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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와 함석헌21

[이거룡 제1강] 간디의 길, 함석헌의 길, 나의 길-길 위의 삶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2/15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이거룡 제1강] 간디의 길, 함서헌의 길, 나의 길- 길위의 삶 "너는 씨알이다. 너는 앞선 영원의 총결산이요, 뒤에 올 영원의 맨 꼭지다 … 기나긴 5천 년 역사가 네 속에 있다." 동양에서 진리를 가리키는 가장 일반적인 말은 '도'(道), 즉 길이라는 말이다. 인도전통의 요가(yoga)라는 말도 길(margā)이라는 말이다. 요가는 해탈에 이르는 길이다. 이때 길은 어디엔가 이르는 과정이 아니다. 길 따로 도달해야 할 목적지 따로가 아니라, 길이 곧 목적지요 목적지가 곧 길이다. 그래도 굳이 한쪽 편을 들라 한다면, 길은 '존재'(being)보다는 '흐름'(becoming)을 본질로 한다. 흐르지 않으면 길이 아니다... 2020. 1. 23.
[이거룡 제2강] 길을 묻는다-간디와 함석헌의 회통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2/16 08:27]에 발행한 글입니다. [이거룡, 제2강] 2. 간디와 함석헌의 회통 함석헌이 간디의 이름을 들은 것은 ‘스물이 한 둘 넘어서'인 3.1운동 무렵이었다. “간디의 이름을 처음으로 들은 것은 3.1운동 후였습니다. 우리가 그 비폭력 반항(非暴力反抗)을 하던 그 해가 마침 간디가 인도에서 대대적으로 비폭력 운동을 일으킨 때입니다. 그러므로 신문으로 잡지로 그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보도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단편적인 것이었고, 1923년 일본에서 로망 롤랑의 을 읽고서야 비로소 그의 생애와 그 운동의 대체를 알 수 있게 되었고” 또한 깊은 감명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1929년 간디의 일본 방문이 예정대로 성사되었다면 두 사상가의 만남이 .. 2020. 1. 23.
[이거룡 제4강] 진리는 하나, 길은 여럿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2/22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이거룡, 제4강] 진리는 하나, 길은 여럿 진리실현의 길에서 간디와 함석헌의 중요한 공통점은 종교의 테두리에 얽매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진리는 하나지만 여기에 이르는 길은 여럿 있을 수 있다는 힌두교의 오랜 전통은 함석헌의 종교관과 맞아떨어진다. “궁극적으로 모든 종교는 하나”라는 그의 말이 지니는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종교는 진리 그 자체가 아니라 진리에 이르는 하나의 방편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시대와 장소에 맞게 끊임없이 그 옷을 갈아입지 않으면 생명을 상실한다는 것이다. “아기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는 전수히 어머니 몸에서 오는 것으로 살지만, 생명이 자라서 어느 시기에 오면 거기가 도리어 죽는 곳이요 어서 .. 2020. 1. 23.
[김영호 개회사] 간디와 함석헌의 길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2/24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제2회 함석헌평화포럼 학술발표회 개회사] 간디와 함석헌의 길 나(개체)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를 넘어서, 우리(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함석헌이 말한 ‘뜻’이나 목표로 향하고 있는가. 늘 되물어야할 물음입니다. 묻기나 하면서 살고 있는가. ‘나’안에 갇혀서, 작은 ‘우리’ 안에 갇혀서 물을 겨를이 없는 것인가 자문해봅니다. ‘말할 수 없는 도’(道可道非常道)라든지 ‘길 없는 길’이라고 하지만, 길(道)은, 한자의 뜻처럼, 말로 가리켜져야 길입니다. 곧 말이 길입니다. 가는 것이 길이지만, 길이 저기가 아니고 여기라고 가리켜져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자기 길을 걸어온 여러분에게 길을 묻는 자리를 마련한 것입니다. .. 2020. 1. 23.
[김영호, 개회사] 간디의 길 함석헌의 길- 길을 묻는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2/25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김영호, 개회사] 간디의 길, 함석헌의 길 -길을 묻는다. 종교는 종교대로 독선주의와 상업주의로 판칩니다. 교육, 언론, 종교의 공통점은 본래의 공익성을 버리고 사유화, 기업화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것에 있어서도, 이는 세계에 유례가 없습니다. 중동에서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는 세 종교를 받드는 국가들이 자기 길만 옳다고 서로 각축을 벌이다가 중동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가 되어있습니다. (그 화약고는 한국사회에도 잠재되어 있습니다.) 이들은(그리고 우리들도) 지금이라도 간디나 함석헌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함석헌은 말했습니다. “진리의 산에는 오르는 길이 이 길만이 아닙니다. 나만이 전부를 다 안 .. 2020. 1. 23.
