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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평화

[이거룡 제4강] 진리는 하나, 길은 여럿

by anarchopists 2020. 1. 23.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2/22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이거룡, 제4강]

진리는 하나, 길은 여럿

진리실현의 길에서 간디와 함석헌의 중요한 공통점은 종교의 테두리에 얽매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진리는 하나지만 여기에 이르는 길은 여럿 있을 수 있다는 힌두교의 오랜 전통은 함석헌의 종교관과 맞아떨어진다. “궁극적으로 모든 종교는 하나”라는 그의 말이 지니는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종교는 진리 그 자체가 아니라 진리에 이르는 하나의 방편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시대와 장소에 맞게 끊임없이 그 옷을 갈아입지 않으면 생명을 상실한다는 것이다.
“아기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는 전수히 어머니 몸에서 오는 것으로 살지만, 생명이 자라서 어느 시기에 오면 거기가 도리어 죽는 곳이요 어서 거기를 탈출하여야 된다는 지혜가 솟게됩니다. 그래서 죽을 각오를 하고 거기를 빠져 나오면 일순간에 새 살림이 시작됩니다.”
과거의 관념들은 그것이 아무리 살아 생동하는 종교적 영감이었다 할지라도 오늘의 시대정신에 적합하게 재해석되지 않으면 단지 죽은 화석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드러낸다. 따라서 종교는 늘 형성도상에 있을 수밖에 없다.

알다시피 함석헌의 사상편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우찌무라간조의 무교회주의, 톨스토이의 휴머니즘, 노장사상, 퀘이커리즘, 데이야르 샤르뎅, 그리고 간디와 <바가바드기타>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의 여러 사상들을 두루 섭렵했다. 이것은 그의 타고난 방랑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오히려 진리를 추구하는 그의 독특한 방식에 기인한다고 봐야 한다. 예를 들어 기독교인은 궁극적으로 성경과 기독교라는 종교까지 십자가에 못 박지 않으면 참된 기독교인이 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그의 방식이다. 다시 말하여 기독교 안에서 영원한 진리를 발견하고 체험하였기 때문에 철저하게 구체적인 기독교인으로 살면서도, 역설적으로 역사적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상대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자기부정 혹은 자기초월이 하나의 종교전통 안에서 끊임없이 심화될 수도 있겠지만, 그의 경우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요소를 부가해 가는 과정을 통하여 자기부정이 깊어진다는 점에서 종교인으로서는 다소 특별하다. 기성종교의 시각에서 보면 늘 이단(異端)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 것도 바로 이 점 때문이다. 사실 함석헌을 어느 하나의 종교를 구획 짓는 것은 무의미하다. 모든 종교는 하나라는 것이 그의 종교관이므로 무교회주의와 노장 또는 퀘이커리즘을 넘나드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에게 사상편력은 자기 확장인 동시에 내적인 심화 과정이며, 결코 ‘이단’으로 규정될 성질이 아니다.

어떤 사상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공감'을 전제로 한다. 공감이란 다른 말로 하면 '좋다'는 것이며, 좋다는 것은 '동질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함석헌이 우찌무라를 따르고, 노장에 심취하며, 간디를 좋아했다는 것은 이들이 함석헌을 닮아있다는 것이다. 무교회주의를 좋아하고 간디를 통하여 혹은 <바가바드기따>를 통하여 기쁨을 느낀다는 것은 결국 그 둘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물론 간디로부터 배우게 된 점도 있겠지만, 또 한편으로 보면, 이미 함석헌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던 사유의 싹들이 간디의 사상을 접했을 때, 공감하게 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일찍이 스승 유영모를 통하여 형성된 그의 생각 속에 간디의 사상과 공통 요소도 있다는 말이 된다. 실재로 함석헌은 그 행동에서 간디와 비슷하며, 또한 그 생각이 <바가바드기따>를 닮아 있다.

따라서 함석헌이 초기의 무교회주의에서 퀘이커리즘으로, 퀘이커리즘에서 간디나 <바가바드기타>로 옮겨가는 것은 일련의 연속선상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여 함석헌이 하나의 종교사상에서 다른 하나의 종교사상으로 옮겨가는 것은 '개종'(改宗)이 아니라 '가종'(加宗)이며, 확장이다. 무교회주의는 조직화된 종교를 거부하는 함석헌의 종교적 심성에 맞아떨어졌지만, 퀘이커리즘을 통하여 평등주의 평화주의 비형식주의를, 그리고 간디를 통해서는 처한 상황의 유사성이라는 매력을 느꼈다.

예를 들어 퀘이커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침묵예배를 드리는 것은 힌두교의 명상 전통과 일맥상통한다. 실제로 함석헌은 “서양 사람에게 나온 종교 중에서 동양 사람에게 가장 가까운 사상이 바로 퀘이커주의”라고 말한 적이 있다. 퀘이커들이 성속을 구분하지 않고 “삶 전체가 신성하다”고 보는 점, 고정된 교리나 신경(信經)보다는 다양하게 변해가는 ‘내면의 빛’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 등도 힌두교와 통한다. 힌두교는 고정된 종교의 교리나 형식주의보다는 탄력적인 내면의 신앙을 강조한다.

이거룡님은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인도철학을 공부한 후 인도 마드라스 대학 라다크리슈난 연구소(석사), 델리대학 대학원(박사)를 졸업했다. 'EBS 세상보기' 강좌를 통해 심원한 인도의 사상과 문화를 쉽고 생동감 있게 다룬 바 있다. 현재 서울 불교대학원대학교 교수로 있으며 인도학교를 개설 중이다. 저서로는 라다크리슈난의 명저 <인도철학사>(전4권, 한길사)를 우리말로 옮겼으며, 저서로 <두려워하면 갇혀버린다>와 공저로 <논쟁으로 본 불교철학> <구도자의 나라> <몸 또는 욕망의 사다리>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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