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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영호 교수 칼럼

함석헌의 8.15 유감- 반성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by anarchopists 2019. 12. 15.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8/15 06:23]에 발행한 글입니다.


반성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 함석헌의 8·15 유감-

해방이 왔을 때 전 민족이 어떻게 감격했느냐 하는 것을 후에 난 세대는 모르는가 봅니다. 그것을 그렇게 만든 죄는 기성세대에 있습니다. 성공이거나 실패거나 기쁨이거나 슬픔이거나, 그것을 길이 기억하는 데, 그리하여 그것을 다음에 하는 창조활동의 원천으로 삼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기억이 사람입니다. 기억 못 하는 것은 짐승입니다. 조상 제사할 줄 모르는 것은 사람이 아닙니다. 정치·예술은 조상 제사에서 나왔습니다. 기억이 오래 못 간다는 것은 마음의 옅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무엇보다도 아쉬운 것이 해방 당시의 민족적인 감격이 사라져버린 일입니다. 새 역사 창조는 그것만으로야 되는 것인데 그것이 장마에 하루아침 돋아났던 버섯처럼 맥없이 사라졌습니다. 자람의 한 매듭을 짓는 역사적 창조는 냉랭한 이론이나 숫자의 벌려놓음으로만 되는 게 아닙니다. 권모술수로 되는 게 아니라, 반드시 국민적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래야, 그러한 가운데서야 국민이 하나 됨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 됨 없이 서로 경쟁하는 이기심, 기업심, 타산심 가지고는 그러한 역사 창조는 아니 됩니다. 오늘 같은 이러한 심리, 이렇게 메마르고 이렇게 믿을 수 없고, 이렇게 퇴폐적인 심리에서는 절대로 역사의 향상, 진보가 없습니다. 돈, 돈, 돈, 멋지게, 멋지게, 멋지게, 그러다가 로마가 망한 줄을 모르십니까.

해방이 되던 날 온 민족이 잘난 사람, 못난 사람, 죽일 놈, 살릴 놈, 어진 이, 바보가 일시에 없어졌습니다. 그저 살아 있는 것은 하늘뿐이요, ‘우리 민족’뿐이었습니다. 마치 푸른 하늘의 구름산처럼 주인도 없이, 시키는 이도 없이, 그저 한덩어리로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크고, 작고, 두드러지고, 오므라진 허다한 봉우리들이 다 그저 하나, 전체의 영광에 빛날 뿐이었습니다. 그것은 시요, 찬미요, 기도요, 철학이었습니다. 그것이 열흘을 못 가고 산산히 부서져버렸습니다. 어째서입니까? 잊어버린 것입니다. 어제까지 하던 고생, 그 받던 업신여김, 그 당하던 억울, 그 호소할 데 없던 심정, 답답했던 가슴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해방을 기념한다 할 때마다 젊은 세대에게 반드시 알려주고 싶은 것은 이 감격이요, 이 감격을 올 수 있게 했던 그 해방 전야의 고통과 슬픔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늘 말하지만 우리 기성세대는 릴레이 경주에서 바통을 넘겨주지 못하고 엎어진 사람들입니다. 마땅히 이 슬픔과 부끄럼과 이 기쁨을, 생활을 통해 전해드렸어야지요. 그래야 역사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못 했으니 그 미안함을 말로 할 길이 없습니다. .... 당초에 역사를 살려내는 그 감격을 소멸시켜 국민을 더러운 이기심, 현실주의에 빠뜨려놓은 것이 누구의 소행이냐 하면 정치인들이 한 짓입니다. (1978, 「해방의 날에 새 세대에게 주는 말」) (함석헌저작집 5:52-)

