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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의 영성\철학과 함석헌식의 해석학적 설교(강론)38

이웃을 배려하는 종교교육이 할 때가 아닌가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11/03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철학이 있는 종교, 이웃을 배려하는 종교교육 함석헌에 의하면, 종교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며, 사람을 건지는 일이다(〈영원의 뱃길〉, 《함석헌전집》 19, 한길사, 1985, 104쪽). 철학과 종교의 공통점은 여기에 있다. 철학은 이성과 정신을 일깨우고 살리는 일이라면, 종교도 사람의 영혼을 일깨우고 초월자의 소리로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그것은 철학이 끊임없이 자신의 이성을 놓지 않고 세계와 분투하는 실존을 지향하고 있듯이, 종교도 하나님을 마음에서 절대로 놓지 않고 세계로부터 초월을 지향하는 것이다. 이 둘이 별개가 아니라 바로 삶의 초월, 순수한 정신으로의 지향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지점에서 합류한다. 그러한 점에서 종.. 2019. 12. 3.
이제 우리 농민은 어디로 갈까 .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11/27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낯선 타자를 만난 슬픈 타자: 함석헌의 신학적 미학과 타자윤리 “저 영원한 님의 가슴으로 뛰어드는 일이다...... 마음을 아름답게 가져야지...... 무한을 안은 마음이 아름다운 마음이지. 어떤 마음이 무한한 마음이냐? 참된 마음이지. 허영심이 적고 추한 마음...... 네 마음속에서 허영심을 버려라...... 영광의 님을 사랑하여 하늘가에 서라”(함석헌전집 5, 서풍의 노래, 한길사, 1984, 68-69쪽). 지금 우리는 영원한 가슴을 상상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영원은 무슨 초월적인 것 혹은 초월적 존재라기보다 유한 세계에 마음을 두지 않는, 그것을 넘어선 실재적 삶의 총체일 것이다. 그러나 영원을 .. 2019. 12. 2.
한국의 종교들, 타락해서 더 이상 타락할 게 없나?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12/11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종교의 탈선, 어디까지 갈 것인가? “간디를 옆에서 바로 안 사람은 “간디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지만, 그 사람은 타고난 그리스도인(Natural Christian)이다”했어요. 스탠리 존스 목사가 한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니지만, 하기를, 예수님의 뜻대로 비교적 충실하게 해서 훌륭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여준 이가 간디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이제 그런 점의 높은 차원을 알아서, 여기서 실지 내 살림에 사랑과 참을 실천해보려 해도 물론 잘못되는 거 많이 있지요. 있지만 그런다고 해서 포기하고 하나님이 용서하는 데 무조건 의지하는 것 그건 하나님 뜻을 모르는 거지요. 그런고로 나는 우리 그리스도교가 정신력이 이렇게 박.. 2019. 11. 28.
행복하려면 시공간적인 욕망을 초월하십시오! 그리고 자신 속으로 돌아가십시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1/29 05:00]에 발행한 글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함석헌의 행복론 -시공간적인 욕망을 초월하십시오! 그리고 자신 속으로 돌아가십시오! 그리스도인의 존재방식(Seinsweise) 혹은 실존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에 대한 단초를 아우구스티누스(A. Augustinus)의 저서인 『참된 종교』(De Vera Reiligione)에서 발견할 수가 있다. 그는 첫 머리에서 글강 외듯 이렇게 말한다. “참종교에 선하고 행복한 삶의 길이 있으며, 그 참종교란 하나이신 하느님을 예배하고, 지극히 순수한 경외심으로 하느님을 자연 만물의 원천으로 인정함에 있다.”(아우구스티누스, 참된 종교, 분도출판사, 2011, 29)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으로 존재한다는 것, 그리스도인.. 2019. 11. 25.
