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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영호 교수 칼럼40

누가 등록금을 미치게 만들었는가?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6/01 05:30]에 발행한 글입니다. 대학의 사유화가 문제다 비싼 대학 등록금을 둘러싸고 정치권까지 들썩이고 있다. 여태까지는 해마다 실시되는 등록금 인상을 놓고 학생회와 대학집행부 간에 밀고 당기는 승강이가 연례행사처럼 벌어졌었는데, 학생과 학부형으로선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든 수준에 이르러 교문 밖으로까지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그 한 가지 빌미는 대통령이 된 사람이 후보시절 제시한 반값 등록금 공약이다. 대통령 자신이 고백했듯이 원래 선거공약은 표를 얻기 위한 헛말 즉 속임수였지 진짜 약속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 당시는 모르고 많은 학생들과 부모들은 이 후보에게 표를 던졌을 것이다. 그에게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었다. 발음은 같이 나는 개념이므로 두 가.. 2019. 12. 21.
대학의 존재이유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6/02 05:30]에 발행한 글입니다. 대학교육은 누구나에게 다 필요한가 등록금 사태는 한국 대학과 나아가서 학교교육 전체가 안고 있는 문제덩어리의 한 외형적 단면에 불과하다 할 수 있다. 내면적인 문제까지 성찰한다면 보통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왜 누구나 대학을 다녀야하는지 하는 질문과 잇닿아있다. 대학은 1) 학술지식의 습득, 2) 사회지도자 훈련, 3) 시민이나 국민으로 섬기는 데 필요한 교양의 습득, 4) 인성과 인격의 도야, 5) 직업훈련 같은 고매한 목적을 갖는 사회기관이라 할 수 있을 터이다. 그런데 과연 이런 것을 일일이 따지고 들어오는 학생이나 그 부모가 얼마나 될까. 대부분은 부모가 못 다 이룬 신분상승을 이루기 위한 과정으로나 또.. 2019. 12. 21.
탐욕의 공화국에서 촛불을 켜는 마음으로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6/04 05:30]에 발행한 글입니다. 등록금이 왜 이리 올랐는가. (미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지만 그것은 절대액수로 본 것이고 실질 평균 국민소득으로 따져보면 첫째이다. 그 해답을 찾다보면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와 모순이 노출된다. 자신의 내면까지 내려가 탐욕으로 얼룩진 부끄러운 자화상을 접하게 될 터이다. 공교육과 (사유화된) 사립학교, 즉 공과 사의 혼란과 도착, 명백한 모순이다. 공교육의 경우 사립이 사유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개인이나 집단이 학원을 설립했더라도 법적으로는 공공재(公共財)가 된다지만 실질적으로 이사장과 족벌이 소유권을 행사한다. 대개 가족끼리 총장이나 이사장직을 순환시키면서 후손에게 대를 물린다. 그 점에서는 개인소유가 아.. 2019. 12. 21.
저항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분노하라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8/01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공분(公憤) 공로(共怒)하자!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출신 90줄 노인이 쓴 글 ‘분노하라’가 프랑스 사회를 충격하고 (번역을 통해서) 한국으로도 넘어왔다. 하지만 그 여파가 있는지 모르겠다. 프랑스 같이 원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회가 부러울 뿐이다. 일부 언론에 소개되었지만, 그 취지가 제대로 소개되었는지 의심스럽다. 수구 언론(‘조중동’)에서는 아마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보도되었더라도 입맛에 맞게 요리했을 것이다.) 우민(愚民)화의 앞잡이들이 수구정권과 기득권층에 저항을 부추길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 작은 책은 프랑스사회가 지향해야할 가치를 일깨워주는 경책(警策)의 글이다. 그 논지를 알.. 2019. 12. 16.
노르웨이 참사가 던져주는 화두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8/02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다문화주의와 다인종사회, 축복인가 저주인가 -노르웨이 참사가 던진 화두 노르웨이의 한 극우파 청년 남자가 일으킨 80-90명의 대부분 청소년들이 희생을 가져온 참사가 평화와 복지의 상징인 북 유럽 국가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세계에 충격을 던져주었다. 사건을 계획한 동기는 중동(이슬람권) 이민자들과 개방적인 이민정책을 비호한 진보정권(노동당)을 겨냥한 응징이라고 한다. 어느 사회건 좌건 우건 극단주의자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다만 그것이 극소수 미미한 수냐, 아니면 점차 늘어가는 부류냐이다. 이민자수가 인구의 10%를 넘어가고 있다는 보도가 맞다면, 노르웨이 주류사회에 통합, 적응해야할 이민자의 부적응 정도에 따라서 사회문제가 .. 2019. 12. 16.