[박정강 1강] 간디의 길, 함석헌의 길, 나의 길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3/01 05:32]에 발행한 글입니다. 간디의 길, 함석헌의 길, 나의 길 법의 활용과 관련하여 1. 들어가며 각 시대는 각 시대의 말이 있었고, 행동이 있었다. 약 2500년전의 석가, 소크라테스,공자, 약 2000년 전의 예수,약 1500년의 마호메트,원효,샹카라 그리고, 약500년전에는 율곡 이이,까비르,루터등이 그 시대의 말과 행동을 하였었고, 100년전에는 톨스토이,간디 등이 대표한다. 결국 그런 사람들의 말과 행동들이 길이 되어 지금까지 살아 이어지고 있고, 이것들이 종합되면 인류의 역사라 할것이다. 최근의 100년간의 인류역사에 있어서 세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누구냐?고 할 때 간디를 선택하는데 크게 이의가 없을 것이다. 이나라에서는 그러.. 2020. 1. 22.
[박종강, 제3강] 간디의 법에 대한 투쟁(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3/03 06:01]에 발행한 글입니다. 2. 간디의 법에 대한 투쟁 마. 간디의 1906년 남아프리카의 사티아그라하운동 1906년경 남아프리카는 영국직할지인 케이프와 나탈 그리고 트렌스발,오렌지자유주로 되어있었고, 간디는 트렌스발에서 변호사업무를 하고 있었는데 아시아인등록법이 통과되었다. 위 법령의 취지는 트렌스발에 거주하는 모든 8살 이상의 인도인은 남녀를 불문하고, 아시아인 호적계에 출두하여 증명서를 발부받아야하고, 증명서신청시 개인의 신상을 세세히 밝혀야 한다. 호적계는 이를 기록하고 눈에 띠는 신체적특징을 적고 열손가락 모두 지문날인을 받는다. 출두하지 않는 인도인은 거주권을 박탈당하는 동시에 벌금을 물거나 감옥에 갇히거나 강제추방당하게 된다. 등록 이후.. 2020. 1. 22.
[박종강, 5강] 간디의 길, 함석헌의 길, 나의 길- 나의 길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3/05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의 법 다. 함석헌의 저항은 무엇에 대한 저항인가? 함석헌은 반항할 줄 모르면 사람아니다.라고 말한다. 사람은 긍정이 아니라 부정할 줄 알아야 사람이다. 저항할 줄 알아야 사람이란 것이다. 무엇에 대한 저항인가? 참속성, 맨사람을 잡아 가두는 모든 것에 저항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함석헌의 카알라일의 의상철학에 나오는 “eternal no, eternal yes"을 인용하고 사람은 영원의 부정한다. 일체의 부정을 통해 아주 영원한 긍정자리를 갈 수 있다고 본다. 함석헌은 특히 국가도 최상이 아니고 민족도 최상이 아니라고 본다. 국가는 생명이 아니다. 제도의 하나다. 국가와 나라를 구별하여야 한다. 나라는 사회적인.. 2020. 1. 22.
[김대식, 1강]간다와 함석헌의 메타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3/08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간디와 함석헌의 메타-호도스와 메타-에콜로지, 그리고 메타-담론 -씨알의 길로서의 ‘삶숨’ 철학적 여정 1 길[道]. 그것은 서양철학과 동양철학 전반에 걸쳐서 논의되었던 도덕형이상학이자 자연형이상학을 일컫는 형이상학 일반을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이다. 만물의 법칙을 존재로 볼 것이냐 생성으로 볼 것이냐 하는 형이상학적 논의는 자연학(physics) 다음(meta)에 붙여진 타학문의 근거와 길을 내는 제일철학이었다. 그런데 이제 길은 형이상학이 아니라 존재적(ontogische) 실존을 요청한다. 그래서 길(hodos)은 따라가는(meta) 방법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닦여 있는 존재의 상태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길은.. 2020. 1.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