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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름의 형이상학적인 삶(야고 2,1-17)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8/09/09 22:56 ]에 발행한 글입니다. 부름의 형이상학적인 삶(야고 2,1-17) 인간의 피투성과 부름의 평등성 하이데거는 인간이 속절없이 이 세상에 내던져진 것을 '피투성'(Geworfenheit)이라고 이름붙였습니다. 이를 소설가 밀란 쿤데라(M. Kundera)는 “삶은 덫이다”라는 한 문장으로 표현합니다. 원치 않는 태어남, 육체의 한계에 갇혀서 죽는 인간의 모습을 보면, 이 말이 쉬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애초에 원치 않았던 인간의 태어남조차도 분명히 어떤 부름이 있었던 것입니다. 부름은 세상에 나오기 위해서 내가 준비한 것이 아니라 이미 부름의 힘과 주체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세상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부름의 공평함 속에서 누구는 그 부름을 신의 부.. 2019. 10. 22.
그리스도인의 신앙언어 사용법(야고 3,1-1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8/09/17 01:31 ]에 발행한 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언어 사용법(야고 3,1-12) 언어대중과 신앙언어, 말의 진중함 모름지기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는 동물입니다. 특별히 무리를 지어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 집단을 언어대중이라고 한다면, 좀더 특정한 언어를 사용하는 공동체를 일컫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신앙언어라는 특수언어를 사용하는 집단을 그리스도교라고 합니다. 신앙언어는 신앙인들이 사용하는 독특한 개념과 말과 표현이 있어서, 일반 대중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도 신앙인들은 자신의 신앙언어가 마치 보편적인 일상언어인 것처럼 착각을 하고, 다른 언어대중들에게 아무 거리낌이 없이 말을 하곤 합니다. 문제는 신앙언어를 사용하는 .. 2019. 10. 22.
風謠, 그리고 두 정상의 만남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8/09/20 15:16 ]에 발행한 글입니다. 風謠, 그리고 두 정상의 만남오다 오다 오다 오다 서럽더라 서럽다 우리들이여 공덕 닦으러 오다 왔도다. 왔도다. 인생은 서러워라. 서러워라 우리들은, 공덕(功德) 닦으러 왔네. (來如來如來如, 來如哀反多羅, 哀反多矣徒良,功德修叱如良來如) 이는 신라 양지(良志)라는 승려가 노동요를 불교적 공덕의 노래로 바꾸어 재 창작한 〈風謠〉(풍요)라고 하는 향가(鄕歌)다. 현장에서 불리는 노동요는 짧고 간결하면서 반복 구조가 핵심으로, 힘들여 일하는 것에 리듬을 주고 노동의 힘겨움을 잊게 하고 힘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노래였다. 는 바로 이런 모습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표현법으로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행동에 나서.. 2019. 10. 22.
민본주의에서 보는 용어의 오류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8/09/25 03:40 ]에 발행한 글입니다. StartFragment민본주의에서 보는 용어의 오류영주에 민본주의실천연대(줄임, 민실련)이 있습니다. 민실련에서는 왜 ‘민본주의’ 용어를 되살리려 하는가에 대하여 생각하게 만듭니다. 원래 민본주의라는 용어가 일제 강점기 일본의 어용학자들에 의하여 민주주의로 왜곡이 됩니다. 근대개화기 영어의 데모크라시democracy는 ‘민주주의’(民主主義)로 해석되어서는 안 되고 역사 속의 아시아에서 늘 써왔던 ‘민본주의’(民本主義)로 번역이 되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일제 어용지식인들이 나라의 주권이 어디에 있느냐의 논쟁 속에서 당시는 민인(民人)이 주인인 ‘나라’라는 용어가 아니고, 통치자(천황)가 주권을 가진 ‘국가’라는 개념 속.. 2019. 10. 22.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결, 그리고 거기(Da)(야고 3,13-4,8a)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8/09/26 21:16 ]에 발행한 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결, 그리고 거기(Da)(야고 3,13-4,8a) 그리스도인의 지혜와 자기 인식 사람이 지혜롭다는 것과 자기 자신을 인식한다는 것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지혜는 그리스어로 소피아(sophia)라고 합니다. 마르틴 하이데거에 따르면, 여기에서 파생된 형용사 소포스(sophos)는, “이것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적합한 맛, “냄새를 맡는 능력”과 본질적인 것에 대한 본능을 소유한 사람을 말합니다. 그 때문에 어떤 것을 직접 근거로부터 이해하는 즉 모범적이고 뛰어난 방식으로 어떤 사태에 잘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따라서 지혜로운 사람은 본질적인 것을 판별해내는 뛰어난 능력이 있는 사람을.. 2019. 10. 22.