함석헌의 8.15 유감- 반성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8/15 06:23]에 발행한 글입니다. 반성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 함석헌의 8·15 유감- 해방이 왔을 때 전 민족이 어떻게 감격했느냐 하는 것을 후에 난 세대는 모르는가 봅니다. 그것을 그렇게 만든 죄는 기성세대에 있습니다. 성공이거나 실패거나 기쁨이거나 슬픔이거나, 그것을 길이 기억하는 데, 그리하여 그것을 다음에 하는 창조활동의 원천으로 삼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기억이 사람입니다. 기억 못 하는 것은 짐승입니다. 조상 제사할 줄 모르는 것은 사람이 아닙니다. 정치·예술은 조상 제사에서 나왔습니다. 기억이 오래 못 간다는 것은 마음의 옅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무엇보다도 아쉬운 것이 해방 당시의 민족적인 감격이 사라져버린 일입니다. 새 역사 창조는 그.. 2019. 12. 15.
전태일을 살려라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9/10 07:07]에 발행한 글입니다. 전태일을 살려라 [함석헌]그 참한 혼을 살려내야 한다. 오늘 우리는 전태일을 추도하기 위해 모였다고 하지만 사실을 말하면 그에게 추도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기 손으로 자기 목숨을 불사른 사람에게 죽음을 슬퍼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나는 그보다도 차라리 우리가 그를 살려내야 한다고 하고 싶다. 전태일을 살려라. 그는 우리를 위해 죽었다. 우리가 그를 차마 죽은 채로 둘 수가 없다. 아니다. 전태일은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산 사람이다. 그는 그 죽음으로 우리 앞에 삶을 절규하고 있다. 그런 그를 어찌 차마 죽음 속에 묻어두고 썩혀둘 수가 있느냐? 전태일을 살려야 한다. 왜 우리는 그를 죽여서는 아니 되나? 첫째.. 2019. 12. 13.
양심이 있는 사회인가? 양심세력은 다 어디 갔나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9/29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양심이 있는 사회인가? - 양심세력이 필요하다- 세상이 어지롭게 돌아간다. 현실적으로 한 사회의 질서를 잡아줘야 할 정치를 보면 더욱 실감한다. ‘올바로 다스린다’는 ‘정치’의 원래 의미와는 동떨어진 정치적 행태가 판을 치는 현실 속에서 우리 사회는 어떤 기준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옛날이나 이슬람 국가들처럼 신정(神政) 체제 같으면 간단하다. 하늘(天)이나 신을 바라보면 된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있지만 불신자도 있으니 보편적이지 않다. 그 신까지도 왜곡되고 잘못 전달되고 있는 판이다. 도대체 이 사회에 통용되고 적용할 상식과 양식의 근원과 기준은 어디에서 찾아야하나. 옛 시대에는 종교의 계율(계.. 2019. 12. 12.
오늘날의 시대정신, 진보세력의 대통합이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10/14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시대정신이 있는 사회인가? - 통합의 정치를 위하여- 우리가 속한 공동체 즉 우리 사회에 당연히 있어야 하는 가치 가운데, (전번 글에서 주제로 다룬 양심처럼) 잘 보이지 않는 또 한 가지는 ‘정신’이다. 개인으로서야 영육, 심신으로 이루어진 인간인지라 정신이 부족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살림을 함께 공유하는 공동체로서 과연 정신을 가지고 정신을 차리고 사는지, 있다면 어떤 정신을 가지고 지속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개인이 인격이 있어야 사람이라 할 수 있고 나라에도 국격이 있어야 하듯, 과연 우리는 정신을 가진 나라에 살고 있는가. ‘양심’처럼 ‘정신’도 헤아리기 힘든 추상적인 개념이다. 그렇더라도 구체적인 공.. 2019. 1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