자본주의적 내세 종교를 탈피하고 현재적 행복을 누리십시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2/02 05:0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의 자본주의적 종교 비판과 무교(巫敎)의 행복론 요즈음 TV에서 방영 중에 있는 가상 사극 드라마의 재미가 쏠쏠하다. 필자는 마치 정치와 종교가 묘하게 뒤섞인 모습으로 전개되는 듯하여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그 사극 전면에 특정종교가 등장하는데, 조선시대 통치이념인 유교에 맥도 못 추고 민중들 사이에서만 간간이 맥을 이어왔던 우리의 전통 신앙인 ‘무교’가 그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강신무나 세습무, 혹은 무당(남자는 박수)이 단골들과 함께 한바탕 어우러져 굿판을 벌이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 부적 역할을 하는 주인공이 소생(resuscitation)하여 과거에 연분이 있었던 왕을 위로하고 .. 2019. 11. 25.
종교생활 행복하십니까?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2/04 05:0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과 러셀, 종교적 행복의 근본자리를 묻다! 왜 사람들은 종교를 갖고 있으면서도 행복하지 않은 것일까? 종교를 있다는 자체가 반드시 행복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묻는 것은 아니다. 다만 물음이 발생한 삶터의 상황(맥락)과 세계의 사태가 분명히 존재하기에 묻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왜”라는 이유를 묻기 전에 “왜”가 처해 있는 근본자리를 먼저 물어야 할 것이다. 물음을 갖는 그 근본자리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왜라는 의문이 생긴다. “왜”는 인간의 현실과 이상, 혹은 사태의 원인과 결과가 맞대응하지 못할 때 묻는 인간 실존의 의문이다. 어쩌면 “왜”라고 묻는 것은 인간 고유성의 확인이자 세계-내-존재의 유한성이 갖.. 2019. 11. 25.
부활한다는 것의 의미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4/08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부활한다는 것의 의미 이맘때면 그리스도교는 참으로 분주하다. 고난주간이다, 부활주일이다 해서 1년 중 가장 중요한 전례력들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곧 그리스도교 신자의 신앙 핵심이자 구원과도 직결된 문제이기에 더욱 경건하고 장엄한 전례가 아닐 수 없다. 대부분의 신자가 교회를 다닌다고 하는 것은 바로 예수의 죽음으로 인한 구원과 그의 빈 무덤 사건으로 알려주는 내세에 대한 확신과 떼려야 뗄 수가 없다. 그래서 적극적인 신자가 아니더라도 이 시기가 되면 한 번쯤은 교회 예배나 성당 미사에 참석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교에서 참 죽음과 참 부활은 1년 중 한 때의 전례를 통한 상기나 확신은.. 2019. 11. 20.
다 없는 사랑을 하는 인간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3/08/06 00:19]에 발행한 글입니다. 다 없는 사랑을 하는 인간 종교적 행위에서 온 몸, 온 맘, 온 정성을 다해서 신을 섬기고 기도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존재 근거 혹은 초월자를 향해서 다함이 없는 사랑을 하는 것이리라. ‘다하다’는 것은 곧 완성했다, 성취했다, 끝인 그것으로서 더는 할 일이 없다는 것인데, 그야말로 전적투신이다. 성서는 그렇게 말한다. 마음, 정성, 힘(마음, 목숨, 뜻; heart, soul, mind; kardia, psyche, dianoia)을 다하여 섬기라고(신명 6,5; 마태 22, 37). 그만큼 전심전력, 전력투구하여 실재(Reality)를 섬기라는 것이다. 함석헌은 이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2019. 11. 3.
함석헌과 존 라일 주교의 신학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4/01/18 02:21]에 발행한 글입니다. 1. 함석헌과 존 라일 주교의 신학 생각과 쉼이 있는 신앙이 중요합니다! 생각이 없는 인간이 존재할 수 없듯이, 생각하는 주체인 인간이 생각 없는 신앙을 가질 수 없다. 생각 따로 믿음 따로, 이성 따로 신앙 따로가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신앙을 갖는 것 자체가 생각을 깊이 있게 하고 모든 미몽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신앙을 갖는다는 것, 어쩌면 종교를 갖는다는 것은, 그것을 믿음의 체계로서 자신의 삶에 한 영역으로 자리 잡도록 하는 것은, 신에 대해서 진지하게 사유하겠다는 의지라고 말할 수 있다. 단순히 믿어보겠다는 맹목이 아니라 이성과 감성, 그리고 영성을 통해 좀 더 성숙한 존재가 되겠다는 발로라고.. 2019. 1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