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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영호 교수 칼럼

저항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분노하라

by anarchopists 2019. 12. 16.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8/01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공분(公憤) 공로(共怒)하자!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출신 90줄 노인이 쓴 글 ‘분노하라’가 프랑스 사회를 충격하고 (번역을 통해서) 한국으로도 넘어왔다. 하지만 그 여파가 있는지 모르겠다. 프랑스 같이 원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회가 부러울 뿐이다. 일부 언론에 소개되었지만, 그 취지가 제대로 소개되었는지 의심스럽다. 수구 언론(‘조중동’)에서는 아마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보도되었더라도 입맛에 맞게 요리했을 것이다.) 우민(愚民)화의 앞잡이들이 수구정권과 기득권층에 저항을 부추길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 작은 책은 프랑스사회가 지향해야할 가치를 일깨워주는 경책(警策)의 글이다. 그 논지를 알고 보면 단순히 프랑스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고 보편성을 지닌 내용이다. 특히 복지 정책을 놓고 다투고 있는 한국정치인들에게 나침반이 될 만한 것이다. 에셀이 드골과 함께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하여 이룩한 프랑스 공화국의 기초가 된 개혁안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개혁안이 명시한 바는 ‘모든 시민에게, 그들이 노동을 통해 스스로 살길을 확보할 수 없는 어떤 경우에도 생존방도를 보장해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회보장제도의 완벽한 구축, 늙고 병든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삶을 마칠 수 있게 말해주는 퇴직연금제도’였다. 각종 에너지 원, 전기와 가스, 탄전, 거대 은행들이 국영화 되었다. 이 역시 레지스탕스의 개혁안이 권장한 바였다. 또한 이 개혁안은 ‘공동 노동의 결실인 대표적 생산수단--에너지원, 지하자원, 보험회사, 거대은행들--을 국가로 복귀시키는 것’, ‘경제계, 금융계의 대재벌들이 경제 전체를 주도하지 못하게 하는 일까지 포함하는 진정한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 정립’ 같은 것들도 권고했다. 특정인의 이익보다 전체의 이익을 우선해야 하며, 노동계가 창출한 부를 정당하게 분배하는 일을 금권(金權)보다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레지스탕스가 제안한 것은 ‘파시스트 국가들의 모습을 본떠 구축된 전문적 독재에서 놓여난, 일반의 이익을 특정인의 이익보다 확실히 존중할 합리적인 경제조직’이었다. 그리고 프랑스 공화국 임시 정부는 이 제안을 넘겨받아 추진했다.” (스테판 에셀, 『분노하라』., 임희근 역, 11쪽)

그런데 현재 이 기초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금권 때문이다. “만약 그럴 돈이 부족하다고 강변한다면 그건 아마도, 이젠 국가의 최고 영역까지 금권의 충복들이 장악한 상태에서 레지스탕스가 투쟁 대상으로 삼았던 금권이 전에 없이 이기적이고 거대하고 오만방자해졌기 때문일 것이다.”(13)

이러한 에셀의 진단은 재벌, 은행, 기간산업 등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와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가 지향해야할 사회민주주의의 이상과 복지국가의 틀 걸이를 보여준다. 다음 선거에서 집권을 목표로 하는 민주진보 세력이 반드시 참고해야할 내용이다.

이제 우리에게 던져진 문제는 프랑스보다 뒤쳐진 우리 상황에서 분노를 어떻게 표현하고 구체화하느냐는 것이다. 우선 각계 각층 사람들이 자기 환경에서 어떻게 분노를 표출하게 하느냐이다. 분노는 에셀이 충고하듯이 격정적으로 할 것이 아니고 비폭력적이라야 한다. 분노의 대상과 내용이 중요하다. 단순한 자기만의 이득을 추구하기 위한 탐욕의 표출이어서는 안 된다. 사리사욕에서 나온 것이면 공감을 얻을 수 없다. 그 분노(indignation)는 정의로운 동기에서 나온 의분(義憤), 공의(公義)로운 공분(公憤)이어야 한다. 양극화된 사회에서 가진 자가 못가진 자에게 지르는 소리는 올바른 분노라고 할 수 없다. 씨알의 소리가 참다운 분노가 될 수 있다.

물론 분노의 출발은 개인의 환경에서 할 수 있다. 최근 대학생들의 등록금 투쟁은 그런 개인적인 불만의 집합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그것이 교육제도, 사회구조문제로 확대되면서 사회적 쟁점으로 부상되어 그 해결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그것은 요구한 ‘반값’으로 그칠 일이 아니다. 정부(중앙, 지방)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교육하는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세계제적인 상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립대의 법인화는 퇴행이다. 다음 선거에서 민주진보 쪽 후보(들)는 등록금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워야 한다. 그것이 다수의석과 집권을 가능하게 하는 확실한 길이 될 것이다.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자주 분노하고 화를 내게 된다. 주로 택시나 버스가 주범인데 개인차들도 그 관습에 물들어있다. 왜 무리하게 빨리 달려야 하는가를 추적해본다면 결국 임금 문제, 사회복지 문제에 당도한다. 그렇게 본다면 운전기사보다 결국 임금격차를 만든 제도와 관료, 정치인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분노의 화살이 방향을 바꾼다. 그때 개인의 분노가 공분이 되는 것이다. 거슬러가다 보면 (헌정)질서를 어겨가면서 자기 욕심과 탐욕으로 사회를 혼란시킨 박정희, 이승만으로 분노가 치밀어진다.