나는 일본을 말할 때는 두 개의 일본을 생각합니다. 하나는 메이지유신과 일청전쟁, 일러전쟁, 태평양전쟁 등의 일본 정부로 대표되는 일본이고, 또 하나는 일본 민중으로 대표되는 일본입니다. 그 어느 것이 참이냐 하면 민중의 일본이 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를 먹었던 것은 일러전쟁을 했던 군국주의·제국주의의 일본이지 일본 민중이 아닙니다. 물론 군국주의자들이 한국 땅에 와서 일청·일러전쟁을 하도록 가만두었고, 태평양전쟁에 한국 사람을 강제로 징용하게 가만 보고 있었다는 의미에서는 일본 민중도 참여했다고 할 것이지만, 그 책임을 묻는 자리에 가면 결코 일본 민중이 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경제의 구렁, 정치의 독사는 굉장히 복잡·교활한 조직 기술이기 때문에 생각 없이는 보고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민중에게는 반드시 날카롭게, 또 깊이, 물건과 일을 분석·비판하는 정직하고도 찬찬한 학자가 있어야 하고, 중간에 서서 돼가는 일과 생각을 잘 보도해주는 민첩하고도 대바른 언론인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지식인들이 온통 기가 죽었으니 어떻게 하나. 현실을 똑바로 본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럼 그런 생각을 가지고 민중을 제 눈으로 볼 때 무엇이 뵈나. 첫째, 민족의 분열이다. 물론 남북 분열이 우선 문제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남 안에도 자체 분열이 있다. 하나 둘만이 아니라 분자화다. 돌아가는 말이 불신풍조라 하지 않던가. 북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언론의 압박이 있는데 어떻게 분열이 없겠나. 언론은 민중의 신경이다. 신경이 마비되면 제 몸을 가누지 못하지 않던가. 민족 통일이 첫째 과제인 것을 모를 사람이 누구겠나. (1971, 「십자가에 달리는 한국 -8·15 스물여섯 돌을 맞아」) (5:63)

역사를 읽다가 매양 책장을 찢어버리고 주먹으로 땅을 치고 싶어지는 것은, 이른바 그놈의 신라의 삼국통일이라는 대목이다. 어려서 철없을 때 가르쳐주는 대로 썩어진 선비놈들의 소리 그대로 읽었지만 지금은 분해서 견딜 수가 없다. 생각 없는 사람들 아직도 그것을 자랑으로 알아 국민교육이랍시고 하고 있지만, 생각해보라, 그것이 어찌 통일이겠나. 땅만 해도 중요했던 국토의 대부분이 없어지고 변변치 못한 일부분만이 남았으며 사람은 얼마나 없어졌는지, 문화는 어떤 것이 잃어졌는지 이루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아무리 자기기만, 자기위로로서거니, 어찌 감히 삼국의 통일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그렇게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무엇이 되란 말인가. 민족은 분(憤)을 품고 노(怒)를 발하는 것이 있어야 발전하는 법이다.

우리 민족의 가장 나쁜 버릇이 파쟁이요 지방색인데, 그것을 누가 만들었나? 단군, 동명(東明), 온조(溫祚)에게 그것이 있었던가? 혁거세(赫居世), 김수로(金首露)엔들 있었을까? 이것은 틀림없이 외적과 흥정을 하여 나라 땅과 사람의 대부분을 넘겨주는 대신 그 일부를 얻어 제 몫으로 차지하고는 감히 민족통일의 이름을 도둑질하는 역사적 죄악을 지은 신라의 지배계급의 병든 심리에서 나온 것이다. 이 매국망족(賣國亡族)의 심리가 성격으로 굳어져, 나중에는 ‘경상도 대통령’이니 ‘전라도 대통령’이니 하는 따위 생각으로까지 나왔다.

우리 민족의 모든 불운, 모든 죄악의 근원은 삼국이 그 역사적인 과제를 옳게 치르지 못한 데 있다. 그 책임은 셋이 같이 져야 한다. 고구려와 백제는 망했으니 물어도 소용없고, 이기고 역사를 이어 받았노라는 신라가 전적으로 담당할 수밖에 없다. 신라 사람에게 만일 테베레 하(河) 언덕 일곱 뫼 위에 나라를 세웠던 라틴 족의 기상이 있었더라면 우리 역사가 이렇게 위상을 떨치지 못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탈리아 반도와 한반도가 무엇이 다르며 황해·동해와 지중해가 무엇이 다를 것이 있나. (1972, 「민족노선의 반성과 새 진로 -
8·15를 기점으로」) (5:72-)

민족의 통일을 의논하는 자리에서 우선 할 것은 분열의 책임이 어디 있느냐를 밝히는 일이다... 한마디로 하면 민족 분열의 책임은 그때와 그 후 나서서 스스로 나라 일 하노라는 정치인들의 야심에 있다. 화합이 아니 되는 것은 야심 때문이다. 이념, 구상이 서로 다른 것은 걱정할 것 없다. 여러 가지 사상과 의견이 있을수록 좋다. 그래야 네 생각만도 아닌, 내 생각만도 아닌, 보다 높은 참에 가까운 생각에 도달할 수 있다. 나쁜 것은 자기중심적인 야심이다. 화합만 되면 백화난만 식으로 찬란했을 이상들이, 싸움으로 그치고 민족 생명의 뿌리까지 말려버리고 마는 독이 되는 것은 이 자기 본위의 사심 때문이다. 야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성인(聖人)만이 정치하느냐 반문하겠지만, 그것은 무책임한 반사회·반역사적인 말이다. 그런 핑계와 변명을 하려면 정치에 나서지 않아야 한다. 아무리 불완전한 인간이라도 적어도 나라 일을 하겠다 나서려면 그만한 양심은 있어야 한다. (5:86)

