 시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올바른 포스트모던의 비판적 사유는 곧 이성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포스트모던시대에 정치적 삶이 감정으로만 치달을 수 없다는 문제의식은 바로 여기에 근거합니다. 포스트모던시대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으려면 이성의 빛에 따라 우리의 의식은 토론과 대화,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여전히 “네 이성을 용기 있게 사용하라!”(sapere aude!)는 칸트의 계몽적 구호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삶의 자세는 끊임없는 이성의 진보, 사회의식의 진화를 꾀하는 일이어야 할 것입니다. 함석헌은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당신의 이성(理性)은 안녕하신가?”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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