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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박경희 작가 단상

죽은 혼령들아, 분단 없는 조국하늘에서 편히 쉬거라

by anarchopists 2020. 1. 5.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1/29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죽은 혼령들아,
분단 없는 조국하늘에서 편히 쉬거라

오뚝한 코, 아직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맑은 눈, 선해 보이는 입매. 그래선지 꼭 눌러 쓴 해병대모자가 왠지 어색해 보였다. 방송이나 신문에서 두 전사의 모습을 볼 때마다 울컥 눈물이 솟았다. 꽃다운 나이에 비명에 간 그들은 내 아들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늘 20분 먼저 나와서 수업 준비를 하던 착한 학생이었어요. 어차피 갈 거면 빨리 군마치고 취업 준비한다고 입대했는데……."

"집에 가기가 너무 힘들다. 내일은 제발 날이 좋아 배가 떴으면 좋겠다."

이제 막 군기가 들기 시작한 이병이나 전역을 앞두고 휴가를 떠나기 위해 길에 섰다 사고를 당한 병장의 사연은 생각할수록 기가 막히다. 두 전사의 사고 경위를 들으며 만감이 교차했다. 나의 두 아들 역시 몇 년 전, '어차피 가야 할 거면 빨리 끝내는 게 낫다' 는 말을 남기고 논산훈련소로 떠났었다.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군대는 어서 마쳐야 하는 큰 숙제임에 틀림없다. 내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연병장을 돌던 아들이 갑자기 나를 향해 경례를 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혹, 훈련받다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 이 생각이 앞섰다. 아마도 자식을 군에 보내는 부모들이라면 모두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걱정이 현실이 된 연평도에서 전사한 아들을 둔 어머니의 심정은 어떨까. 그 기막힘을 글로 표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 어머니들의 통곡 소리가 눈을 감아도 들려온다. 마치 내가 죄인 같다. 내 아들만 건강한 모습으로 군 복무 마치고 돌아온 것 같아서. 그래서 이 땅의 아들 둔 엄마들이 아들이 군 면제 혹은 공익 근무라는 통보를 받으면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지는 것 아닐까. 결코 자랑은 아니지만 왠지 로또 당첨 된 듯 기뻐하는 것도 이렇듯 시도 때도 없이 당해야 하는 사고 때문일 것이다.

지난번 천안함 사건 때도 그렇고 이번 연평도 사건 때도 마찬가지다. 왜 우린 가만히 앉아 금쪽같은 아들들을 잃어야 하는 건지. 정부나 국방의 최고 책임자들은 하릴없이 죄송하다는 말만 연신하고 있으니 더욱 답답할 뿐이다. 우리 아들들은 적정 나이가 되면 무작정 군대를 가야 한다. 안전에 대한 보장도 없으면서. 대한민국 남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교통사고처럼 느닷없이 닥친 사고를 어쩌란 말인가, 라고 반문한다면 할 말이 많다. 그렇지 않다고 본다. 남북의 문제는 이렇게 곪아 터지기 전에 조치가 있어야 했다. 그들을 살살 달래서라도 소통의 문을 열든지, 아니면 얼씬 조차 못할 정도로 힘을 길러야 했다. 어정쩡하게 남북문제를 대처하다 애꿎은 마을 주민과 우리의 아들들만 희생 되고 만 꼴 아닌가.

잃을 게 없는 사람은 두려울 것도 없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햇볕 정책은 세간에 흘러 다니는 말대로 그들이 달라는 대로 마구 퍼준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것의 일부를 나눠 주며 하나가 되길 염원했을 뿐이다. 쌓아 둘 창고조차 없을 정도로 남아도는 쌀을 배고픈 형제에게 나눠 주는 일이 그리 잘못된 일이었을까. 썩어가는 쌀 안 주고 앉아서 무자비하게 당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아무튼 이 땅의 아들 둔 엄마들이 언제까지 군에 간 아들 때문에, 혹은 아들의 입영 통지서를 가슴에 안고, 몰래 눈물 훔쳐야 하는 건지, 묻고 싶다. 이제 더는 어이없는 사고 때문에 가슴 아픈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지금이라도 실타래처럼 꼬인 남북문제가 순리대로 잘 풀렸으면 좋겠다. 내 아들 같은 고 서정우 하사와 고 문광욱 일병의 명복을 빈다. 분단 없는 하늘나라에서 영면하길.(2010.11.29. 박경희)

박경희 작가님은
2006년 한국프로듀서연합회 한국방송 라디오부문 작가상을 수상했다. 전에는 극동방송에서 "김혜자와 차 한잔을" 프로의 구성 작가로 18년 간 일하다 지금은 탈북대안학교 '하늘꿈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의 필진이다.

작품으로는 《분홍벽돌집》(다른, 2009), 《이대로 감사합니다》(두란노, 2008), 《여자 나이 마흔으로 산다는 것은》(고려문화사, 2006), 《천국을 수놓은 작은 손수건》(평단문화사, 2004)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 본문 내용 중 사진은 국민일보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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