이상의 인용 글은 누구보다 일제 식민시대를 몸으로 겪고 수난받은 함석헌이 40-33년 전에 (1971, 1972, 1978) 8·15를 맞으며 『씨알의 소리』에 쓴 글에서 발췌한 것이다. 역사적 사실은 그대로이고, 70년대 현실에서 지적된 문제는 오늘도 타당하고 유효한 것으로 판명된다. 다만, 절차적 민주주의는 진전되었다지만, 이제는 지식인들과 언론이 직접적 강압보다는 간접적인 수법으로 자유를 제한받으면서 반(半)-자발적으로 권력과 돈(자본주의, 재벌)의 노예가 되어 제 노릇을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삼국통일에 관한 분석은 지역감정을 유발할 수도 있는 내용이 들어있다고 볼지 모르지만 그것이 엄연한 사실임은 부인할 수 없지 않을까. (감정의 표출로 여긴다면, 그 생각 자체가 지역감정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된다.) 군사독재 시절에 재발하여 지금도 지속되는 동서 갈등의 현실이 그 증거다. 다음 선거(총선, 대선)에서도 또 나타날 것인즉, 야당 통합의 틀과 단일 후보 문제도 그 현실을 감안하면서 풀어가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 되어있다. 삼국통일에 대해서는 역사적인 반성이 있었어야 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학술적으로나 국민의식 면에서 어떤 형태로든 정리하고 통과해야할 과정이다.

정부와 국민(민중)을 구분해야한다는 입장은 대일 문제를 풀기 위한 전략으로 삼아야할 원칙으로 보인다. 일본의원들의 울릉도 방문 시도로 다시 불거진 독도 문제도 정부 간 대치만 전부가 아니고 일본 지식인과 국민을 사실(史實)로서 이해시키고 호소하는 작업이 다각도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한중일 삼국 역사가들이 펴내는 역사교과서 부교재에 이것을 반영시키기로 했다는 소식은 그 좋은 예이다.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려는 미국 등 국가들의 움직임에 대한 대처도 객관적 자료로 학자들을 동원하고 학자와 관리들을 설득하는 작업이 조직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객관적 사실 자료를 묶어 영어, 일어 책으로 현지에서 출판하여 언론, 학계에 알려주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일본에서도 양심 있는 학자들이 올바른 사실을 캐내는 연구서를 내고 있다.)

민족의 분단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전략은 현실적으로 아예 증발되어버린 형국이다.
남북관계에서 파트너인 북쪽의 신뢰를 잃어버린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 획기적인 제안을 할 것 같지 않다. 하더라도 그것은 먹혀들지 않는 일방적인 소리로 그칠 것은 뻔하다. 수구층을 위한 국내용 제안일 뿐이다. 아무런 철학도 비전도 없는 정권에게서 기대할 것은 없다. 위장전입, 대통령 관련 사건의 의심스런 처리 등 하자를 안고 취임한 새 검찰총장은 취임사에서 ‘종북좌파’의 색출을 내걸면서 찬바람을 일으켜 정치검찰임을 다시 입증했다. 함석헌 시대처럼 씨알들이 나서는 수밖에 없다. 안팎으로 불안한 이 시기에 새로운 국민적 저항을 다짐하는 8·15 결의가 요구된다. 통일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진정으로 ‘광복’이라 ‘해방’이라고 8월 15일을 경축할 수 없다. ‘반성(참회)하는 백성(나라)이라야 산다!’ 이것은 다른 각도에서 일본과 한국 국민에게 던지는 함석헌의 경고요 예언이다. 또 우리들에게 ‘분노하라!’고 말하지 않는가. (2011. 8.15, 김영호)

김영호 교수님은
인하대학교 명예교수다. 선생님의 전공은 종교철학(원효사상)으로, 세계관의 큰 틀(패러다임)은 함석헌과 크리슈나무르티에서 영향을 받은 다원주의다.

선생님은 늘 사회변혁을 갈망하였다. 하여 해외 민주화운동의 도구인 민중신문』(캐나다) 창간(1979)에 간여하였으며,『씨알의 소리』편집위원, 함석헌기념사업회 씨알사상연구원장을 지낸 바 있다. 지금은 함석헌평화포럼 공동대표와 함석헌학회 부회장 학술위원장직을 거쳐 함석헌학회 학회장을 맡고 있다.(2011년 8월 현재)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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