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0/08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우연히 탈북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글쓰기 지도를 한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에게 내가 얻는 게 더 많다.
얼마 전에 나와 대화의 물꼬를 튼 몇 몇 친구를 대학로로 초대했다. 내가 살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기대했던 대로 아이들과 집에서 다과를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쉽게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었다. 땅거미가 지자 슬슬 배가 고파왔다. 늘 먹던 음식보다는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곳에 데리고 가고 싶었다.
"실컷 먹어!"
"네, 잘 먹겠슴다."
아이들은 특유의 이북 사투리 섞인 음성으로 밝게 대답했다.
그런데 아이들의 젓가락질이 별로 활발하지 않았다.
"왜 입맛에 안 맞아? 여기가 대학로서 가장 인기 짱인 음식점인데……."
"아녜요. 맛있어요."
아이들은 맛있다면 서도 전혀 맛있어 보이지 않는 표정이었다. 난 그 중에 가장 나이도 많고 그간 나와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눈 혁에게 솔직히 말해 보라고 했다.
"선생님. 저흰 아직 남한 음식 문화가 낯설슴다. 스파게티보다는 강냉이국수가 더 맛있고요. 마늘빵보다는 엄마가 해 준 꼬장떡이 더 그립슴다."
아뿔싸. 아이들에게 무엇을 먹겠냐고 물어보지 않은 것이 그제야 생각났다. 너무 미안했다. 근데 궁금했다.
"꼬장떡이 뭐니?"
"어머니가 밥하면서 솥 가장자리에 강냉이 풀데기 붙였다 만들어 준 빵인데 아주 고소하고 맛있슴다."
이 말을 마친 혁이 먼 하늘을 쳐다보았다. 눈가에 물기가 서리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해 주시던 꼬장떡. 그것은 혁에게 단지 먹거리 만이 아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상징이었다. 나도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해 주던 쑥개떡이란 말만 들어도 목젖이 울컥한데 북에 어머니를 두고 온 혁은 오죽할까.
난, 아직도 멀었다. 아이들의 깊고 넓은 속을 이해하고 그걸 글로 풀어내기에는.
(2010. 10.7저녁, 박경희)
2006년 한국프로듀서연합회 한국방송 라디오부문 작가상을 수상했다. 전에는 극동방송에서 "김혜자와 차 한잔을" 프로의 구성 작가로 18년 간 일하다 지금은 탈북대안학교 '하늘꿈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의 필진이다.
작품으로는 《분홍벽돌집》(다른, 2009), 《이대로 감사합니다》(두란노, 2008), 《여자 나이 마흔으로 산다는 것은》(고려문화사, 2006), 《천국을 수놓은 작은 손수건》(평단문화사, 2004)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꼬장떡
우연히 탈북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글쓰기 지도를 한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에게 내가 얻는 게 더 많다.
얼마 전에 나와 대화의 물꼬를 튼 몇 몇 친구를 대학로로 초대했다. 내가 살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기대했던 대로 아이들과 집에서 다과를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쉽게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었다. 땅거미가 지자 슬슬 배가 고파왔다. 늘 먹던 음식보다는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곳에 데리고 가고 싶었다.
"실컷 먹어!"
"네, 잘 먹겠슴다."
아이들은 특유의 이북 사투리 섞인 음성으로 밝게 대답했다.
그런데 아이들의 젓가락질이 별로 활발하지 않았다.
"왜 입맛에 안 맞아? 여기가 대학로서 가장 인기 짱인 음식점인데……."
"아녜요. 맛있어요."
아이들은 맛있다면 서도 전혀 맛있어 보이지 않는 표정이었다. 난 그 중에 가장 나이도 많고 그간 나와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눈 혁에게 솔직히 말해 보라고 했다.
"선생님. 저흰 아직 남한 음식 문화가 낯설슴다. 스파게티보다는 강냉이국수가 더 맛있고요. 마늘빵보다는 엄마가 해 준 꼬장떡이 더 그립슴다."
아뿔싸. 아이들에게 무엇을 먹겠냐고 물어보지 않은 것이 그제야 생각났다. 너무 미안했다. 근데 궁금했다.
"꼬장떡이 뭐니?"
"어머니가 밥하면서 솥 가장자리에 강냉이 풀데기 붙였다 만들어 준 빵인데 아주 고소하고 맛있슴다."
이 말을 마친 혁이 먼 하늘을 쳐다보았다. 눈가에 물기가 서리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해 주시던 꼬장떡. 그것은 혁에게 단지 먹거리 만이 아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상징이었다. 나도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해 주던 쑥개떡이란 말만 들어도 목젖이 울컥한데 북에 어머니를 두고 온 혁은 오죽할까.
난, 아직도 멀었다. 아이들의 깊고 넓은 속을 이해하고 그걸 글로 풀어내기에는.
(2010. 10.7저녁, 박경희)
박경희 작가님은
작품으로는 《분홍벽돌집》(다른, 2009), 《이대로 감사합니다》(두란노, 2008), 《여자 나이 마흔으로 산다는 것은》(고려문화사, 2006), 《천국을 수놓은 작은 손수건》(평단문화사, 2004)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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