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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박경희 작가 단상

대한민국에서 '행복'의 숨구멍이 찾아질까.

by anarchopists 2020. 1. 5.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2/02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행복이란 말조차도 모르던 할아버지

1. 어느 날 아침, 눈을 떠 컴퓨터를 켜는 순간, '행복전도사 부부 자살'이라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방송에 나와 유난히 '행복' 이라는 말을 많이 하던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복잡한 세상에 염증이 나 배낭 하나 메고 훌쩍 고비사막을 찾은 사내가 있었다. 사막을 걷는다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배고픈 건 열매라도 뜯어먹으면 해결할 수 있지만 칠흑 같은 어둠과 함께 찾아오는 고독은 견디기 힘들었다. 지친 사내는 어느 날 깊은 산 속의 게르(* 몽고식 이동텐트)에서눈빛이 유난히 맑은 할아버지를 만났다. 하루, 이틀, 게르에 머물며 방전된 몸과 마음을 충전 시켰다. 사내는 다시 길 떠날 준비를 하며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할아버지는 늘 행복해 보이셨어요. 그 비결 좀 가르쳐 주세요!"

사내의 말을 들은 할아버지는 의아한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

"이보게. 젊은이. 정말 몰라서 묻는 말인데, 행복이란 말이 무엇인가?"

2. '행복'을 전파하며 살아왔던 그녀가 만약 눈이 맑은 할아버지처럼 '행복'이라는 말조차 몰랐다면 어땠을까. 자신의 카테고리 안에 갇혀 힘들었을 그녀를 생각하니 안타까웠다. 그녀의 죽음 이후, 난 가끔 '행복' 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늘 고요한 말씀을 통해 진리를 설파해 오신 함석헌 선생님께 '행복은 무엇이냐고' 묻는 심정으로 책을 펼치곤 한다.

“행복 속에 기뻐하면 불행이 찾아오게 된다. 참된 행복이란 슬픔과 고통에서 솟아오른다.”
(《함석헌저작집》27권, 한길사, 2009, 436쪽; 이하 같은 책)

“우리의 행복과 마음의 평화는 우리가 옳고 알맞다고 여기는 일을 하는데 있지, 다른 사람이 무엇을 말하거나 무엇을 하는데 있지 않다.” (함석헌, 앞의 책, 421쪽)

산 할아버지의 예화나 함 선생님의 말씀 모두 우린 '행복' 이라는 말에 너무 휘둘리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강물이 흐르는 물살에 자신을 맡기듯, 삶 그 자체에 자신을 맡길 때 진정한 행복이 찾아오는 것은 아닐지.

3. 그래서 올 연말모임은 문화모임으로 갖자는 생각을 해본다. 연말모임을 친이권력모임, 친박권력창출모임, 목포향우회모임, 해병전우회모임, 고대교우회모임, 소망신도회모임 등은 이제 그만하자. 한 해를 돌아보며, 우리 인간이 왜 사는지를 고민하는 시간을 만들어보자. ‘행복’, ‘평화’, ‘자유’, ‘자치’, ‘자연’, ‘환경’ 등 문제에 대하여 우리는 얼마만큼 생각하며 살아왔는지를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으로 만들어보자. 우리는 인간을 인간으로서 정말 사랑했는지. 북한주민의 가난에 대하여 생각은 해 보았는지, 그리고 그들을 왜 도와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시간으로 만들어보자. 물질주의 폐해가 어디까지 왔는지를 고민하는 시간으로 만들어보자. 우리는 정치인들처럼 속물근성을 얼마만큼 가지고 살아오고 있는지를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함 선생님의 “행복 속에 기뻐하면 불행이 찾아오게 된다. 참된 행복이란 슬픔과 고통에서 솟아오른다.”가 새삼 느껴진다.

또 한해를 보내고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느껴본다. 행복전도사 부부가 왜 자살해야 했는지를. 대한민국에서는 ‘행복’의 숨구멍이 찾아지지 않기 때문이었을까.(2010.12.1. 늦은 밤. 박경희)

박경희 작가님은
2006년 한국프로듀서연합회 한국방송 라디오부문 작가상을 수상했다. 전에는 극동방송에서 "김혜자와 차 한잔을" 프로의 구성 작가로 18년 간 일하다 지금은 탈북대안학교 '하늘꿈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의 필진이다.

작품으로는 《분홍벽돌집》(다른, 2009), 《이대로 감사합니다》(두란노, 2008), 《여자 나이 마흔으로 산다는 것은》(고려문화사, 2006), 《천국을 수놓은 작은 손수건》(평단문화사, 2004)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 본문 내용 중 사진은 인터넷 네이버에서 따옴, 행복전도사 고 최윤희님의 생전 모습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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