기도, 하늘의 창문을 여는 것(야고 5,13-20)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8/10/01 02:53 ]에 발행한 글입니다. 기도, 하늘의 창문을 여는 것(야고 5,13-20) 그리스도교를 비롯하여 세례의 여러 종교들은 기도라는 행위가 중요한 의례로 틀잡혀 있습니다. 따라서 종교에 입문을 하자마자 기도라는 말만큼 많이 듣는 말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기도는 참으로 어려운 것으도 인식되기도 합니다. 그보다 어쩌면 우리가 하는 기도라는 것이 정말 올바른 기도행위인가, 라는 의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하는 것 같은데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발생하지 않거나, 정반대의 상황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기도에 대한 회의를 품게 됩니다. 그러나 기도란 어떤 상황이 일어나도록 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도는 마음이 하늘에 닿도록 .. 2019. 10. 22.
평화와 통일, 그리고 동아반도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8/10/03 13:13 ]에 발행한 글입니다. StartFragment평화와 통일, 그리고 동아반도 우리 조상들의 땅이었던 중국 동북삼성(東北三省: 吉林省, 遼寧省, 黑龍江省)이 있는 만주와 이어진 반도가 동아반도(東亞半島)다. 동아반도라는 이름은 이 땅에 근대화의 바람이 불면서 당시 지식인들에 의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동아반도는 만주를 포함하였다. 이렇게 근대화시기 붙여진 반도의 이름이 해방 이후 이념 분단국이 되면서 두 분단국이 남의 대한민국에서는 한반도(韓半島)로, 북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조선반도라 부른다. 이제 통일의 바람과 함께 남과 북이 달리 쓰고 있는 우리 땅의 이름을 용어통일의 차원에서 옛 우리 조상들이 불렀던 ‘동아반도’로 하면 어떨까 하는 .. 2019. 10. 22.
국가보안법은 당장 철폐되어야 한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8/10/10 05:35 ]에 발행한 글입니다. 국가보안법은 당장 철폐되어야 한다. 1.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를 가지고 국가라는 울타리를 만들고, 사회를 규제해야 한다는 논리는 모순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이전에 ‘주체적/자주적 동물’이다. 이게 참 명제이다. 곧 인간은 ‘절대 자유’를 지닌 개인이다. 이 절대적 자유/천부적 자유를 지닌 개인을 통제하고 지배하고 간섭하는 일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는 국가조직과 국가권력을 강화하는 어떤 제도와 법치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참 명제를 먼저 인식해야 한다고 본다. 이런 차원에서 국가보안법은 당장 철폐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글쓴이는 오래 전 《인문연구》33.34(2003.12, 인하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민.. 2019. 10. 22.
침묵의 벽을 뚫고 오시는 로고스(히브 4,12-16)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8/10/15 02:47 ]에 발행한 글입니다. 침묵의 벽을 뚫고 오시는 로고스(히브 4,12-16) 귀를 위해서 말이 있는 것 같지만, 말을 단지 귀로만 듣지 않습니다. 귀는 말소리를 듣는 도구이지만, 정작 말을 듣는 곳은 마음입니다. 말이 건드리는 곳은 마음인데, 청각적 기호로만 말을 알아듣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아무리 특정한 인간 집단이 언어적 규약공동체로 모였다 하더라도, 말이 오고가는 맥락에 따라서 말을 사용해야 서로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다. 맥락을 중요하게 여기는 규약공동체를 벗어나면, 똑같은 말이라 할지라도 다르게 들을 수 있습니다. 신앙언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그 말을 사용하고 있는 공동체의 약속언어이기 때문에 말과 마음이 잘.. 2019. 10.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