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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의 영성\철학과 함석헌식의 해석학적 설교(강론)38

건강한 종교적 자아론: 그리스도교는 동무의 종교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4/04/04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건강한 종교적 자아론: 그리스도교는 동무의 종교다! 종교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진술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객관적 혹은 객관주의라 함은, 철학적으로 말하면, 많은 것이 상대적으로 보이더라도 절대적인 것, 그래서 입장이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는 것이 최소한 하나는 있다는 입장입니다. 모든 것이 입장에 따라서 달라지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한 시각에서 “종교(그리스도교)는 코이노니아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함석헌이 “기독신앙의 목적은 사귐에 있다”(함석헌, 함석헌전집, 영원의 뱃길 19, 한길사, 1985, 100쪽)는 말을 반복 정리한 것입니다. 좀 더 심층적으로는 그리스도교의 무의식과도 같은 신앙의 태.. 2019. 10. 31.
하느님을 닮는 삶의 법칙들(에페 4,25-5,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8/08/13 00:24]에 발행한 글입니다. 하느님을 닮는 삶의 법칙들(에페 4,25-5,2)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에는 많은 법칙들이 있는 듯합니다. 그것을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그것을 알게 되면 철이 든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철이 든다는 것은 세상의 이치를 판별하는 눈이 뜨였다는 말인데, 다른 말로는 처세를 잘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말로도 이해가 됩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사람들이 어떤 감정과 표정을 짓느냐에 따라서 나는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하는가, 라는 것을 잘 안다면 처신하기가 그만큼 수월하다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신앙적 처세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거기에는 하느님의 성품 닮기라는 대명제가 깔려 있습니다.. 2019. 10. 23.
그리스도교 신자의 신앙처세술(에페 5,15-20)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8/08/20 01:47 ]에 발행한 글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자의 신앙처세술(에페 5,15-20) 종교인들은 감히 자신을 신자라고 말합니다. “나는 개신교 신자입니다”, “나는 가톨릭 신자입니다”, “나는 불교 신자입니다”, “나는 무슬림입니다”, “나는 ... 신자입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이것들은 자신이 어떤 일정한 종교를 믿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의 표명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정작 그렇게 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리영희 선생님은 종교인들의 일반적인 정체성 발언을 몹시 못마땅하다는 투로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 살지 못할 바에야 그냥 예수님, 하나님, 알라, 부처님, 공자님 등 이런 식으로 말을 하는 것이 겸손한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사도 .. 2019. 10. 22.
종교의 작동 원리(에페 6,10-20)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8/08/28 23:04 ]에 발행한 글입니다. 종교의 작동 원리(에페 6,10-20)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일상의 위기는 잘 간파하면서, 그에 비해 정작 신앙의 위기는 잘 못 알아차리는 것 같습니다. 아니 좀더 면밀하게 따져보면 둘 다 잘 모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살인, 폭염, 홍수, 테러, 교통사고, 화재 등 수많은 위기와 위기의 가능성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Marcel Mauss)가 말한 이른바 “총체적인 사회적 사실”과 연관된 것들입니다. 위기의 사건과 사고들은 인간 사회 그 자체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는 다시 말해서 하나의 전체로서 조직, 작동되고 있는 인간 사회가 품고 있는 문제들이 나타난.. 2019. 10. 22.
실천하는 종교, 실천도 하늘로부터(야고 1,17-27)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8/09/02 22:17 ]에 발행한 글입니다. 실천하는 종교, 실천도 하늘로부터(야고 1,17-27) 신앙적인 삶과 보편적인 삶의 동일성 종교의 깊은 가르침은 삶으로 실천해야 제맛입니다. 지구상의 다른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도 실천하는 종교입니다. 믿는 대로, 배운 대로, 깨달은 대로 실천해야 참 종교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종교는 개인의 이익과 영달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합니다. 물론 신앙과 지식, 그리고 신과의 합일이라는 것도 매우 자의적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경계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설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야고보는 온갖 좋은 것들, 모든 선물은 위로부터, 즉 하나님 아버지로부터(come from above) 온다고 말합.. 2019. 10. 22.
부름의 형이상학적인 삶(야고 2,1-17)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8/09/09 22:56 ]에 발행한 글입니다. 부름의 형이상학적인 삶(야고 2,1-17) 인간의 피투성과 부름의 평등성 하이데거는 인간이 속절없이 이 세상에 내던져진 것을 '피투성'(Geworfenheit)이라고 이름붙였습니다. 이를 소설가 밀란 쿤데라(M. Kundera)는 “삶은 덫이다”라는 한 문장으로 표현합니다. 원치 않는 태어남, 육체의 한계에 갇혀서 죽는 인간의 모습을 보면, 이 말이 쉬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애초에 원치 않았던 인간의 태어남조차도 분명히 어떤 부름이 있었던 것입니다. 부름은 세상에 나오기 위해서 내가 준비한 것이 아니라 이미 부름의 힘과 주체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세상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부름의 공평함 속에서 누구는 그 부름을 신의 부.. 2019. 10. 22.
그리스도인의 신앙언어 사용법(야고 3,1-1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8/09/17 01:31 ]에 발행한 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언어 사용법(야고 3,1-12) 언어대중과 신앙언어, 말의 진중함 모름지기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는 동물입니다. 특별히 무리를 지어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 집단을 언어대중이라고 한다면, 좀더 특정한 언어를 사용하는 공동체를 일컫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신앙언어라는 특수언어를 사용하는 집단을 그리스도교라고 합니다. 신앙언어는 신앙인들이 사용하는 독특한 개념과 말과 표현이 있어서, 일반 대중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도 신앙인들은 자신의 신앙언어가 마치 보편적인 일상언어인 것처럼 착각을 하고, 다른 언어대중들에게 아무 거리낌이 없이 말을 하곤 합니다. 문제는 신앙언어를 사용하는 .. 2019. 10. 22.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결, 그리고 거기(Da)(야고 3,13-4,8a)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8/09/26 21:16 ]에 발행한 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결, 그리고 거기(Da)(야고 3,13-4,8a) 그리스도인의 지혜와 자기 인식 사람이 지혜롭다는 것과 자기 자신을 인식한다는 것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지혜는 그리스어로 소피아(sophia)라고 합니다. 마르틴 하이데거에 따르면, 여기에서 파생된 형용사 소포스(sophos)는, “이것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적합한 맛, “냄새를 맡는 능력”과 본질적인 것에 대한 본능을 소유한 사람을 말합니다. 그 때문에 어떤 것을 직접 근거로부터 이해하는 즉 모범적이고 뛰어난 방식으로 어떤 사태에 잘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따라서 지혜로운 사람은 본질적인 것을 판별해내는 뛰어난 능력이 있는 사람을.. 2019. 10. 22.
기도, 하늘의 창문을 여는 것(야고 5,13-20)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8/10/01 02:53 ]에 발행한 글입니다. 기도, 하늘의 창문을 여는 것(야고 5,13-20) 그리스도교를 비롯하여 세례의 여러 종교들은 기도라는 행위가 중요한 의례로 틀잡혀 있습니다. 따라서 종교에 입문을 하자마자 기도라는 말만큼 많이 듣는 말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기도는 참으로 어려운 것으도 인식되기도 합니다. 그보다 어쩌면 우리가 하는 기도라는 것이 정말 올바른 기도행위인가, 라는 의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하는 것 같은데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발생하지 않거나, 정반대의 상황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기도에 대한 회의를 품게 됩니다. 그러나 기도란 어떤 상황이 일어나도록 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도는 마음이 하늘에 닿도록 .. 2019. 10. 22.