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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독자 칼럼

風謠, 그리고 두 정상의 만남

by anarchopists 2019. 10. 2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8/09/20 15:16 ]에 발행한 글입니다.

風謠, 그리고 두 정상의 만남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서럽더라
서럽다 우리들이여
공덕 닦으러 오다

왔도다. 왔도다.
인생은 서러워라.
서러워라 우리들은,
공덕(功德) 닦으러 왔네.
(來如來如來如, 來如哀反多羅, 哀反多矣徒良,功德修叱如良來如)

이는 신라 양지(良志)라는 승려가 노동요를 불교적 공덕의 노래로 바꾸어 재 창작한 〈風謠〉(풍요)라고 하는 향가(鄕歌)다. 현장에서 불리는 노동요는 짧고 간결하면서 반복 구조가 핵심으로, 힘들여 일하는 것에 리듬을 주고 노동의 힘겨움을 잊게 하고 힘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노래였다. <풍요>는 바로 이런 모습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표현법으로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행동에 나서도록 하는 노동요 수법이 나타나고 있다.

세 나라(가야, 백제, 고구려)의 역사를 하나로 통합한 후기신라(이를 우리 역사에서 ‘삼국통일’이라는 역사용어를 쓰고 있지만 이 용어는 재고되어야 한다)의 역사는 우리에게 아픈 역사의 시작이었다. 당나라는 자신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보이는 신라를 끌어들여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으로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외세에 의해 민족의 역사를 새롭게 써야 하는 첫 사건이기도 하고, 북으로 거대한 고구려 영토를 대부분 잃어야 했으니 외세를 끌어들인 대가치고는 너무나 혹독한 것이었다. 그 후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동아반도(東亞半島, 이를 한국에서는 한반도, 북조선에서는 조선반도라고 서로 달리 부른다. 이제부터는 통일된 용어로 동아반도라고 하자.)의 뿌리 만주에는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으니, 민족(동아반도) 전체의 입장에서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지만, 신라 자체로서는 대단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고 했을 것이다. 고대국가 사국(四國)은 수백 년 이상 다른 제도와 문화를 형성하며 살았기 때문에 문화적 동질성을 아우르는 정신세계가 절실했다. 그중 하나가 지배/통치와 피지배/피통치를 통합하는 가사 즉 향가(민족의 노래)였다.

"오다"의 표현은 '어떤 사람이나 존재의 기준이 되는 사람이 있는 쪽으로 움직여 위치를 옮기다'라는 뜻을 가지는데 〈풍요〉의 표현은 공덕을 닦으러 오라는 정도의 이끎이 아니라 오지 않고는 견뎌낼 수 없어서 이미 와 있다는 것을 의미함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을 형상적으로 나타내는 종교적 마력을 발휘하는 노래로 볼 수 있다.

115일 만에 우리 동아 반도에 있는 두 분단국가 대한민국의 대통령 문재인과 조선 인민공화국(북조선)의 수장 김정은이 김대중과 노무현에 이어 역사적 만남을 이루었다. 반가운 일이다. 오늘같이 기쁜 날, 신라 향가의 깊은 뜻을 되새기며 ‘풍요’를 지향해 본다. 너무도 무거운 의제(議題)들이 무겁게 쌓여 있지만, 차분히 이제까지 분단권력들이 즐기며 쌓아온 교착국면, 곧 현실적인 접근부터 타개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쩌면 문대통령이 마지막 평양방문이 될지도 모르는 이 두 수장들의 만남이 희망통일의 다리를 놓아서 오래도록 오고 가며, 끝내는 ‘분단종식’이라는 기쁜 결과를 만들어내는 먼 훗날의 행복이 되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적대적인 모습에서 서로를 포옹하고 화동들과 함께 꽃다발을 건네받는 등, 수많은 북조선 시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남한의 문대통령은 진실된 마음으로 화답을 했다. 그 마음을 알기에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울렁인다. 내용적으론 종전선언에 가까운 남북합의가 평화통일로 가는 겨레의 뜻이었음을 확인한 샘이다.

외세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역사적 과오를 교훈 삼아 두 나라 권력자들이 역사적으로 하나였던 민족의 지혜를 다시 모아 두 나라에 정치, 사회적 안정과 평화를 이룩했으면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외세에게 지불하는 엄청난 경제적 대가를 청산하고 두 나라가 하나 된 경제적으로 행복한 복지나라가 동아 반도의 땅에 내려앉기를 역사적으로 하나였던 ‘민족의 노래’에 담겨진 기운을 빌어 두 손 모아 기원해 본다.
평화, 새로운 미래로 출발.


온다 온다 온다
오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민족의 염원이

간다 간다 간다
가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안개 자욱한 무리들이                                                                                             (2018. 09.17, 해마중)

* 해마중이라는 이름은 필명입니다. 해마중님은 젊어서 정의가 바로 서는 운동을 하다가 뜻한 바 있어 지금 시골에 들어가 농사를 짓고 계십니다. 삶의 일기를 소설로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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