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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박경희 작가 단상

꼬장떡

by anarchopists 2020. 1. 9.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0/08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꼬장떡

우연히 탈북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글쓰기 지도를 한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에게 내가 얻는 게 더 많다.
얼마 전에 나와 대화의 물꼬를 튼 몇 몇 친구를 대학로로 초대했다. 내가 살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기대했던 대로 아이들과 집에서 다과를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쉽게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었다. 땅거미가 지자 슬슬 배가 고파왔다. 늘 먹던 음식보다는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곳에 데리고 가고 싶었다.

"실컷 먹어!"
"네, 잘 먹겠슴다."
아이들은 특유의 이북 사투리 섞인 음성으로 밝게 대답했다.

그런데 아이들의 젓가락질이 별로 활발하지 않았다.
"왜 입맛에 안 맞아? 여기가 대학로서 가장 인기 짱인 음식점인데……."
"아녜요. 맛있어요."

아이들은 맛있다면 서도 전혀 맛있어 보이지 않는 표정이었다. 난 그 중에 가장 나이도 많고 그간 나와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눈 혁에게 솔직히 말해 보라고 했다.
"선생님. 저흰 아직 남한 음식 문화가 낯설슴다. 스파게티보다는 강냉이국수가 더 맛있고요. 마늘빵보다는 엄마가 해 준 꼬장떡이 더 그립슴다."

아뿔싸. 아이들에게 무엇을 먹겠냐고 물어보지 않은 것이 그제야 생각났다. 너무 미안했다. 근데 궁금했다.
"꼬장떡이 뭐니?"
"어머니가 밥하면서 솥 가장자리에 강냉이 풀데기 붙였다 만들어 준 빵인데 아주 고소하고 맛있슴다."
이 말을 마친 혁이 먼 하늘을 쳐다보았다. 눈가에 물기가 서리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해 주시던 꼬장떡. 그것은 혁에게 단지 먹거리 만이 아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상징이었다. 나도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해 주던 쑥개떡이란 말만 들어도 목젖이 울컥한데 북에 어머니를 두고 온 혁은 오죽할까.

난, 아직도 멀었다. 아이들의 깊고 넓은 속을 이해하고 그걸 글로 풀어내기에는.
(2010. 10.7저녁, 박경희)

박경희 작가님은
2006년 한국프로듀서연합회 한국방송 라디오부문 작가상을 수상했다. 전에는 극동방송에서 "김혜자와 차 한잔을" 프로의 구성 작가로 18년 간 일하다 지금은 탈북대안학교 '하늘꿈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의 필진이다.

작품으로는 《분홍벽돌집》(다른, 2009), 《이대로 감사합니다》(두란노, 2008), 《여자 나이 마흔으로 산다는 것은》(고려문화사, 2006), 《천국을 수놓은 작은 손수건》(평단문화사, 2004)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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