개인 문제라도 헌법이 보장하는 인권과 국민의 권리를 찾기 위한 것이라면 공분을 일으킬 수 있다. 한진중공업에서 농성중인 김진숙 같은 이는 처음부터 개인적인 사사로운 동기가 아니고 공의를 세우기 위한 공분에서 출발한 드문 경우이다. (그를 지원하기 위한 3차 ‘희망 버스’를 타려고 가 5천명의 지원자가 몰렸다니 이 각박한 사회가 그래도 희망을 갖는 것이다.) 생태 보존을 위한 장기 단식 투쟁을 벌인 지율 비구니도 공분의 귀감이다.

개인이 1인 시위를 할 수도 있지만, 집합적으로 함께 공분(公憤)하고 공노(共怒)한다면 더욱 시너지가 생길 터이다. 하늘(신)까지 함께 모두 천인공노(天人共怒)하도록 하면 못할 일이 없다. 촛불 시위도 한 가지 방법이다. (잘못된 정책과 법률에 대한) 비협조운동, (왜곡된 언론과 재벌 상품에 대한) 불매운동도 효율적인 실천운동일 것은 분명하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쥐 한 마리가 혼자서 달 수는 없다. 집단적 운동이 일어야 큰 악을 대항할 수 있다. 혼자 씩씩거리지만 말고 공분하고 공노하자! 복합적인 거악에 대항하려면 이제는 혼자만의 지성이 아닌 집단 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 요구된다. 분노는 감정표출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함석헌은 인간 존재의 속성을 저항(맡 섬)으로 규정했다. 에셀이 말하는 분노는 저항의 표현이다. 저항은 분노의 실천이다.

사람은 저항하는 거다. 저항하는 것이 곧 인간이다. 저항할 줄 모르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 왜 그런가. 사람은 인격이요 생명이기 때문이다. 인격이 무엇인가. 자유하는 것 아닌가? 우선 나는 나다 하는 자아의식을 가지고, 나는 나를 위한 것이다 하는 자주하는 의지로써, 내 뜻대로 내 마음껏 나를 발전시켜 완전에까지 이르자는 것이 인격이다
. (저작집2:109)

저항! 얼마나 좋은 말인가? 모든 말이 다 늙어버려 노망을 하다가 죽게 된다 해도, 아마 이 저항이라는 말만은 새파랗게 살아나고 또 살아나 영원의 젊은이로 남을 것이다. 아마 “맨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하던 그 말씀은 바로 이 말 곧 ‘저항’이었을 것이다. 왜 그러냐고? 말씀은 근본이 반항이다. (2:113)

자유야말로 생명의 근본 바탈이다. 진화(to evolve)하는 것이 생명이다. 생명이 진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역사는 혁명적(to revolve)이 아닐 수 없다. 역사가 혁명의 과정이라면 인생이 어찌 저항적이 아닐 수 있겠는가. (2:115)

무저항주의라고 아는 체 그런 소리를 마라. 그것은 사실은 저항의 보다 높은 한 방법뿐이다. 바로 말한다면 비폭력저항이다. 악을 대적하지 말라 한 예수가 그렇게 맹렬히 악과 싸운 것을 보아라. 말은 들을 줄 알아야 한다. 하늘에 올라가도 저항, 땅에 내려와도 저항, 물 속에 들어가도 저항, 허무 속에 가도 거기 스스로 일으키는 회오리바람 속에 버티고 있는 하나님이 있는데 너만이 저항을 모른단 말이냐? (2:115-)

요컨대, ‘생각하는 백성’을 넘어, 저항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2011. 8.1, 김영호)
김영호 교수님은
인하대학교 명예교수다. 선생님의 전공은 종교철학(원효사상)으로, 세계관의 큰 틀(패러다임)은 함석헌과 크리슈나무르티에서 영향을 받은 다원주의다.

선생님은 늘 사회변혁을 갈망하였다. 하여 해외 민주화운동의 도구인 민중신문』(캐나다) 창간(1979)에 간여하였으며,『씨알의 소리』편집위원, 함석헌기념사업회 씨알사상연구원장을 지낸 바 있다. 지금은 함석헌평화포럼 공동대표와 함석헌학회 부회장 학술위원장직을 거쳐 함석헌학회 학회장을 맡고 있다.(2011년 8월 현재)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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