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함석헌평화연구소/박경희 작가 단상

권력과 먹이사슬, 그리고 부당거래

by anarchopists 2020. 1. 5.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2/03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권력과 먹이사슬, 그리고 ‘부당 거래’

모처럼 극장에서 영화 한 편을 보았다. 한국의 명작영화 <해결사>, <짝패> 등 사회고발적인 영화를 만들었던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라는 영화다. 역시 감독은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탄탄한 시나리오도 놀랍고 배우들의 리얼한 연기 또한 압권이었다. 주위를 살펴보니 영화관을 꽉 채운 관객들이 화면 속으로 빨려 들 듯 몰입해서 보고 있었다.

내용은 사실 매우 단순하다. 연쇄 살인 사건 때문에 온 나라가 술렁거렸다. 하지만 범인은 경찰을 비웃기라도 하듯 쥐새끼처럼 잘 피해 다녔다. 드디어 대통령이 직접 사건에 개입하게 되었다. 경찰은 잔뜩 긴장하게 되고 수사 도중 유력한 용의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게 된다. 그러면서 경찰청은 마지막 카드를 꺼내든다. 그것은 바로 가짜 범인을 만들어 사건을 종결짓는 것이다.

이 음모의 해결사로 지목된 경찰은 광역수사대 에이스 최철기였다. 그는 경찰대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줄도, 빽도 없어 번번이 승진에서 탈락되는 형사였다. 그는 이번 일만 잘 해결하면 경찰대 출신 못지않은 승진을 보장해 준다는 선배의 말을 믿고 일에 가담하게 된다. 최 형사는 그동안 스폰서 역할을 해 온 해동 장석구를 이용해 ‘가짜 범인’를 세우게 되면서 영화는 절정을 향해 간다. 이야기의 다른 축은 대한민국 검사 주양에 대한 부분이다. 그는 부동산 업계의 큰 손 태경 김 회장과 악의 고리를 이어가고 있다. 주 검사는 시시때때로 김 회장으로부터 돈과 명품 등 온갖 스폰을 받아먹고 있다.

어느 날 최철기 형사가 입찰 비리 건으로 김 회장을 구속시켰다는 사실에 분개해 그의 뒤를 캐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최 형사가 연쇄살인 사건의 가짜 범인을 조작한 것을 알게 된다.아무튼 영화는 더럽게 엮이고 지독하게 꼬이면서 그들만의 거래가 시작된다. 그래서 제목이 <부당거래>인 셈이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아직도 대한민국은 검사에게 기업 총수가 뒷돈을 대주고 아파트 한 채쯤 헌납하는 게 아무 것도 아닌 세상인가 의아스러웠다. 고급 음식점에서 기업총수를 만나 은밀한 뒷거래를 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은커녕, 자신의 능력이라 믿는 검사의 모습에 구역질이 났다. 그렇다면 경찰은 깨끗한가? 그렇지 않다. 그들 역시 술집 마담 등과 은밀한 뒷거래를 통해 검은 돈을 챙겨 먹고 있었다. 기업 총수들의 술수는 도를 넘었다. 그들은 일반 서민들이 들으면 억, 소리를 낼 정도의 돈을 검사에게 바쳤다.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난, 위정자들이나 정치인들이 텔레비전에 나와 세상이 바뀌었다고 해서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줄 없고 빽 없는 사람들도 실력만 있으면 쑥쑥 승진할 수 있는 세상. 성실히 자기 몫을 다하는 서민이 존중받는 사회, 더럽게 꼬인 부당 거래가 아니고도 정정 당당히 자기 길을 찾아 갈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한 줄 알았다. 더군다나 늘 하나님의 거울 앞에 자신을 비춰야 하는 장로님이 대통령이 된 세상이기에. 그래서 이 땅에는 "부당거래가 사라진 지 오래다"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아닌가 보다. 이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부당 거래>를 낱낱이 파헤친 이 영화가 지금 극장가에 돌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을 보면. 그러면서도 극장 문을 나서며 나는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그런데 아주 못된 부당거래 소식이 들려온다. 경상북도의 모 능금조합이 부당거래로 농민들을 농락했다는 소식이다. 길거리에 농민들이 내건 헝겁걸게(프랑카드)의 내용으로 짐작컨대, 능금조합이 비료회사, 농약회사와 짜고 무지한 농민들에게 그 회사의 비료와 농약을 권했던 모양이다. 세상이 이런가 보다. 권력의 속성고리인가. 인간먹이사슬인가. 권력을 쥔 큰놈은 먹이사슬의 맨 위에 있고 작은 놈은 맨 밑에 있는가 보다. 짐승들은 자기네끼리 먹고 먹히지만 한국의 인간세상은 권력을 쥔 자가 권력이 없는 자들을 먹이사슬로 삼나보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 <부당거래>는 영화 자체로 끝나는 게 아니고, 한국사회의 더러운 ‘현실고발’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2010.12.2., 오후 박경희)

박경희 작가님은
2006년 한국프로듀서연합회 한국방송 라디오부문 작가상을 수상했다. 전에는 극동방송에서 "김혜자와 차 한잔을" 프로의 구성 작가로 18년 간 일하다 지금은 탈북대안학교 '하늘꿈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의 필진이다.

작품으로는 《분홍벽돌집》(다른, 2009), 《이대로 감사합니다》(두란노, 2008), 《여자 나이 마흔으로 산다는 것은》(고려문화사, 2006), 《천국을 수놓은 작은 손수건》(평단문화사, 2004)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